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작가와 긴 대화를 나누게 된 사연

서재 겸 작업실(몽함실)에서 소설가 강준희가 전화를 받고 있다.
 서재 겸 작업실(몽함실)에서 소설가 강준희가 전화를 받고 있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작가 강준희는 누구?
소설가 강준희는 1935년 충북 단양군 대강면에서 태어났다. 문학에 대한 욕구는 대단했으나 가세가 기울어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농사부터 시작해 노동자, 장사 등 온갖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문학 열정을 버리지 못해 습작활동을 계속했다. 당시만 해도 책이 없어 읽을거리라면 무엇이든 찾아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 한다.

그는 신동아에 <나는 엿장수외다>가 당선하여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하 오랜 이 아픔을>이 당선하여 작가로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974년 <현대문학>에 오영수 선생의 추천으로 <하느님 전상서>가 실리면서 문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느님 전상서> <개개비들의 사계> <하늘이여 하늘이여> 등 저서가 있으며, 지난 11월 국학자료원이 그의 문학 자취를 10권 전집으로 묶어냈다.
나는 지금까지 작가 강준희(74) 선생에 대해 신문과 잡지를 통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고 들어왔다. 한 번도 선생을 만나보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서로 대화라는 것을 할 수가 없었다. 멀리서 듣기에 훌륭한 작가, 치열한 작가, 어려움 속에서 문학 외길을 걷는 작가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 전집 출판을 계기로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렇게 선생을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다.

선생과 인터뷰 약속은 지난 10일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서울에 수업이 있어서 가고 강준희 선생은 전집을 낸 출판사 국학자료원에 일이 있어 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몇 마디에 서로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고 다음 날인 11일 11시쯤 강준희 선생 댁에서 인터뷰를 가지기로 약속을 했다.

11일 아침 10시에 전화를 걸어 약속을 확인하고 11시30분에 선생 댁을 방문했다. 이날 선생과의 인터뷰는 형식을 갖추고 질문과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화두는 질문자인 내가 던지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강준희 선생이 자유롭고 허심탄회하게 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강준희 선생의 문학관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도 알 수 있었다.

점심 식사 후 시청 앞 공원에서
 점심 식사 후 시청 앞 공원에서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와의 대화는 점심식사를 하러 밖에 나간 것을 포함하여 4시간동안 이루어졌다. 두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고 밖에 나가 그가 좋아하는 바지락 칼국수로 점심을 했다. 그리고 인근 공원을 산책하며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눴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1시간30분 정도 삶과 문학에 대한 인터뷰를 계속했다. 점심식사 후 대화에서는 전보다 훨씬 더 사적인 이야기까지 오고 갔음을 밝힌다.

요즘 문학한다는 사람들, 진짜 문인 맞습니까? 

강준희 선생이 소설가이므로 나는 먼저 "요즘 문학한다는 사람들, 진짜 문인 맞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에 대한 강준희 선생의 대답은 "문인다워야 문인이지"이다. "요즘 1년에 글 한편 쓰지 않는 문인이 허다합니다. 그게 어디 문인입니까? 또 추천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문인 만들기는 이제 없어져야 합니다. 진정한 문인은 20% 밖에 되질 않습니다." 사실 강준희 선생의 표현은 조금 더 직설적이었다.
 
강준희 선생은 문인이라는 말 대신에 문사라는 말을 즐겨 쓴다. 문사란 글 쓰는 이로 선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문사란 속기가 없고 탐욕이 없어 청렴결백하고 지조가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고고하고 초연해야 한다. 그럼 의미에서 문사는 감투를 쓰지 않은 가난한 선비(白頭寒士), 베옷을 입고 어렵사리 살아가는 포의한사(布衣寒士), 세속을 떠나 산골에 파묻혀 사는 산림처사(山林處士)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서재의 일부: 문자향 서권기라는 한문이 보인다.
 서재의 일부: 문자향 서권기라는 한문이 보인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러한 강준희 선생의 말은 모두 자신을 지칭하는 것 같았다. 그는 지금까지 장(長)이라는 감투를 써 본 적이 없고,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상은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에 찌들어 어려울 때 중앙 문단에서 주는 문학상을 거부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문우들이 모두 말렸지만 그는 끝내 그 상을 받지 않았다.
 
강준희 선생은 밥술 깨나 먹는 집안의 외아들로 충북 단양군 대강면 장정리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해방 후 가세가 몰락했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젊은 시절 제천, 서울, 수원 등지를 전전하다 20대에 결혼하면서 충주에 자리를 잡았다. 현재 그는 충주시 연수동에 있는 21평 짜리 세원아파트에 살고 있다. 서민아파트지만 백두한사, 포의한사, 산림처사를 자처하는 그가 아파트에 살다니?

작은 공간 속에 있는 특이한 글귀들

소설가 강준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소설가 강준희가 살고 있는 아파트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조금 의아해 집을 찾으니 겉만 아파트지 안은 산림처사의 거처 그대로였다. 대문에 어초재(漁樵齋)라는 현판이 붙어 있고, 서재 겸 작업실로 쓰이는 안방에는 몽함실(夢含室)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서재가 부족해 거실에도 책이 쌓여 있고 한쪽 켠에는 육필 원고가 3단으로 천정 가까이 올라가 있다. 현재 있는 원고가 전체 원고의 절반 정도 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출판을 위해 보낸 원고 중 상당수가 되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파트 앞 베란다에는 많지는 않지만 몇 가지 화초와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어초재의 의미가 쉽게 와 닿지 않아 선생에게 그 의미를 물었다. 그러자 선생은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준다. 옛날 염라대왕이 잘못해서 애매한 사람 셋을 염라국으로 불러 들였다는 것이다. 염라국은 저 세상을 의미하기 때문에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염라대왕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들을 이 세상으로 돌려보내주기로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한 가지 소원을 물어본다.

첫 번째 사람은 그동안 배고프고 가난하게 살았으니 배 좀 안 고프게 해달라고 말한다. 이에 염라대왕은 그에게 땅을 10섬지기(200마지기) 준다. 두 번째 사람은 천민으로 인간대접 받지 못하고 살았으니 벼슬아치가 되게 해달라고 말한다. 이에 염라대왕은 그에게 고을 원을 한자리 준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은 "돈도 벼슬도 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경치 좋은 곳에 살면서 나무나 하고, 날씨 좋을 때는 낚시질하고, 비가 오는 날에는 낮잠을 자고, 한가한 때는 책이나 읽으면서 보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이에 염라대왕은 그 사람의 요구사항에 의아해하면서도 그의 소원을 들어준다.

당호인 어초재
 당호인 어초재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서재인 몽함실
 서재인 몽함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바로 이 세 번째 사람이 추구한 것을 한자로 표현하면 '어초 청조우수 독서삼매(漁樵 淸釣雨睡 讀書三昧)'가 된다. 이 중 맨 앞에 나오는 어초(漁樵)를 강준희 선생은 자신의 당호로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서재 문 위에 붙어 있는 몽함(夢含)은 말 그대로 '꿈을 머금은', '꿈을 품고 있는' 방이라는 뜻이다. 비록 가난하지만 글을 먹고 사는 문사의 꿈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몽함실에서 나눈 대화

서재로 들어가 나는 선생에게 문인의 자세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바로 나오는 말이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 중 한 구절이다. 그곳에 보면 이백이 신선에 비유되어 있을 뿐 아니라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李白一斗詩百篇  이백은 술 한 말에 시 백편을 썼다.
長安市上酒家眠  장안 거리 술집에서 잠이 들었을 때
天子呼來不上船  천자가 오라고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았다.
自稱臣是酒中仙  자기 자신을 술에 빠진 신선이라고 말하면서.

수묵 기법으로 그린 이백
 수묵 기법으로 그린 이백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세 번째 행의 '천자호래불상선'이라는 말을 강준희 선생은 가장 좋아한다. 소위 문사라면 아무리 높은 사람이 불러도 자신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자존심과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사정부 시절 문사라는 사람들, 대통령이 부르면 조르르 가서 머리나 조아리고 기분이나 맞춰 주던 일이 있었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고 회상한다. 그는 서정주 시인이나 김춘수 시인 같은 이들이 정권에 아부한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그 때문에 '동천'이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같은 시가 그 빛을 잃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부류의 사람은 줄었지만 추천이라는 이름으로 장사하는 사람이 있어 문단의 물은 오히려 더 혼탁해졌다고 말한다. 또 일부 문학지나 문예지들이 돈을 받고 오히려 원고를 싣는 볼썽 사나운 일을 하고 있어 문제라고 덧붙인다. 사실 문인들에게 있어 원고료는 일종의 생명줄인데 그것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원고료 액수도 적지만 그 원고료를 받을 수 있는 지면도 한정이 되어 있으니 한마디로 문인들은 다 죽을 수 밖에.

그래서 나는 함민복 시인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긍정적인 밥'에 나오는 것처럼 삶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지 않느냐고. 그러자 강준희 선생은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 현실은 늘 작가들에게 부담이 됨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경제적으로 대접을 못 받고 사회적으로도 대접을 못 받고 인간적으로도 대접을 못 받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밥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거실 한쪽에 쌓여 있는 육필 원고
 거실 한쪽에 쌓여 있는 육필 원고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는 또한 김춘수 선생을 욕했다가 그에게 추천받은 친한 문우를 잃은 사연도 소개했다. 이처럼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해도 친구를 잃을 수 있으니 문사 노릇 해 먹기도 어려운 세상이라는 것이다. 대화 중 선생에게 전화가 왔다. 출판기념회를 하는데 축사를 해달라고. 강준희 선생이 극구 사양을 하는 것을 내가 그 분이 그렇게 원하면 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한 마디 거들었다. 나중에 출판기념회에 가서 축사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아무 데나 가 덕담이나 하는 그런 문사는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깨끗한 이름

혜산 박두진이 쓴 처정(處靜)
 혜산 박두진이 쓴 처정(處靜)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거실 벽을 보니 유명한 문인들이 준 휘호들이 있다. 혜산 박두진 선생의 처정(處靜)은 혜산 선생 성격처럼 그렇게 고요하게 느껴졌다. 있는 그대로 옮기면 '주위가 고요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리고 김동리의 선생의 글 '동심지언기취여란(同心之言其臭如蘭)'은 혜산 선생과는 달리 조금은 더 직설적이다. '마음과 같은 말은 그 향기가 란과 같다'는 뜻이다.

이들과 다른 벽에는 우리나라 모양을 한 나무판에 '깨끗한 이름'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그 오른쪽을 보니 좌우명이라고 되어 있다. 깨끗한 이름이 바로 강준희 선생의 좌우명이다. 좀 더 쉽게 풀이하면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는 것이다. 이 좌우명은 그가 늘 강조하는 고고, 청빈 지조, 강직과 관련이 있다. 그는 지금도 깨끗한 이름을 지키면서 가난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서재 제대로 꾸며 놓고 사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집안 가득 쌓여 있는 책을 제대로 꼽아 놓고 필요할 때 찾아볼 수 있는. 소설가 강준희는 어릴 때 책에 굶주려 살았는데, 70대 중반인 지금은 그 책을 제대로 보관할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 이게 밑바닥 인생을 겪으며 수많은 체험을 하고 그 체험을 26권의 책으로 옮긴 문사 강준희의 현재이다. "천리마가 소금 수레를 끌다니!" 과거 한때 소설가 강준희가 몸담고 있던 연탄공장 사장 최호진씨의 한탄이다. 강준희 선생의 삶을 보니 깨끗한 이름의 댓가가 그렇게 큰 것인가 보다.

강준희의 좌우명인 '깨끗한 이름'
 강준희의 좌우명인 '깨끗한 이름'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태그:#강준희, #강준희 문학전집 10권, #어초재와 몽함실, #깨끗한 이름, #체험과 문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