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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8일, 학교 축제인 제12회 봉화제의 막이 올랐습니다. 학년 초부터 책상 달력에 그날을 빨간색으로 표시해놓은 것은 제가 축제 행사를 담당하는 특별활동부장이기 때문입니다.

 

축제기획단 학생들과 올해 축제 주제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좀 평범한 것 같기도 하지만 '함께 꿈꾸는 세상'으로 정하였습니다. 이태 전 축제 주제는 '꿈꾸는 사람은 아름답다'였고, 작년에는 '내가 아름다운 이유'로 축제 주제를 정하였습니다. 올해는 그 두 가지를 배합한 셈이지요.

 

학교 축제는 학생회가 주관하는 행사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축제기획과 진행이 대부분 교사들의 몫이 됩니다. 그런 잘못된 구조를 바로 잡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우선 저 자신부터 학생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병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행사를 주관할만한 경험이 축적되지 못하여 그런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축제의 꽃은 단연 학급별 장기자랑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면학분위기를 해칠까봐 염려하시는 윗분들의 눈치를 보느라 충분히 연습할 시간을 주지 못했는데도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보인 학급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어떤 통과의례의 과정을 거친 뒤의 결실이어서 더욱 빛이 났습니다. 그 힘든 연습의 과정을 지켜본 저로서는 그 감동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급별로 끼와 재능을 겨루는 장기자랑은 서로의 협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종의 종합예술입니다. 때로는 서로의 뜻이 맞지 않아 다투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한 뒤에 하나로 용해되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바로 진짜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개인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서로 협력한다는 것. 그리하여 함께 꿈을 이루어간다는 것. 그것만큼 값지고 아름다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 교육은 그런 가치 있는 덕목들을 방치한 지 이미 오래입니다. 그면서도 요즘 아이들이 너무 이기적이라고 혀를 차기도 합니다. 꿈이 뭐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심지 않는 데서 거두려는 식이지요.

 

이번 축제를 준비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학생문화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 때문이었지만 축제가 끝나고 생각해보니 그 어려운 과정 또한 축제의 일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급별 장기자랑에서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축제 마지막 순서는 '함께 꿈꾸는 세상'이었습니다. 꿈에 관한 이야기를 세명의 축제기획단 학생들이 나와서 낭송하는 시간이었지요. 그 내용을 소개 하면서 축제 이야기를 갈무리할까 합니다.    

 

하나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유명한 말입니다.

 

사막을 '나'라고 고치고 우물을 꿈으로 바꿔보았더니 이런 글귀가 되었습니다.

 

"내가 아름다운 것은 그 어딘가에 꿈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꿈이 있는 사람은 마음 그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꿈을 가진 사람은 쉽게 시들지 않습니다. 바깥세상이 아무리 메말라도 안 세상은 생명수 같은 우물이 출렁이고 있기 때문이지요.

 

 

스스로 꿈이 없다고 생각하는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녀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꿈을 가지라는, 꿈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그런 내용이었지요. 소녀는 이렇게 답장을 썼습니다.

 

'저도 제 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 참 불행한 사람이죠. 선생님께선 저에게 항상 꿈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셨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 꿈이 뭔지... 전 오로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돈을 모으면 엄마 모시고 사는 게 제 제일 큰 꿈인 것 같아요. 그 생각으로 취업 나온 것이고요.

 

아빠 돌아가시고 고생 많이 하신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요. 엄만 저를 대학에 못 보낸 것을 미안해하세요. 그럴 때면 전 아니라고 내가 가기 싫어서 안 간 거라고 대답하곤 하죠. 항상 선생님 말씀을 새겨듣고 꿈을 가지려고 노력하려구요.'

 

 

며칠 후 소녀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이런 답장을 받았습니다.

 

'편지 잘 받아보았다. 먼저 하고 싶은 말은 넌 결코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그리고 넌 이미 꿈을 이루어 가고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꼭 말해주고 싶구나. 꿈을 갖는다는 것은 더 좋은 대학을 간다든지 더 유명한 사람이 된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을 갖는 것' 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넌 엄마라는 분명한 사랑의 대상이 있고, 엄마를 고생시키지 않으려는 갸륵한 마음으로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한 거니까 넌 누구보다도 네 꿈을 위해 사는 사람이지.

 

너는 불행한 사람이기는커녕 너무도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그런 너의 그 아름다움이 닫힌 아름다움이 아니라 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아름다움이길 바랄 뿐이야. 우리 모두 함께 꿈꾸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지금 네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그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이루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싶구나. 오늘은 여기서 줄이마. 그럼 안녕!'

 


태그:#학교 축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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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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