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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구 창동 아파트 단지 전경
 도봉구 창동 아파트 단지 전경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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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을 위한 거지. 우리 서민들 위하는 건 아냐. 대통령도 어렵게 살아봤으면서 우리 마음을 그렇게 모를까."
"언니. 시골은 더 난리요. 경제 살려놓으라고 뽑아놨더니 왜 더 살기 힘드냐고... 미국이 저리됐는데 제2의 IMF가 오는 게 아니냐고 말이요."

24일 오전 도봉구 창동 주공 아파트 단지 놀이터 평상에서 밤을 까고 있던 아주머니들에게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 완화 이야기를 슬쩍 꺼내니 기다렸다는 듯 말이 쏟아져 나왔다.

까던 밤마저 뒤로 밀어놓은 채 "어제 아파트 주민들끼리 이명박 대통령 하는 꼴 더 이상 못 봐주겠다는 말이 나오는 등 여론이 형편없다"는 말부터 "지난번 정부보다 나을 줄 알았더니 낫긴 개뿔이 낫냐"는 핀잔까지 이어졌다.

국민 중 2%만 내는 종부세를 내리고 국민 다수가 내는 재산세를 더 거둬들이겠다는 '조세 원칙'은 강북 서민들에게 거침없이 질타당했다.

종부세 완화안 '유탄' 맞은 강북 서민들, "정부가 서민 화 돋우고 있다"

종부세 과세 기준을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세율을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종부세 개편방안을 23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윤영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발표하고 있다.
 종부세 과세 기준을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세율을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종부세 개편방안을 23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윤영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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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3일 확정 발표한 종부세 개정안을 살펴보면 올해 공시가격의 55%였던 과표 적용률이 80%로 높아져, 내년도 주택 재산세 납세자가 부담해야 할 재산세가 산술적으로 25% 가까이 오른다. 게다가 정부는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의 부동산 교부세로 전액 지원된 종부세가 줄어들었을 때 그 감소분을 어떻게 보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못 내놓은 상태다.

17년째 이곳, 창동 주공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김희자(58)씨는 "종부세 폐지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니 그러려니 했는데 느닷없이 재산세가 오른다는데 이것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싶더라"며 "강북 사람들에게 해당 사항 없는 종부세가 폐지되는데 왜 강북 사람들이 돈을 더 내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정부안대로)재산세를 계산해보면 우리 집은 20만원 가까이 재산세를 내야 한다"며 "더 내는 돈의 액수는 적지만 안 그래도 가계가 어려워지는데 정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돈을 더 내라고 하니 괘씸하다"고 말했다.

"우리야 자식들이 분가해 나가 사는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내 자식들과 같이 젊은 사람들도 돈을 모아야 집도 사고 할 것 아니냐. 그런데 없는 사람한테 세금 더 거두고, 있는 사람들만 챙기면 어디 이 세상 살맛이 나겠나."

김씨는 요새 들어 촛불시위를 한 젊은이들도 이해하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대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저런 짓이나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얼마나 쌓였던 게 많았으면 저리 나왔나'라고 생각한단다.

"정부가 사람들의 화를 너무 돋우고 있다. 이 상태로 간다면 대통령이 제대로 임기를 마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도 탄핵 한 번 당했는데 제2의 노무현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지 않나."

60대 노인도, 가정주부도... "강남 부자만을 위한 정부, 선거 잘못했다"

23일 정부가 발표한 종부세 개편방안에 따르면 종부세 납부 기준이 9억원 초과로 상향 조정되면서 개인 주택 분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총 37만9천세대(2007년 기준)에서 15만6천세대로 60% 가까이 감소한다.
 23일 정부가 발표한 종부세 개편방안에 따르면 종부세 납부 기준이 9억원 초과로 상향 조정되면서 개인 주택 분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총 37만9천세대(2007년 기준)에서 15만6천세대로 60% 가까이 감소한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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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를 둔 부모는 김씨보다 더 마음이 곪고 있었다. 4살 난 딸아이와 함께 놀이터로 온 정아무개(45)씨는 "우리 집은 늘어봤자 1만7천원 정도지만 자꾸 서민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 되는 것 같아 슬프다"고 말했다.

정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지만 한달에 30~35만원이 든다는 이야기에 포기했다.

"기본이라도 해주고 싶어서 내후년에는 유치원에 보낼 생각이다. 그런데 처음 입학하면 100만원이 든단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빚은 안지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먹는 거, 입는 거를 더 줄여야 할 것 같다."

강북구 번동 금호타운 앞에서 만난 박현숙(40)씨의 장바구니에는 앞서 만난 정씨의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두부 1모, 고등어 반손, 애호박. 오늘 저녁 찬거리다.

전용 95㎡(28평) 소형 아파트에서 남편과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살고 있는 박씨에게 종부세는 남의 이야기였다. 박씨는 "올해 초에 집값이 좀 오르긴 올랐는데, 어차피 여기 팔고 어디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묻어놓은 돈이다"며 "집값이 올랐다는 이야기도 강남에 집이 있는 사람이 10억 넘게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도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종부세 완화가 나 같은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줄 몰랐다, 적은 돈이긴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종부세 대상자였고 이번에 혜택을 본다는 뉴스를 보니 화가 치솟더라"며 "이명박 정부는 강남 부자만을 위한 정부다, 우리 구 국회의원이 한나라당이라는 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도봉구 쌍문동 한양아파트 노인정 앞에서 만난 임창수(61)씨는 이명박 대통령을 대뜸 '나쁜 놈'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임씨에게 현재 장남 내외, 그리고 5살 난 손녀와 함께 살고 있는 전용면적 99㎡(30평) 아파트는 자신이 30년 간의 직장 생활을 거쳐 겨우 마련한 집이었다.

"내 집을 가진 게 내 나이 44살 때였다. 그 이후로 이곳에서 쭉 살아왔다. 먼저 간 아내랑 같이 서울에서 집 하나 갖기 위해 얼마나 알뜰하게 살았는지 모른다. 서울에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나. 그런데 집 몇 채나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된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선거를 잘못한 것 같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다 나쁜 놈들이다."

집 없는 사람들 "무주택자 위한 부동산 정책 편다더니 한숨만 나온다"

강북 아파트 단지 인근 공인중개사. 벽에 붙은 주택 가격은 대개 3억원에서 6억원 사이였다
 강북 아파트 단지 인근 공인중개사. 벽에 붙은 주택 가격은 대개 3억원에서 6억원 사이였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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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집을 못 가진 사람들, 재산세 안 내는 사람들은 이번 종부세 완화안에 대해서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장위뉴타운, 드림랜드 공사 등으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성북구 하월곡동 D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이아무개(35)씨는 "내 집 마련의 꿈이 더 멀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가 살고 있는 전용면적 82㎡(24평)의 전세가격은 1억3천만원 작년보다 2000만원 가까이 올랐다.

현재 이씨는 5살 난 다른 집 남자아이를 봐주는 '보모' 부업을 하고 있었다. 아이 부식비 등을 제하고 나면 월 30만원 정도가 이씨에게 떨어진다. 이씨는 "전세금이 올라 은행에서 대출을 좀 했다"며 "이자라도 덜어볼 생각으로 부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에게 종부세 완화, 그리고 그에 따른 재산세 상승 등은 무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최근 이명박 정부가 내놓는 부동산 정책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곤 한다고 말했다. 뉴타운 신설이나 종부세 완화가 집 있는 사람에게나 통할 이야기라는 것이다.

"종부세 완화도 집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적어도 20평이 넘는 집으로 들어가려면 최소한 2억이 넘는 돈이 필요한데 빚 갚기도 빠듯한 처지에 꿈도 꿀 수 없다. 남편이랑 '평생 집 없이 사는 거 아니냐'는 한탄 비슷한 걸 한다. 정부가 무주택자, 서민 위해서 부동산 정책 편다더니 결국 우리는 꿈도 못 꾸는 집만 늘어나고 전세금은 올라간다. 한숨만 나온다."

이씨와 헤어지면서 D 아파트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벽에 붙은 아파트 가격을 흘끗 쳐다봤다. 전용면적 138㎡(41평) 거래가 6억원, 지난 23일 압구정동에서 본 전용면적 112㎡(33평) 거래가의 딱 반절이었다. 종부세 완화라는 또 하나의 '강남 불패 신화'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강북 서민의 박탈감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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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종합부동산세, #강북, #재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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