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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복숭아를 수확 중인 민중의 집 사무국장 안성민씨
 유기농 복숭아를 수확 중인 민중의 집 사무국장 안성민씨
ⓒ 장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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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를 캐고 있는 농활대원들
 고구마를 캐고 있는 농활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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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활이 뭐 별 거 있나. 촌 사람들 어떻게 사나 보는 거지. 힘든 일 안 시켜~"

오전 내내 고구마며 풀 뽑기, 고추 따기 등을 하고 점심을 먹으러 마을회관에 들어서자마자 쓰러졌다.

농활대는 퍼져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반질반질 까무잡잡한 피부가 돋보이도록 샛노란 옷을 입은 병덕 아저씨가 무심하게 던진 말은 "힘든 일 안 시켜"였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서울 촌놈에게 농사는 분명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지난 15~18일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광격리 샘골마을에서 민중의 집이 주최한 '생태농활'에 뛰어들었다. 찌는 무더위에 대한 걱정도 잠시, 다행히 간간이 내리는 빗줄기에 적당히 서늘한 '일하기 좋은 날씨'가 계속됐다.

농활, 대학생만 하는 게 아니다

이번 농활은 여러 가지로 색달랐다. 대학교 새내기 때 멋모르고 선배 따라 갔던 그런 농활이 아니었다. 보통 '농활'하면 대학생들이 학창시절 한 번쯤 경험하는 필수코스 아니던가(물론 요즘은 자기 앞가림들 바빠서 학교에서 '봉사학점'을 준다고 해도 마다하지만).

일단 구성원이 특이했다. '농활은 대학생들이 가는 것'이라는 편견을 깼달까. 참여한 총 17명의 사람들은 30~40대 직장인부터 대학생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 농활대의 구심점에 '민중의 집'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민중의 집(http://www.jinbohouse.net/)은 지난 7월 19일 서울 마포에 '1호점'을 열었다. 현재까지 약 200여 명의 회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지역 자치공간으로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의 재정후원은 없다.

'노동자와 서민의 교육·문화공간 생활협동 네트워크'를 꿈꾸며 준비하고 꾸려왔던 것이 이제 꼭 한 달. 어려운 재정환경 속에서도 꿈틀꿈틀 모양새를 갖춰가며 다양한 실험들을 진행 중이다. 이번 '생태농활'도 그 움직임의 연장선이었다.

농활 앞에 굳이 '생태'가 붙은 것도 이번 농활의 특이점이었다. 샘골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환경농업이 듣기는 좋거든, 근데 농사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야"라거나 "돈벌이는 안 돼도 일거리는 많다"는 고충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농약·화학비료 등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자연 순환의 움직임에 발맞춰 농사를 짓는 분들의 고민 속에는 절망하고 죽어가는 농업에 대한 대안이 숨어 있었다. 무엇보다 이 마을은 생활협동조합과 연계돼 있었다. 19가구 300여 농민의 환경농업을 지지하고 동감하는 1000여명의 눈 밝은 소비자 조합원들의 의기투합은 농촌을 활기차게 만들고 있었다.

무농약 고구마, 먹을 때는 좋았는데 직접 캐보니...

새빨갛게 익은 고추만 따는 임무가 주어졌다. 서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허리와 다리가 아프고 손 끝이 아렸다. 힘들어도 빨갛게 익은 고추를 보는 기분이 얼마나 뿌듯하던지.
 새빨갛게 익은 고추만 따는 임무가 주어졌다. 서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허리와 다리가 아프고 손 끝이 아렸다. 힘들어도 빨갛게 익은 고추를 보는 기분이 얼마나 뿌듯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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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의 짧은 일정은 오전 6시 기상으로 시작됐다. 졸린 눈을 비비고 나오자마자 날 맞아준 맑은 공기에 머릿속이 맑아진 듯 했다. "농약을 안 쳐서 공기가 맑다"던 허균(60) 원주생협 이사장의 말이 허튼 것이 아니었다.

어느새 또렷해진 눈과 가벼운 몸을 놀려 원유수 샘골작목반 반장의 고구마밭으로 향했다. 보이는 풍경이 고구마밭인지 풀밭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초록 풀이 무성했다.

당근·고추·감자·벼 등 끝도 없이 이어지는 농사일에 차마 매지 못한 밭이라고 했다. 농약을 치지 않은 지 약 10년. 두 내외분의 손길이 차마 닿지 못한 곳에는 그렇게 풀이 무성했다.

한참 풀을 베고 본격적으로 고구마를 캐기 위해 쭈그려 앉았다. 흙을 파니 올라오는 흙내음이 싱그러웠다. 비온 다음 촉촉이 젖은 검붉은 흙에서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생명력이 느껴졌다.

그러나 줄줄이 달려 나와야 할 고구마는 안타깝게도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간혹 나오는 것들도 알이 작아 원 반장의 탄식을 불러왔다. "잡풀들이 고구마를 못 자라게 한 것"이라고 했다. "일하는 게 보통이 아니야, 한 철이거든, 농사짓는 사람들은 순간순간이 중요해, 누구 탓을 하겠어"라는 무던한 말투에 내가 다 속상했다.

제 때 걷지 못한 아욱 밭도 다 훑어내야 했다. 때를 놓쳐 웃자라 상품이 될 수 없는 아욱을 잘라내는 농활대의 마음은 아픈데 반장의 표정은 덤덤하기만 했다. 대신 참을 가져온 원 반장의 부인이 한 마디 거들었다. "약을 못 치니 품이 많이 든다"고. "'남의 건강 지키려고 내 건강 해친다'는 소리도 듣는다"며 웃는다.

"생활협동조합과 연계되어 있어 안정적인 공급을 할 수 있어 좋다"면서도 어려운 마음은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앞으로 이렇게 농사 지어야 해, 힘들어도 발을 못 빼겠어"라는 말을 더하는 원 반장 부인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보기 좋은 게 맛도 좋다고? 

수확한 고추들의 새빨간 색이 입맛을 당긴다.
 수확한 고추들의 새빨간 색이 입맛을 당긴다.
ⓒ 장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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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게 매달린 고추를 따는 것도 농활대의 몫이었다. '똑, 똑' 경쾌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고추는 신선했다.

원 반장의 부인은 "농약을 안 치니 벌레도 많이 먹고 색도 예쁘지 않아 상품가치는 떨어진다"고 말했다. 병들어 쭈그러진 고추를 떼어내며, 그래도 눈 밝은 소비자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빨간 고추만 따기로 교육을 받고서도 따보면 군데군데 덜 익은 고추들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서툰 손길이 혹시 누를 끼친 것은 아닌지 염려하는 물음에 그는 "아유, 우리는 해주는 것만도 미안하고 고맙지"라고 손사레를 친다,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하려고 해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유기농으로 길러온 복숭아 따기도 한창이었다. 원혁정(42) 샘골작목반 반장은 "농약으로 범벅이 됐던 땅은 3년 이상 저농약 기간과 무농약 기간 3년을 거쳐야 유기농으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고 했다.

최소한 5년 이상 인내심을 갖고 지켜가며 만들어온 땅에서 자란 복숭아도 고추처럼 반질반질 예쁘지도 완전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적어도 농부의 고집과 인내로 길러낸 복숭아 맛만큼은 일품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귀농했으면 좋겠다"던 원혁정 샘골작목반 반장은 "농사 짓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는 거 절망적으로 보지 않아, 어쩌면 이건 기회야"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에게 친환경 농업은 전망이 밝은 대안사업이자 기회였다.

난 "농촌 우습게 아는 것들은 내려와서 지 입에 넣는 것들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보고 해봐야 한다"던 한 할아버지의 말을 곱씹으며 밥 한 톨도 허투루 버릴 수 없었다. 땀 흘린 뒤 먹는 밥이 참 맛있기도 했다.

이 날 수확한 복숭아들은 마을에 있는 가공공장을 통해 '병조림'으로 만들어져 전국 생협으로 유통된다.
 이 날 수확한 복숭아들은 마을에 있는 가공공장을 통해 '병조림'으로 만들어져 전국 생협으로 유통된다.
ⓒ 장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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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 생태농활에 함께 참여하세요

대학생 김문주(21)씨는 올해만 벌써 두번째 이 마을을 방문했다. 여러 번 찾는 이유를 묻자 "바람"이라는 선문답을 한다. 무슨 뜻인지 바로 파악되지 않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땀 흘려 일하고 나서 불어오는 바람이 좋아요"라고 수줍게 답했다.

사람보다 벌레를 더 많이 만난 2박3일이었다. 꼬물꼬물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벌레들이 대견했고, 일 끝난 뒤 허리를 곧게 펴고 만나는 바람의 냄새와 맛이 참 달았다. "그게 돈을 내면서까지 농촌봉사활동을 오는 이유"라던 대학생 박상혁(21)씨의 말에 공감이 갔다. 

민중의 집은 가을걷이 농활도 계획 중이다. 더디고 미련하지만 정직하고 옳은 먹을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아픈 다리와 굽은 허리를 두드려가며 일하는 농민들을 한 번 만나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장일호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민중의 집, #생태농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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