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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년 동안 만들어지는 단편영화 수는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대표 독립영화제 중 하나인 '서울독립영화제 2008'이 최근 올해의 경쟁부문 공모를 마감했다. 이 영화제에 출품된 신작 단편영화의 수는 578편. 적어도 한 해에 578편 이상의 단편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참신한 시각과 재능을 가진 인재들을 발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년 많은 단편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한국 영화계에 좋은 현상일 것이다. 독일의 거장 감독 빔 벤더스도 일찍이 '모든 위대한 감독들의 영화는 단편영화에서 시작됐다'며 단편영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단편영화는 관심 받기도 어렵고 특히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다. 8일간의 영화제 기간이 끝나면 더 이상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잊혀지기 때문. 현재 국내 단편영화의 배급 경로라 하면, 주로 영화제들을 통해 일회적으로 소개되는 것이 전부일 뿐,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2월 4일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된 김종관 감독의 <연인들>은 남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연인들>은 김종관 감독의 단편영화 11편을 모아서 만든 옴니버스 영화. 김종관 감독은 그의 영화에서 특유의 감성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생기는 설렘이나 불안함,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의 모습들을 '연인'이라는 틀 속에 담아내고 있다.

 

단편영화 치고는 익숙한 얼굴도 여럿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편인 <폴라로이드 작동법>에는 영화 <가족의 탄생>, 드라마 <케세라세라>에 출연했던 배우 정유미가, 열 번째 단편 <헤이 톰>에는 CF 기대주인 <빨간 망토 소녀> 김가은과 패션모델 홍종현이 출연한다.

 

<연인들>은 단편영화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한계를 벗어나 극장을 찾아오는 일반 관객들의 자발적인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12월 6일,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갖는 김종관 감독과 배우 정유미를 만났다.

 

폴라로이드 작동법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연인들>의 첫번째 에피소드이자 김종관 감독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2004년 레스페스트디지털영화제에서 단편상과 관객상, 미장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다수의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 상영되었던 만큼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작품.

 

관객들 중 한 사람이 "이 영화를 이용해서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를 성공했다"고 감독에게 감사를 표시할 정도로 짝사랑의 두근두근한 감성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당연히 감독과 <폴라로이드 작동법>의 출연배우 정유미에게 많은 관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 두 분에게 각각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어떤 기억인지 궁금하다.

김종관 :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좀 힘을 빼고 찍은 작품이에요. 첫 작품 찍을 때는 좀 그 무게에 짓눌리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정유미씨는 서울예대 선후배 사인데 사실 이 작품 이전에 <사랑하는 소녀>라는 작품을 만들 때 섭외를 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 작품은 다른 배우랑 하고 그 뒷 작품인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함께 작업을 하게 됐죠.

 

처음에 섭외할 때, 사실 학교 선후배사이긴 한데 같이 학교를 다닌 적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좀 어색했는데, 정유미씨가 그 특유의 어색해하는 모습이 있어요. 그게 상당히 인상 깊었어요. 그래서 <폴라로이드 작동법> 시나리오는 아예 처음부터 유미씨를 염두에 두고 썼죠.

 

영화는 딱 하루 동안 찍었고, 예산도 10만원 정도밖에 안 들었어요. 처음 촬영은 외국어대학교 학보사를 빌려서 찍었는데 저희가 돈도 없고 해서 건물 전원에 이것저것 꽂아서 쓰는 바람에 정전이 나기도 했었죠. 영화 처음에 나오는 폴라로이드 사진은 제가 다섯 살 때 실제로 찍은 사진이에요.

 

정유미 : "저는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찍기 이전에 학교에서 단편영화를 몇 편 찍었었어요. 보통 단편영화라고 해도 며칠 찍거든요. 그런데 이건 좀 특이했던 게 감독님께서 하루 찍었다고 하셨는데 하루가 아니라 반나절 찍었어요. 그래서 저는 속으로 '이게… 과연 영화가 될까?' 했었거든요.(웃음) 그런데 영화 나온 거 보고는 음. 놀랐었어요." 

 

- 영화에서 연애를 소재로 많이 다루셨는데 나만의 '실연 극복법'이 있다면.

김종관 : "사실 저는 작품 속에서 연애에 관한 얘기를 한다기 보다는 어떤 관계에서 생기는 불안이나 설레임,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 같은 걸 표현하려고 많이 고민해요. 그게 제가 연애경험이 많다거나 그래서 그런 건 아니에요. 실연 극복법은 제가 실연을 잘 극복을 못해요."

 

정유미 : "저는 예전에 딱 한 번 기억이 나는데요. 그냥 막 울어요. 그냥 막 3일을 울다보면 그 다음에는 아무 생각이 안 나요."

 

- 정유미씨는 2004년에 이 작품이 나올 때와 지금 배우로서 많이 성장하셨는데 지금 영화를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정유미 : "오늘 쭉 영화를 다 봤는데요. <폴라로이드 작동법> 보다는 다른 작품을 보고 가슴 한 켠이 시렸어요. 아 이제 나는 <헤이 톰>에는 나올 수가 없겠구나.(웃음)"

 

<올가을의 트랜드> <헤이 톰>

 

<헤이 톰>은 어른스럽지 않은 취향의 여학생이 친구에게 친구의 남자친구에 대한 얘기를 듣고, 상상하면서 설렘을 느낀다는 내용. <올 가을의 트랜드>는 웹툰 작가와 담당기자의 첫 데이트를 담백하게 그리고 있다.  

 

- 11편의 단편을 보면 유난히 올해 만들어진 <헤이 톰>과 <올 가을의 트랜드>가 다른 단편들에 비해 '관객들에게 친절하다'는 느낌이 든다. 무슨 이유가 있는가?

김종관 : "단편영화를 찍을 때 저는 보통 제가 돈을 대거든요. <폴라로이드 작동법>도 그랬고, 다른 영화들도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일을 받아서 찍은 영화들이 많았어요. <메모리즈>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제작을 맡았던 영화고, <헤이 톰>같은 경우는 <매거진 T>라는 웹진의 홍보영화로 만들어진 영화에요. <올 가을의 트랜드>도 다른 곳에서 의뢰를 받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제가 영화 안에 담아내야 하는 뭔가가 있는 작품들이고 아마 그래서 좀 더 '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올 가을의 트랜드>에 보면 북촌이 자주 등장하는데 어떤 의미인가?

김종관 : :원래 <올 가을의 트랜드>는 포르투갈에서 개봉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뢰를 받아서 만든 작품이에요. 그런데 의뢰를 받을 때 조건으로 딸려온 주제가 '전통적인 가치의 변환'이었어요. 북촌은 원래 집들이 모인 곳이었잖아요. 예전의 거주공간이 카페 같은 걸로 바뀌고 그런 모습들을 영화 속에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낙원>, <길 잃은 시간>

 

<낙원>과 <길 잃은 시간>은 다른 단편들에 비해 김종관 감독 특유의 긴 호흡과 감성적인 여백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 길 잃은 시간’에 나오는 두 남자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데 사투리가 부자연스러워서 배우들의 연기가 반감되는 거 같다. 굳이 사투리를 설정한 이유가 있는가?

김종관 : "언젠가 길거리에서 경상도 남자 둘이서 싸우는 걸 보고 가슴이 아팠던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그걸 영화로 옮기려고 시도 했던 게 <길 잃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두 배우 모두 경상도 사투리를 전혀 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마산 사투리로 교습을 하다가, 부산 사투리로도 고쳐보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배우들도 자꾸 사투리에 신경을 쓰니까 연기가 안 됐죠. 결국 '둘 중에 하나만 잘하게 해야겠다' 해서 이렇게 찍었는데 아무래도 좀 어색하죠. 이걸 부산에서 한번 틀었었는데 관객들 반응이 아주…(웃음)."

 

- <낙원>은 러닝타임이 14분으로 이번에 상영되는 단편 중 가장 긴데, 대사도 없고 마지막에 세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김종관 : "단편작업하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시를 쓰지는 못하지만 시적인 영화가 되었으면 해요. 낙원의 경우 처음에는 구체적인 내러티브가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다 덜어내고 하나가 여러 의미를 지닐 수 있는 흐름을 생각해서 진행했어요. 애초 엔딩은 어떤 없어져버린 가족이 다시 모이는 서글픈 환상이나 뭔가 사라진 것이 그 자리에 있는 그런 환상적인 느낌을 생각했었습니다."


태그:#연인들, #김종관 , #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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