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명절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게 바로 고향이다. 명절이 되면 고향에 대한 사무침은 더욱 커진다. 베트남 만두 짜요를 만들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명절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게 바로 고향이다. 명절이 되면 고향에 대한 사무침은 더욱 커진다. 베트남 만두 짜요를 만들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 고기복

관련사진보기


"침 안 맞으세요?"
"이번에 고향 가서 이것저것 약도 해 먹고, 다 고치고 왔어요."

매달 허리에 침을 맞으며 일을 해야 했던 중국동포 조낙철씨는 여전히 숫기가 없었지만, 한 달 전에 비해 혈색이 훨씬 좋아보였습니다. 한 달 간 고향에 다녀왔는데, 그 때 치료 받았던 것들이 효험이 있나 봅니다.

만 3년을 산업연수생으로 일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입국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그에게 고향에 다녀 온 소감을 물어 보았습니다.

"다행이네요. 고향에 가 보시니 어땠어요?"
"아이고, 고향이라고 해 봤자, 고향 같지 않아요. 뭐, 한 삼 년 만에 가보니 형편없습디다. 할머니 할아버지 밖에 없다 보니, 만날 사람도 없고 여기보다 심심합디다."
"젊은 사람들이 없어요?"
"젊은 사람들이 간간이 보이긴 하는데, 그거이 한족 사람들이라 대체 정이 안가서리..."

중국 연변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조씨에게 연변은 태어나고 자란 곳입니다. 하지만, 3년이란 세월은 마흔을 넘긴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낯선 사람들을 만들어 놓았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여긴 같이 일하는 사람만 해도 여섯 명이고, 이런데 와서 만날 사람도 있고 하니, 심심하진 않는데, 고향이라고 찾아가 봤자 얘기할 사람이 없어요. 고향이라는 게 여기나 저기나 매한가지라요. (정다운) 사람 있으면 되지."

대화를 통해 조씨의 혈색만 좋아진 게 아니라,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연변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느라고 정을 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른 많은 고향을 등진 젊은이들처럼.

여권만 나오면 집에 가요

"저 곧 집에 갈 거예요. 여권만 나오면 간다고요."

여권만 나오면 집에 간다고 하는 네팔인 비스오까르마(이하 비스)의 주정 아닌 주정 소리는 벌써 석 달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정 아닌 주정이라 함은, 술을 먹지 않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비스가 늘 술을 먹은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비스는 스물을 넘길 때부터 외국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십대에는 사우디에서 한국 건설노동자들과 같이 일하기도 했다는 그는 두 아이를 둔 가장입니다. 하지만 벌써 몇 년째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스는 작년 초부터 지금까지 받지 못한 월급이 일천만원이 넘습니다. 일한 곳마다 월급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월급을 주지 않는다는 회사들을 확인해 보니, 한 체불업체에서는 하도급업체라 원청이 부도났다는 핑계로 지불을 거부하고, 또 다른 업체는 폐업 처리돼 있었습니다.

일 년 가까이 제대로 된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는 비스는 언제부터인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나 봅니다. 그렇게 마시기 시작한 비스는 술에 취해 길을 걷다가 넘어져 두개골 함몰과 안구 돌출로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수술 당시 신분증도 없고, 보증인도 없는 상태에서 쉼터로 연락이 왔었습니다. 지난 6월 중순 이야기입니다.

수술 당시 병원비 지급 능력이 없었던 비스의 퇴원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병원 측에선 무연고자를 오랫동안 입원시켜 봤자 별 소득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는지, 병원비는 나중에 갚는다는 약속을 받고 수술 후 2주가 지나 퇴원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쉼터 생활이 벌써 석 달째 접어들고 있는 비스는 요즘 툭하면, 사람을 붙잡고 "저 곧 집에 갈 거예요. 여권만 나오면 간다고요"라고 말을 합니다. 어찌 보면 어린아이 투정 같아 보이고, 어찌 보면 모자란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할 정도로, 반복하여 '여권만 나오면 집에 간다'고 말을 하는 건, 고향 생각이 간절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비스가 집에 가지 못하는 건 여권 때문만은 아닙니다. 대사관에선 신청만 하면 귀국할 수 있도록 '여행증명서'를 만들어준다고 합니다. 정작 문제가 되는 건 돈 문제입니다. 이제껏 받지 못한 급여 문제와 정산이 끝나지 않은 병원비 문제 외에, 귀국 항공료도 없는 실정 때문입니다.

비스는 요즘 추석 연휴가 가까워지면서 집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심정을 만나는 사람마다 하소연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명절이면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행사가 많이 열린다. 그 행사들이 고향에 대한 그들의 그리움을 달랠 수 있을까.
 명절이면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행사가 많이 열린다. 그 행사들이 고향에 대한 그들의 그리움을 달랠 수 있을까.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짧은 만남, 긴 아쉬움

"아빠 일하는 거 도와주고 싶은데."

헤어짐에 앞서 거친 아빠의 손을 잡고 투정부리듯 말하는 아들 아즈하리(14)를 뒤로 하고, 농장으로 돌아가는 주나이디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습니다.

주나이디는 경기도와 안산시가 주최한 모범외국인 가족초청사업 대상자로 선정되어 지난 4일(목)부터 7일까지 아내와 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해외이주노동을 떠났던 입장이라, 언제나 가족의 안부가 궁금했고,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녀석은 늘 눈에 밟혔었습니다. 그런 그가 가족 초청 기회를 잡은 건 남들과 비교하면 큰 행운이었습니다.

3박 4일 동안 주나이디는 비록 여럿이 함께 하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민속촌에 가고, 한강유람선도 타 보고, 가족과 함께 동대문에서 쇼핑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주최 측이 주관하는 여타 행사에도 함께 해야 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3박 4일간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인천공항을 빠져나오는 그의 눈엔 서러운 눈물과 아쉬움 그리고 밀려드는 그리움이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처음 가족을 초청해 준다고 했을 땐, 긴가민가했어요. 뭣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들 때문에 돈을 쓸까 했으니까요. 그런데 진짜 가족을 데려다 주니까 믿기지 않는 거예요. 일 년 조금 지났는데 아들 녀석이 그새 몰라보게 크고 의젓해졌어요."

이어진 그의 속내는 짧은 만남, 긴 아쉬움을 담고 있었습니다.

"아들 녀석 말마따나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한 번쯤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어요. 그냥 번듯한 회사에서 사람들 소개시키니까, 이 녀석이 제가 그곳에서 일하는 줄 알아요. 허허."

"그래도 아들 녀석이 글쎄, 아빠가 일하는 걸 도와주고 싶다네요......"

가족초청대상자가 될 수 있도록 추천해 준데 대해 전화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던 주나이디의 목소리가 갑자기 막히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곧 있을 추석에 한가해질만하면 '차라리 그때 고향에 갈 걸'하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며, 가족 상봉 후유증을 겪을 그의 모습이 쉬이 그려졌습니다.


태그:#추석, #만남, #고향, #이주노동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