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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2월 22일 8주년을 맞이했습니다. 8살배기가 된 <오마이뉴스>는 올해 여러 가지 연중기획 가운데 하나인 '백인보-희망을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 독자 여러분에게 찾아갑니다. '백인보-희만사'는 작지만 소중한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들, 의미있는 도전과 실험을 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 희망의 싹을 틔우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땀방울이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습니다. '백인보-희만사'의 이번 주인공은 놀이연구가 이상호씨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놀이연구가 이상호 회장이 29일 오후 세계 각국에서 직접 모은 놀이기구가 전시된 충북 충주시 양성면 영죽리 한국전래놀이협회 사무실에서 팽이와 제기 등을 보여주고 있다.
▲ 놀아 보세요~ 놀이연구가 이상호 회장이 29일 오후 세계 각국에서 직접 모은 놀이기구가 전시된 충북 충주시 양성면 영죽리 한국전래놀이협회 사무실에서 팽이와 제기 등을 보여주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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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살아요?"

갑작스레, 창졸간에 던져진 독일인의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맴돌며 한참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할까'라는 혼잣말이 이어질 뿐이었다.   

2006년 5월. 인도를 여행했다. 힌두와 이슬람 유적이 도시 곳곳에 산재한 남인도 함피(Hampi). 그곳 한 허름한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겸해 맥주를 마셨다. 곁에는 3명의 외국인이 앉아있었다. 그들의 국적은 독일과 호주, 그리고 캐나다.

가벼운 눈인사 후에 그들이 내 국적과 향후 행선지를 물었다. 여행지의 외로움을 핑계 삼아 일시적으로 친구가 된 우리의 대화주제가 자기 나라의 '휴가 기간'에 이르렀을 때다. "보통 한국 노동자들은 1년에 5~7일 정도의 여름휴가만을 사용할 뿐"이라는 말에 셋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짧게는 4주, 길게는 2개월의 휴가를 보낸다는 그들의 눈빛에서 의아함과 측은지심이 읽힌다고 느끼던 순간, 바로 그 질문이 날아왔다. 23살 독일 여자였다.

"한국 사람들은 노는 걸 싫어하나 봐요? 왜 그렇게 살죠?"

얼른 답하지 못하고 끙끙거렸던 것은 변변찮은 내 영어실력 탓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놀이다... 진짜?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기 위해선 잘 놀면서 편히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 사회에선 놀거나 쉬는 것을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있다. 언제나 '놀이'보단 일이, '쉼'보단 공부가 우선이다. 그리고, 그걸 당연시한다.

이러한 '한국 특유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놀이가 곧 공부다" "우리의 미래는 잘 노는 사람이 이끌어갈 것이다"라고 말하는 놀이연구가 이상호(47)는 분명 독특한 사람이다. 발품을 팔아가며 세계의 전래놀이를 찾아다니고, 한국의 전통놀이 복원에 힘을 쏟고,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과 함께 놀이 속에 숨은 신명을 호흡하는 이상호.

6년 전. 북적거리는 인파와 붉은색 네온사인이 점령한 도시 서울을 떠나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영중리 인적 드문 시골마을로 이주한 '잘 노는 사람' 이상호를 찾아간 것은 그라면 위에 언급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로 노는 걸 싫어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뭔지, 혹시, '잘 못 노는 한국인'이란 단정은 선입견이 아닌지 등등.

봄을 재촉하며 내린 눈 탓에 차 안에서 내다보는 산마루가 하얗던 2월 28일. 서울에서 2시간여를 달려 그가 영중리 야트막한 언덕에 마련한 '한국전래놀이협회'를 찾았다.

아래는 '놀이'와 바로 그 놀이에 '매료된 사람'에 관한 짤막한 보고서다. '놀이삼아' 읽어도 좋다.

놀이의 이치는 생의 이치

놀이연구가 이상호씨의 지도를 받은 학생들이 만든 색팽이. 다양한 모양의 그림이 팽이가 돌아가면서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어 내고 있다.
 놀이연구가 이상호씨의 지도를 받은 학생들이 만든 색팽이. 다양한 모양의 그림이 팽이가 돌아가면서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어 내고 있다.
ⓒ 놀이연구가 이상호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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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쌩이'는 양쪽에서 줄을 팽팽하게 돌리며 '쌩~쌩~' 소리가 난다.
 '쌩쌩이'는 양쪽에서 줄을 팽팽하게 돌리며 '쌩~쌩~' 소리가 난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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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놀이'에 주목하게 된 것은 언제인가? 계기가 있었는지.
"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좋아 교육대학을 갔고, 교사가 된 사람이다. 졸업 후 1983년 처음 발령받은 곳은 서울의 한 초등학교였다. 80년대 대부분의 학교가 그랬듯이 그곳도 과밀학급이었고,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신경을 써줄 수 없는 분위기였다. 교대 시절에 꿈꾸던 환경과 너무 달랐다. 회의감이 들었고,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교실에선 말 한 마디 하지 않던 아이가 운동장에서 '놀이'를 하면서는 친구들을 이끄는 광경을 봤다. '아이들의 본래 모습은 뭔가'라는 의문이 생겨났다. 교실에서도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놀이에 대한 관심이 싹텄다."

- 25년 전 초임교사의 고민이 당신을 이름도 생소한 '놀이연구가'로 만들었다고 보면 맞을 것 같다. 지금은 어떤가? 당신의 판단처럼 놀이가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나.
"이곳으로 옮겨와 가흥초등학교를 거쳐, 현재는 충주 칠금초등학교에 있다. 가흥초등학교에 근무할 땐 '중간놀이시간'이란 걸 만들어 비석치기·제기차기·ㄹ자 놀이 등을 아이들과 함께 했다. 전교생이 30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라 가능했다.

그 중간놀이시간을 통해 고학년이 저학년을 챙겨주고, 데리고 놀아주는 좋은 전통이 생겼다. 아이들이 어울림이 주는 즐거움을 깨달은 것이다. 서울에서 교사생활을 할 때도 교장을 설득해 놀이교과서를 만들고, 1주일에 2시간 주어지는 '학교재량시간'을 노는 데 할애했다. 아이들이 좋아했음은 물론이다."

- 단순히 '기쁨'과 '즐거움' 외에도 놀이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을텐데.
"초등학생들도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하다. 아이들에게 놀이란 공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사실 현장에서 보면 한 학급당 15~20% 정도가 크건 작건 장애현상을 보인다. 틱장애(눈·얼굴·목·어깨 등을 움찔거리는 것), 자해, 과도한 피해의식 등인데, 예상 외로 심각하다. 놀이는 이들 안에 내재된 억압을 터뜨려 장애를 치료해준다. '놀이치료'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과도하게 부여된 공부에 대한 중압감을 놀이를 통해 털어버릴 수 있다. 거기에 놀이는 리더십과 사회성을 선물해준다. 그리고, 패배를 의연히 인정할 수 있는 태도와 협력과 상생을 가르친다. 세상살이의 이치와 지혜가 놀이 속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놀이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한국놀이의 특징 '공동체에서 역학찾기'

놀이연구가 이상호씨의 지도를 받은 학생들이 우유팩을 이용해서 딱지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잘 뒤집어 지지 않게 하기 위해 신발로 딱지를 두들겨서 최대한 납작하게 만든다.
 놀이연구가 이상호씨의 지도를 받은 학생들이 우유팩을 이용해서 딱지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잘 뒤집어 지지 않게 하기 위해 신발로 딱지를 두들겨서 최대한 납작하게 만든다.
ⓒ 놀이연구가 이상호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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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차기를 하는 이상호씨.
 제기차기를 하는 이상호씨.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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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연구회 '놂'을 만든 것으로 안다.
"1987년 놀이와 공부의 유기적 결합을 고민하던 나와 동료 2명이 만든 단체다. 이후 회원이 늘어나면서 회보도 만들고, 정기적인 모임도 가졌다. 방학 때는 교사들에게 '놀이연수'를 하기도 했다. 그 때는 '교사가 놀이의 중요성을 알게 되면 학교현장이 달라질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교사 개개인이 과도한 업무를 맡아야하는 현실 속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 한국전래놀이협회는 그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설립된 것인가?
"맞다. 놀이연수의 대상자를 교사에 한정하지 않고, 부모와 지역 문화 활동가로 확대하고자 2006년 새로 만들게 됐다. 독서모임의 효과가 부모를 교육시킴으로써 나타나는 것을 보고 놀이 역시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놀이연수 대상자가 주로 어머니와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인들이다. 앞으로도 이쪽 방향으로 나갈 계획이다."

- 각 국의 놀이를 찾아 여행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어디가 인상 깊었나?
"프랑스와 스위스에 갔을 때 놀란 건 골목에 아이들이 없다는 거였다. 그곳엔 이미 또래들의 골목놀이가 사라졌다. 다양한 놀이의 자리를 대신한 건 획일화된 스포츠와 가족 단위의 유흥이었다. 반면, 중국 연변에 가서는 골목을 가득 채운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선 이미 없어진 '한국놀이'를 하고 있는 조선족 아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놀이에 참여하는 모습만 봐도 그 아이가 조선족인지 한족인지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이채로운 체험이었다."

- 한국의 놀이가 다른 나라의 놀이와 구별되는 점이 있나?
"일단 놀이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땅에 금을 긋고 하는 놀이가 많다. 여럿이 놀면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간다는 것이 한국놀이의 특징이다. 놀이를 통해 공동체의 중요성을 학습하는 것이다. 무더운 동남아시아 나라들에 비해 활동적인 놀이가 다수라는 것도 특징의 하나다."

- 당신의 유년은 어떠했나? 어떤 놀이를 하며 놀았는지.
"인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울로 이주했다. 내가 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6남매가 가난한 동네에서 어렵게 살았다. 하지만, 동네에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며 구슬치기·딱지치기·깡통차기를 하던 시간은 행복했다. 그 시절 나 하나만 가난했던 것도 아니고…. 배고팠지만 행복했던 시절로 유년을 추억할 수 있는 것은 놀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 요즘 아이들의 놀이는 옛날과 비교해 어떻게 달라졌는가?
"닌텐도·컴퓨터·휴대폰·MP3 등이 아이들의 놀이도구가 됐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이런 놀이는 사람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나와 전체의 관계를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즐거움을 함께 나누던 상생의 놀이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한국 사람들은 놀 줄 모른다? 멍석만 펼쳐봐라"

학생들이 우유팩으로 만든 딱지로 학교 곳곳에 모여 딱지치기를 하고 있다.
 학생들이 우유팩으로 만든 딱지로 학교 곳곳에 모여 딱지치기를 하고 있다.
ⓒ 놀이연구가 이상호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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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만이 아니라, 한국의 어른들도 놀 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렇지 않다. 설과 추석·대보름과 단오 때 우리 조상들이 했던 놀이를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농경사회의 특징이라 할 집단놀이가 너무나도 신명나게 펼쳐졌다. 이런 놀이에 대한 열정과 신명이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출구를 잃었을 뿐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 신드롬'은 한국인의 내부에 자리한 놀이에 대한 에너지를 증명해준다. '한국 사람은 놀 줄 모른다'는 것은 선입견에 불과하다. 멍석만 펼쳐지면 누구보다 잘 노는 게 우리다."

- 그렇다면, 잘 놀기 위해선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매년 학기 초마다 아이들에게 '놀이가 곧 공부다'고 선언한다. 놀이의 참된 즐거움을 느끼려면 공부(일)에 대한 부담감부터 먼저 털어내야 한다. 놀이를 통해 체득하는 쾌감도 공부와 일을 통해 얻게 되는 만족만큼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생이 즐겁다."

- 놀이와 행복 혹은, 희망이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개인적 견해지만,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IQ(지능지수) 뛰어난 사람이 아닌 PQ(놀이지수)가 높은 이들이 주도할 것이라고 믿는다. 놀이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해준다. 잘 노는 사람이 희망을 만들어갈 것이다. 놀이가 주는 즐거움이 행복지수를 높인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것이고."

-향후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잘 놀기 위한 계획이 있다면.
"한국전래놀이협회 5개 지부(제주·충북·서울경기·대전·전주)의 활동을 강화하고, 전통놀이 대회도 열 생각이다. 놀이의 참된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가르칠 지도자 양성에도 주력해야할테고. 놀이가 기층문화를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한 때다."


태그:#백인보, #이상호,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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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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