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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처가 일전에 모서리에 오른발을 부딪친 적이 있습니다. 잠시 통증이 있었지만 그 통증이 지속되는 것 같지는 않아 회사 일을 지속했습니다. 이틀 뒤 다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와 간신히 근무를 마치고 응급실로 갔다는군요. 방사선사진 촬영 결과 발의 입방골이 부서졌다는 판정이 나왔습니다. 결국 깁스Gips를 할 수밖에 없었지요.

크러치를 짚은 강민지. 뜻하지 않은 처의 부상은 예정에 없던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처가 크러치를 짚고 걷는 횡단보도의 좌.우회전 지시선처럼 인생은 수많은 갈림길의 연속입니다.
 크러치를 짚은 강민지. 뜻하지 않은 처의 부상은 예정에 없던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처가 크러치를 짚고 걷는 횡단보도의 좌.우회전 지시선처럼 인생은 수많은 갈림길의 연속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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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러치crutches를 하고 제 앞에 나타난 처가 몸씨 안쓰러웠습니다. 처가 발을 다친 것은 후유증이 남지 않는다 하더라도 분명 몇 주간 출입이 부자연스러운 처에게도 그리고 간간히 모티프원을 청소하는 일에 처의 도움을 받았던 제게도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더구나 회사에 휴가를 내고 일본 나라현 고세시에서 개최되는 '오토투어링캠프대회'에 참가할 예정이었습니다. 깁스를 하는 일은 바로 일본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날의 일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계획하고 예약했던 이 일이 무산되는 아픔이 겹친 것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참가를 갈망했던 일본 나라에서 개최되는 '동북아시아 오토투어링교류회'의 '동아시아 문화교류 페스티벌'을 알리는 포스터
 제가 오랫동안 참가를 갈망했던 일본 나라에서 개최되는 '동북아시아 오토투어링교류회'의 '동아시아 문화교류 페스티벌'을 알리는 포스터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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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부터 오토캠핑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제게 고세시의 초청으로 일본 모터홈동호회TAS(Trail Adventure Spirits)와 우의를 나누고 그 지역 주민들과도 문화를 나눌 수 있는 이번 기회는 오랫동안 기다린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황금연휴인 이 시간에 모티프원에도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분들이 오시도록 약속이 되었고, 일본에서 오시는 스즈키 아야Suzki Aya와 유이Yui, 홍콩에서 오시는 릉만기Wleung Mankee씨는 제가 자리를 비우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할 수 없이 시모노세끼로부터 일본의 관서 지방을 캠핑하면서 일본의 역사와 삶의 현장 속에 몸을 담그는 이 가슴 설레는 여행을 저의 처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처에게도 이런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하지만 행과 불행은 야누스Janus의 얼굴을 가진 한 몸임이 분명합니다.

저의 처가 박찬욱 감독의 아버님인 박돈서 교수님과 박 감독의 영화 <박쥐>를 개봉첫날 첫회에 함께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은 회사에 출근하는 일도, 일본의 오토투어링의 참가도 무산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크러치를 짚은 불편함이 처에게 박돈서교수님과 박찬욱감독의 신작'박쥐'를 함께 보면서 눈물 흘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크러치를 짚은 불편함이 처에게 박돈서교수님과 박찬욱감독의 신작'박쥐'를 함께 보면서 눈물 흘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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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책들 속으로 들어가 미련 없이 '행복한' 책 속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이 오른발의 여러 뼈 중의 하나가 부러지는 '불행한' 사고 때문입니다.

발의 부상이 처에게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발의 부상이 처에게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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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져진 동전의 앞면을 집든 혹은 뒷면을 집든 크게 마음쓸 일이 아닙니다. 애초에 동전은 앞뒷면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면도 앞면일 수 있습니다. 어느 면을 앞면으로 여기느냐는 그 동전을 주운 사람의 마음일 뿐입니다.

모티프원의 감나무와 고염나무. 저의 아버지께서는 고향집에 있는 늙은 물감나무가 이 모티프원에도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 물감나무는 제가 지금까지 먹어본 어떤 감보다도 붉고 달았습니다. 3년 전 아버지께서는 모티프원의 정원에 두 그루의 고염나무에 이 물감나무를 접붙여주셨습니다. 그런데 다음해 그 중의 하나가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해 접붙인 감 가지가 떨어져나가버렸습니다. 제게 참 속상하는 일이었지요. 두 해가 더 지난 지금 접붙이기가 이루어진 한그루는 물감나무로 자라고, 그 접붙인 감 가지가 떨어져나간 고염나무는 고염나무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티프원에 두 그루의 물감나무를 갖는 것보다 물감나무와 고염나무를 함께 갖는 일이 더 좋다고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접붙인 작은 묘목을 부러뜨려 원망스러웠던 그 누군가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티프원의 감나무와 고염나무. 저의 아버지께서는 고향집에 있는 늙은 물감나무가 이 모티프원에도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 물감나무는 제가 지금까지 먹어본 어떤 감보다도 붉고 달았습니다. 3년 전 아버지께서는 모티프원의 정원에 두 그루의 고염나무에 이 물감나무를 접붙여주셨습니다. 그런데 다음해 그 중의 하나가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해 접붙인 감 가지가 떨어져나가버렸습니다. 제게 참 속상하는 일이었지요. 두 해가 더 지난 지금 접붙이기가 이루어진 한그루는 물감나무로 자라고, 그 접붙인 감 가지가 떨어져나간 고염나무는 고염나무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티프원에 두 그루의 물감나무를 갖는 것보다 물감나무와 고염나무를 함께 갖는 일이 더 좋다고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접붙인 작은 묘목을 부러뜨려 원망스러웠던 그 누군가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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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행복,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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