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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인 사르따나(Sartana)는 지난 화요일(8일) 2년 넘게 일하고, 재계약까지 했던 회사를 그만 두었다. 회사에서 '외국 사람은 국민연금 들지 않는 거'라고 하면서 국민연금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외국인도 국민연금을 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르따나는 회사측에 몇 번인가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나온 안내문을 갖다 주면서 국민연금을 가입해 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계속 국민연금 가입 요구를 하자, '기다려, 기다려'하며 국민연금을 들지 않던 회사에서 얼마 전, "외국 사람은 국민연금 들지 않아. 그거 해 달라고 계속할 거면 인도네시아 가!"라고 하는 바람에, 노동부 고용지원센터를 통해 근무처변경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화학 약품을 쓰는 도금업체라 수시로 손등과 팔뚝에 물집이 잡히는 사고가 나고, 약품으로 인한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어서 그런지 한국 사람들은 회사에 들어와서 얼굴을 익힐 때쯤이면 쉬이 떠났다. 그런 환경에서 묵묵히 일을 했던 사라따나로서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한다. 거칠고 힘들어도 일이 손에 익은 곳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로 사르따나의 사장과 전화통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사르따나의 사장은 몹시 섭섭하다는 투로 쏟아 부었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내가 한국 사람들 그만두게 하면서도, 지 놈들 외국에서 왔다고 일도 더 시키고, 꼬박꼬박 월급 거르지 않고 줬더니 국민연금 안 든다고 이제 와서 그만둔다고 하니, 이거 사업해 먹겠어요?"

마침 사르따나의 사장과는 예전에도 최저임금 문제로 통화했던 적이 있어 한 마디 물어 보았다.

"예전에 사르따나 부탁으로 최저임금 안내문이나, 국민연금관리공단 안내문을 보내드렸던 기억이 있는데요. 사르따나가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냥 최소한이라도 지켜 달라고 말하던 거잖아요."

"내가 그놈들하고 계약한 대로 돈을 주겠다는데 누가 뭐라 그래. 하도 외국 사람들이 이것저것 따지고 요구하니까, 그래도 남들 받는 만큼 줄려고 그것도 다 들어줬었는데, 이제 와서 국민연금 들어 달라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2년 넘게 일하던 직원이 그만두는데 대한 서운함이야 이해가 갔지만, 배은망덕이니, 적반하장이니 하는 말들이 다른 사람을 두고 할 말이 아닌 듯 했다. 문자를 써 가며 떠난 사람을 욕하는 분에게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를 말해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사르따나처럼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 국민연금 납부를 꺼리는 업주들로 인한 피해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그나마 사장이 국민연금 납부 자체를 거부했던 사르따나는 아디 수실로(Adi Susilo)에 비하면 피해가 없는 편에 속한다.

국민연금을 2년 넘게 납부했지만, '외국인은 국민연금 없다'며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않았던 사장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경찰에 고소했던 아디 수실로는 얼마 전 경찰로부터 사장을 처벌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배임 행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디는 그런 상황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

국민연금 공제액이 기록돼 있다.
▲ 급여명세서 국민연금 공제액이 기록돼 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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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 월급에서 꼬박꼬박 공제해 놓고는 십 원 한 푼 납부한 적이 없다니, 말이 됩니까? 저 같은 경우는 한 달에 5만원 넘는 돈을 공제 당했는데, 일 년이면 60만원이 넘고, 이 년이면 120만원이 넘는 돈이에요. 한국사람 말고 외국 사람만 해도 다섯 명인데, 천만 원이 넘는 돈을 사장님이 그냥 가져간 거예요. 외국 사람이 국민연금이 없다고 하면, 처음부터 국민연금이라고 돈이라도 떼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디는 국민연금 얘기를 하면 할수록 속이 상한다고 한다. "이번 달에 인도네시아에 간 수르노(Surno)는 3년 일하고 국민연금으로 280만원 넘게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돈만 떼이고, 십 원도 못 받을 처지라고요. 사장님이 출국만기보험(퇴직금 성격의 보험)이라도 제대로 냈는지 모르겠어요."

경찰 조사가 들어가자, 사장은 고소인인 아디 개인에게 국민연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연금공단에서 개인에게 직접 지급하는 것은 안 된다고 하여 지금까지 피해 구제가 되지 않고 있다. 결국 사장의 상식을 믿는 수밖에 없다는 말인데, 문제는 아디의 사장은 사르따나의 사장보다 대화가 더 어렵다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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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국민연금,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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