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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닷새째인 27일 저녁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마련된 분향소 앞에서 조문객들이 노 전 대통령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물을 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닷새째인 27일 저녁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마련된 분향소 앞에서 조문객들이 노 전 대통령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물을 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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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 떨리는 노여움이 신 새벽에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노래 가사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로 시작되는 "상록수"에다 "솔아솔아 푸른 솔아"도 흘러나온다. 이런 노래가 나오면, 좀 심하게 말해 운동권의 집회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김해 봉하마을에 이런 노래가 나오고 있다. 지난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마을회관 확성기를 통해 진혼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 고인은 지난 대통령 시절 이런 노래를 틀어놓고 집회하던 사람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이 노 전 대통령을 조문하러 몰려오고 있다. 봉하마을 분향소에는 연일 진보진영 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경남지역 노동·농민·시민단체는 물론, 서울에서도 단체로 찾아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한미FTA 협상과 신자유주의 정책 등으로 진보진영과 마찰을 빚어 왔다. 진보진영이 그렇게 힘을 실어주었지만 국가보안법도 폐지되지 않았다. 인권 변호사 출신이었던 고인에 대한 기대가 컸을 수도 있지만, 진보진영은 참여정부에 대해 '실망'하기도 했다.

진보진영도 조문 행렬 동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와 시민사회원로들이이 조문을 마친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와 시민사회원로들이이 조문을 마친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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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봉하마을 조문 행렬 속에 진보진영도 동참했다.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내로라하는 진보진영 인사들이 봉하마을을 다녀갔다. 진보진영은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 왜 줄을 지어 조문할까? 진보진영과 참여정부의 화해인가? 아니면 한 나라를 이끌었던 대통령의 서거라서 그런가?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27일 오후 김천욱 민주노총 경남본부장, 허연도 민주노총 본부 지도위원 등과 함께 봉하마을을 찾았다. 일반 조문객 속에 함께 뒤섞여 노 전 대통령의 영전에 국화꽃을 놓았다. 그는 방명록에 "영원히 살아 있으십시오"라고 썼다. 

진보진영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조문 물결은 현 정부에 대한 저항이며, 지난해 일어난 100만 촛불이 지금은 100만 조문이며, 민주주의 회복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6일 한국진보연대 고문과 대표단, 간부들과 함께 봉하마을을 다녀갔다.

그는 고인에 대해 비판도 했다. 그는 "고인은 절차적 민주주의와 탈권위적이라는 부분은 성과가 있지만, 신자유주의로 인해 민중생존권 부분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면서 "고인은 한미FTA 협상을 벌인 장본인이고, 진보 진영에서 힘을 주었지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름대로 성과가 있는 부분은 도덕성과 윤리성이었는데,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무너졌다"면서 "하지만 검찰의 과잉수사와 공안탄압의 희생이었다"고 말했다.

진보진영은 참여정부를 이명박 정부와 비교하면서 더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분석도 한다.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이명박 정권의 국민 무시, 편파수사 강행이 이런 비극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윤희숙 한국청년단체연합(준) 위원장은 "처음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한 게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지금 국민들은 그냥 슬픔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에 화가 나 있다는 것을 현 정부는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추모행사가 경찰의 저지를 받고 있다"면서 "정부가 국민들의 화를 풀어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물리력으로 해결하려고 하니 안 된다"고 강조했다.

26일 이광호 부산민주공원 관장은 민주공원 직원과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함께 봉하마을을 찾았다. 그는 "고인은 지역화합과 남북상생협력, 지역균형발전을 이루려고 했지만 지금은 후퇴되고 있어 가슴 아프다"면서 "정치적, 사회적 미래 비전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장은 "비유가 적절한 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쓰던 물건이 어느 순간 파손되거나 잃어버리는 순간 값이 나지지 않더라도 아쉬움을 갖는다"면서 "아름다운 사람을 인식하지 못하다가 떠나고 나서 만감이 교차하고 아쉬움이 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도 26일 새벽 4시경 봉하마을을 찾아 조문했다. 하루 전날 저녁 서울에서 산별노조·연맹 대표와 간부 50여 명과 함께 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그는 "고인은 변호사 시절 노동자를 위해 상당한 역할을 했으나 대통령이 된 뒤 실망을 주었다"면서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용산참사나 고 박종태 열사의 죽음과 같이 이명박 대통령이 반대세력이나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폭압정치에 대해 노동자와 같은 처지라 보고 조문을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독재에 희생된 한 사람으로 생각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오른쪽에서 첫번째), 고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씨(왼쪽에서 첫번째)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오른쪽에서 첫번째), 고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씨(왼쪽에서 첫번째)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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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과 인연 때문에 분향을 오는 이도 있다. 25일 봉하마을에 온 고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씨와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 등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 가족들이 그런 경우다. 이들은 1987년 6월 항쟁에 앞장선 노 전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박정기씨는 "6월 항쟁 때 부산 대각사 앞 등 남포동 거리에서 노무현 변호사와 투쟁을 같이 했다"며 "노 변호사가 중앙교회를 중심으로 한 거리 투쟁 일선에서 직접 지휘하고 투쟁했던 게 생각나고, 문재인·노무현 두 변호사가 우리 집에 찾아와 조문을 하고 위로의 말을 전했던 일도 생각난다"고 밝혔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이었던 박형규 목사는 "대검찰청 수사와 관련해 그 분도 울분을 터트릴 방법이 없어 택한 것이 자신을 희생시켜 부당한 당국, 검찰의 압박을 국민에게 알리려고 한 것 아니었겠느냐"며 "그런 의미에서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독재에 희생된 희생자의 한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강기갑 대표와 권영길 의원 등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조승수 의원과 노회찬 대표 등 진보신당 지도부도 봉하마을을 찾아 조문했다.

봉하마을에도 촛불이 밝혀지고 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밤마다 봉하마을에는 국화꽃을 영전에 바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삼삼오오 서 있거나 동영상을 관람하기도 한다.

조문객들은 촛불을 들고 가다가 마을 입구 도로에 있는 경계석에 놓아두기도 한다. 그러면 다음날 아침마다 경계석에 붙은 촛농을 제거하는 자원봉사자도 있다. 진보진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세웠던 소중한 가치들이 촛불처럼 타오르길 기대하고 있다.


태그:#노무현 서거, #진보진영, #이석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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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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