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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학부생들은 어찌보면 이번 문제의 당사자다.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저자 김한종 교수(역사교육 전공)가 그들의 스승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앞으로 역사교사가 될 예비교사이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학부생들은 이 문제에 관한 대외활동을 하지 못했다. 학기 말, 시험 기간이라는 악재, 임용시험 직후라는 상황은 학생들의 관심과 활동영역을 제한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역사교육과 학부생들은 성명서, 학내 선전전 등의 형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왔다.

지난 8일, 학내 촛불 집회를 통해 예비교사들의 생각을 모으기도 했다. 교과서 수정이 확정되어가는 요즘, 이들이 근래의 상황에 대한 성명서를 내어 이를 싣는다. <기자 주> 

결국은 정부가 이겼다. 수정 교과서가 이미 가인쇄본으로 찍혀 나왔다. 이대로 가면, 내년에는 근현대사 교과서가 결국 바뀔 것으로 보인다. 설령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더라도 정부는 논란을 벌인 그 순간부터 이미 이겼다.

'현 근현대사 교과서와 같은 역사 서술은 좌편향'이라는 마녀사냥 자체가, 이후 만들어질 교과서와 근현대사에 관한 담론을 '효율적'으로 통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학부생 일동은 정부의 승리를 인정하며, 이를 성취하고자 한 눈물겨운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에 짧은 논평 하나를 덧붙이고자 한다.

결국 시중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수정처리 될 것으로 보인다. 금성출판사의 교과서는 그 논란의 핵심이었다. <PD 수첩> 중 한 장면
▲ 수정되고만 교과서 결국 시중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수정처리 될 것으로 보인다. 금성출판사의 교과서는 그 논란의 핵심이었다. <PD 수첩> 중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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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이 교과서가 좌편향인가에 대한 진실게임, 뉴라이트의 논리의 허구성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많이 이루어졌으므로 지면을 할애하진 않겠다. 다만 예비교사인 우리는, 앞으로 수업에서 어떤 가치를 가르쳐야 하는지 혼란스럽다는 점, 꼭 밝히고 싶다.

이제 친일파에 대해 아이들에게 교사인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다음과 같다. "대세가 기울면, 그것이 옳지 못한 것이라도 가만히 납작 엎드려라. 아니, 오히려 거기에 순종하고 굴종하고 동화해라. 그것이 삶의 지혜다."

5․16 '혁명'을 가르치면서는 어떨까? "절차와 원칙에 위배되더라도 결과적으로 ‘이익’이 되면 그것을 마음대로 어겨도 좋다"고 아이들을 계도해야 한다. 경제 발전을 이야기 하면서 "밑바닥에서 희생한 평범한 사람들보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역사를 주도하고 밝은 미래를 만들어 갈 사람들"이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것이 수정된 교과서가 우리에게 열렬히 웅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이제 현대사에서 정의는 사치이자 공허한 관념일 뿐이다.

국가적 폭력, 그 무덤 앞에서

우리는 기존의 교과서 논리에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이를 다양성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교과서 수정 과정이다. 그것은 유례없는 국가적 폭력 그 자체였다. 정부가 이를 이슈화 시키고, 수정지시를 하기까지의 시간은 약 70일 정도였다.

이 짧은 시간동안 정부는 특유의 ‘추진력’과 ‘뚝심’으로 교과서 수정을 이끌어냈다. 각 학교에 역사 관련 논문 한 줄 쓰지 않은 비전문가들이 특강 교사로 파견되었고, 그 프로그램마저 강요의 형식을 띠었다. 각 시․도 교육감들은 각 학교의 교장들을 불러 모아 교과서를 바꿀 것을 종용하였다. ‘5공스럽게’ 세련되지 못한 방식으로 정부는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켜 나갔다.

수정절차는 유례없이 용의주도했고, 신속했다. 그것은 곧 국가적 폭력이었다. <PD수첩> 중 한 장면
 수정절차는 유례없이 용의주도했고, 신속했다. 그것은 곧 국가적 폭력이었다. <PD수첩> 중 한 장면
ⓒ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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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김한종 교수는 이 논란으로 인해 집필하던 다른 교과서 저자직을 사퇴해야 했다. 게다가 교과부의 일방적인 수정 지시로 그가 쓴 근현대사 교과서는 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저자는 김 교수이되, 내용은 저자가 쓴 것이 아닌 것이 되고 만 것이다.

이 땅의 기본적인 저작권과 학문의 자유는 어디로 갔는가.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역사교육학이라는 학문을 체계화하고, 학문적 고민을 꾸준히 이어간 성실한 학자에게 이러한 현실은 너무 잔인하기만 하다.
                          
김 교수는 이 무도한 사건의 최대 피해자이다. 진중한 학자였던 그에게 어느 누구도 이번 일로 그가 입은 상처를 보듬어 줄 수는 없다.
▲ 김한종 교수 김 교수는 이 무도한 사건의 최대 피해자이다. 진중한 학자였던 그에게 어느 누구도 이번 일로 그가 입은 상처를 보듬어 줄 수는 없다.
ⓒ 한겨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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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화시키는 것은 근본적으로 물리력이라고 한다. 힘의 논리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점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마음이 아프지만 인정한다. 정권이 바뀌었다.

현 정부․여당이 가지고 있는 국정철학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정부가 통해 만들어가고 싶은 한국 사회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한나라당과 뉴라이트는 현 교과서가 좌편향이라는 주장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너무 잘 알 것이다. 교과부 역시 학계의 논의와 동의를 거치지도 않은 관점들을 교과서에 빠른 시일 내에 주입하는 것은 강요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이러한 막무가내가 가져올 결과는 생각해 보았는가.

도대체 논란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현장의 교사들은 분노에 휩싸이고 있다. 지난 12월 4일 MBC 100분 토론에 패널로 참여했던 교사 김육훈(전 전국역사교사 모임회장)씨는 토론이 끝난 후 전국역사교사모임 홈페이지를 통해 "잘 싸우지 못해 미안하다. 토론이 끝나고 몇 번이나 머리를 찧었다"라며 비통한 심정을 전했다.

홈페이지에는 김 교사의 글에 호응하는 많은 교사들의 답글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심정도 김 교사와 같았다. 눈물과 비통함 그 자체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그리고 교과부의 폭력에 현장에서 진지한 수업을 고민하는 교사들의 마음은 찢어지기만 한다. 과연 이러한 사회적 논란들이 가지는 기회비용은 무엇일까? 이것의 ‘교육적 효과’는 과연 얼마나 될까?

김육훈 교사는 <100분 토론>에 패널로 출현한 소감을 "잘 싸우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표현하며 비통한 마음을 전했다. 이러한 교사들의 어그러진 상처는 어찌할 것인가. 위는 전국역사교사모임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김육훈 교사의 글
 김육훈 교사는 <100분 토론>에 패널로 출현한 소감을 "잘 싸우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표현하며 비통한 마음을 전했다. 이러한 교사들의 어그러진 상처는 어찌할 것인가. 위는 전국역사교사모임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김육훈 교사의 글
ⓒ 전국역사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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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권이 흔든 것은 교과서만이 아니다

이번 논란으로 그들이 흔든 것은 근현대사 교과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다. 지난 5월, 국민들이 분노한 것이 단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우려와 건강권 때문이었는가. 진정으로 국민들을 분노하게 한 것은 절차와, 민의, 그리고 민주주의였다. 역사를 배우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학부생 일동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례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근현대사 교과서, #금성교과서, #김한종, #교과부, #한국교원대, #역사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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