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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장천면 묵어리는 머들마을이라고 하지요. 길 가에 코스모스가 한창이랍니다. 며칠 앞서(10월3일) 이곳에서는 '코스모스 잔치'도 열렸지요.
▲ 묵어리 가는 길 구미시 장천면 묵어리는 머들마을이라고 하지요. 길 가에 코스모스가 한창이랍니다. 며칠 앞서(10월3일) 이곳에서는 '코스모스 잔치'도 열렸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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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게 뭐지?"
"어디? 뭐가?"
"저기 저수지 둑 위에 뭔가 있잖아!"
"그러네. 저게 뭐지? 빗돌 같은데?"
"가보자! 근데 저런 게 왜 저수지 위에 있을까?"

지난 일요일(10월 5일), 가까이에 있는 산골마을에 찾아갔어요. 마을 이름은 머들마을, 행정 이름으로는 '구미시 장천면 묵어리'랍니다. 머들마을은 예부터 논밭의 흙 빛깔이 검고 기름지다하여 '묵들' '먹들' '묵야'라고 일컫다가 오늘날 '머들'이 되었다고 하네요.

온통 뙤약볕을 받으며 비지땀을 흘리면서 자전거를 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우리 눈길을 이끄는 풍경마다 어느새 가을이 한창 무르익고 있었어요. 금빛 물결 일렁이는 노란 들판이 무척 아름답고 보는 이도 농사꾼 마음처럼 넉넉하더군요. 길가에는 여러 빛깔을 뽐내며 코스모스가 피어있어 가을 길에 자전거 타는 재미가 더욱 남달랐지요. 콧노래를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더군요.

우리도 덩달아 농사꾼 마음처럼 넉넉해집니다. 이 들판에 나락이 노랗게 익기까지 농사꾼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나와서 땀을 흘렸겠지요.
▲ 금빛 물경 일렁이는 들판 우리도 덩달아 농사꾼 마음처럼 넉넉해집니다. 이 들판에 나락이 노랗게 익기까지 농사꾼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나와서 땀을 흘렸겠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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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장천면에는 지난해부터 '코스모스 축제'를 열었답니다. 올해엔 꽃이 일찍 피는 바람에 잔치 때에 맞추느라고 애를 먹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 좋은 잔치를 널리 알리지를 못한 것 같아요. 구미에 사는 우리도 바로 잔치를 하루 앞두고 알았으니까요. 뒤늦게 갔지만, 정확하게 어디서부터 꽃길이 만들어져있는지를 몰라서 제대로 못 찾고 헤매다가 왔답니다. 이런 건 좀 아쉽네요. 좋은 잔치, 멋진 볼거리들은 널리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 코스모스 잔치 구미시 장천면에는 지난해부터 '코스모스 축제'를 열었답니다. 올해엔 꽃이 일찍 피는 바람에 잔치 때에 맞추느라고 애를 먹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 좋은 잔치를 널리 알리지를 못한 것 같아요. 구미에 사는 우리도 바로 잔치를 하루 앞두고 알았으니까요. 뒤늦게 갔지만, 정확하게 어디서부터 꽃길이 만들어져있는지를 몰라서 제대로 못 찾고 헤매다가 왔답니다. 이런 건 좀 아쉽네요. 좋은 잔치, 멋진 볼거리들은 널리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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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잔차타고 갑니다~ 하하하!

코스모스 길을 따라가다 보니,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마을 어르신 너덧 분이 쉬고 계셨어요.

"안녕하세요. 어르신들!"
"하이고, 난 학생인줄 알았더니 새댁이네?"
"아~ 네. 하하하!"

"마을이 참 예쁘네요. 그런데 이름이 왜 '묵어리'예요?"
"한자로 '잠잘 묵'에 '말씀 어'자여(아마도 '잠잠할 묵(默)' 자를 얘기하는 듯 해요)."
"이 마을이 말썽 없이 조용하게 산다고 해서 그렇게 지었대."

"아, 네. 그렇군요. 그만큼 마을 분들이 착하신 가 봐요."
"어, 말이 그렇게 되나? 하하하!"

마을 풍경도 매우 아름다웠어요. 집집이 감빛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감나무가 있고, 모퉁이를 돌 때마다 정겨운 옛 풍경이 우리를 반기네요. 텃밭에 심어놓은 잎 푸른 채소와 담장이덩굴, 또 크고 작은 돌로 얼기설기 쌓은 듯 하지만 꽤 튼튼하게 보이는 돌담, 대문도 없이 텃밭이 삽짝 노릇을 하는 것도 퍽이나 정겨웠어요.

어르신들만이 지키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

마을 앞 들머리, 옛날 사진에는 이 정미소도 빨간 양철로 된 곳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바뀌었더군요.
▲ 묵어리 정미소 마을 앞 들머리, 옛날 사진에는 이 정미소도 빨간 양철로 된 곳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바뀌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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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 어르신들, 이 마을은 이름처럼 아무 말썽없이 조용하고 순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터 잡으신 곳이랍니다.
▲ 묵어리 마을 앞 느티나무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 어르신들, 이 마을은 이름처럼 아무 말썽없이 조용하고 순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터 잡으신 곳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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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들이 터 잡고 사는 마을, 이 마을은 '효 시범마을'이기도 하답니다. 마을회관을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았고 매우 깨끗했지요.
▲ 묵어2리 마을회관 착한 사람들이 터 잡고 사는 마을, 이 마을은 '효 시범마을'이기도 하답니다. 마을회관을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았고 매우 깨끗했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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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도 거의 어르신들만이 살고 있고, 더러 빈 집도 보였어요.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는 고양이만 어슬렁거리면서 낯선 우리를 눈여겨보고 있었답니다.

묵어1리·2리를 지나 마을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긴 저수지 둑이 보입니다. 그런데 뭔가 남달랐어요. 멀리서 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둑 저끝 네 모퉁이에 쇠사슬로 둘러치고 그 안에 있는 것이 빗돌처럼 보였어요.

자전거를 타고 여러 마을을 다니면서 저수지를 많이 봤지만 둑에 빗돌이 있는 건 처음이에요. 궁금하면 가서 봐야겠지요? 둑을 따라가니, 마침 마을 사람 한 분이 앉아서 저수지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물은 많지 않았지만 낚시꾼들이 여럿 있는 걸 보니, 그들한테는 꽤 이름난 곳인지도 모르겠어요.

아저씨한테 인사를 하고 우리가 궁금했던 걸 살펴보니, 빗돌이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데, 앞뒤로 한문 글씨로 써놓아서 당최 무얼 뜻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삼산지(三山池)'라고 쓴 글씨만 겨우 알아보겠더군요. 곁에 있던 아저씨한테 이것저것 물었더니 매우 친절하게 알려주셨어요.

일제 강점기 때에 만들었다는 삼산지(三山池), 저수지를 만든 기념으로 세운 기념 빗돌 두 개가 나란히 있었어요. 하나는 저수지 이름을 쓴 것이고, 또 하나는 이걸 만들 때 공을 세운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새겨놓은 것이랍니다.
▲ 삼산지 일제 강점기 때에 만들었다는 삼산지(三山池), 저수지를 만든 기념으로 세운 기념 빗돌 두 개가 나란히 있었어요. 하나는 저수지 이름을 쓴 것이고, 또 하나는 이걸 만들 때 공을 세운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새겨놓은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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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물이 많이 빠졌지만, 본디 물이 깊고 맑았다고 해요. 지난날에는 커다란 송어도 잡히고 새우도 많았다고 하던데... 지금은 '베스'라는 물고기 때문에 다른 고기는 씨가 말랐다고 안타까워했답니다.
▲ 삼산지 지금은 물이 많이 빠졌지만, 본디 물이 깊고 맑았다고 해요. 지난날에는 커다란 송어도 잡히고 새우도 많았다고 하던데... 지금은 '베스'라는 물고기 때문에 다른 고기는 씨가 말랐다고 안타까워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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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수지 이름이 '삼산지'라요. 조 아래 오른쪽 편이 삼산이고, 저기 왼쪽이 강산골, 또 저짝 웃동네가 봉래라고 합니더. 저 앞에 있는 산이 금정산인데, 산기슭 봉우리가 세 개라고 삼산이지요."
"아아 그렇군요. 그럼 이 빗돌은 뭐지요? 저수지 둑에 이런 게 있으니까 무척 신기하네요."

"이건 옛날에 이 못을 만들고 나서 세운 건데, '기념비' 택이지요."
"아, 그래서 여기 이 빗돌 뒤에 사람 이름이 죽 쓰여 있는 거군요. 그럼 이게 생긴 지가 꽤 오래 되었나 봐요?"

"아이고 그럼요. 아마 일제 때 만들었을끼라요. 나도 어릴 적에 여서 하루 종일 멱 감고 놀았으니까…."

아저씨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옛날 생각이 나는지 얼굴에 가만히 웃음이 번져 나왔어요.

매우 놀라웠어요. 꽤 오래된 저수지이기도 했지만, 저수지를 만든 기념비까지 세운 것이 더욱 그랬지요. 아저씨는 우리가 자기 마을 이야기에 귀기울여 듣는다는 게 매우 좋았는지 어릴 적 이야기부터 하나둘 쉼 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셨어요.

아침에 소죽 끓여놓고 책보를 열십자(十)로 메고 냅다 뛰어가던 이야기, 산에서 나무하던 이야기를 무척 정겹게 들려주셨지요. 그 가운데 이 삼산 저수지에 꽤나 깊은 정이 담겨 있었답니다.

마을 사람들이 낚시꾼이 싫다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과 함께 고향의 산과 들, 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척 남달라 보였어요. 우리한테 고향 이야기를 쉼 없이 들려주면서 매우 즐거워하셨지요.
▲ 고향 사랑이 매우 남달랐던 아저씨 장상원(55)씨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과 함께 고향의 산과 들, 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척 남달라 보였어요. 우리한테 고향 이야기를 쉼 없이 들려주면서 매우 즐거워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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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산지 앞에 있는 빈터에 쓰레기를 버려놓았어요. 이곳을 찾는 분들, 쓰레기 좀 버리지 마세요. 자기가 버린 쓰레기는 되가져 가기!
▲ 쓰레기 삼산지 앞에 있는 빈터에 쓰레기를 버려놓았어요. 이곳을 찾는 분들, 쓰레기 좀 버리지 마세요. 자기가 버린 쓰레기는 되가져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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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지금은 물이 마이 빠졌는데, 옛날엔 물도 깊고 참 맑았어요. 커다란 송어도 잡히고 새우도 많았지요. 멱 감으러 들어갔다가 새우가 다닥다닥 붙어서 물에서 바로 나오기도 했으니까…. 그때 비하면 지금은 파이라요(안 좋아요)."
"지금도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여 사는 사람들은 낚시꾼들 별로 안 반가워요."
"왜 그렇죠?"

"쓰레기 때문이죠. 마캉 와갖고 아무데나 버리고 가니까 문제죠. 어떤 때는 자기 집 못 쓰는 세간도 차에 싣고 와서는 몰래 버리고 가는 사람도 있다니까요."
"오나가나 그게 문제네요. 산이든, 물이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이들이 있으니까요."

"마을 사람들이 한 해에 몇 번씩 나와서 둑방에 풀도 베고 청소도 하지만 안 고쳐지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저 둑 앞에다가 쇠줄로 막았더니 차가 못 들어온다고 싫어하더라고요. 그래도 우야겠어요. 그래라도 안 하믄 볼 수도 없는 걸……."

아저씨는 그 옛날, 물 맑고 깨끗했던 때를 떠올리며 매우 안타까워했어요. '삼산지'는 벌써 오래 앞서부터 낚시꾼들한테 이름이 났대요. 그런데 여러 해 앞서 '낚시 동호회'에서 '베스'를 풀어놓는 바람에 그 뒤로 다른 고기들은 씨가 말랐다고 합니다.

올해 쉰다섯 살인 아저씨는 몇 해 앞서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려고 대구에서 살다가 고향에 다시 들어오셨다고 합니다.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과 함께 고향의 산과 들, 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척 남달라 보였답니다. 이 머들마을(묵어리)은 땅이 좋아서 어떤 농사를 지어도 다 잘 된다고 하면서, 벼농사는 말할 것도 없고 고추나 수박도 잘 되는데, 무엇보다 품질이 좋아서 다른 데보다 값을 훨씬 많이 쳐준다고 했어요.

착한 마을, 묵어리에 살면서 고향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우리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내 잔잔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지요.

듣던 대로 '머들'이란 마을 이름처럼 기름진 땅에서 터 잡고 착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곳! 아무 말썽 없이 조용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고 해서 '묵어리', 기름진 땅에서 땀 흘려 농사를 지으며 터 잡고 착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에 언제나 넉넉한 웃음이 가득하기를 바라면서 마을을 벗어납니다. 부디 물 좋은 삼산지에 낚시를 하러 오는 이들도 이 순박한 마을 사람들 얼굴이 찌푸려지지 않도록 착하게(?) 머물다가 가기를 거듭 바라면서……. 

[머들 마을, 묵어리 풍경을 구경해볼까요?]



태그:#머들마을, #묵어리, #삼산지,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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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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