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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6년, 육아 5년 만입니다. 처음으로 아이들로부터 해방되어 남편과 호젓하게 데이트를 했습니다. 가까이에 아이들을 딱히 맡길만한 곳도 없고, 애들에게 절절매는 스타일이어서 결혼후 남편과의 데이트는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저 5년동안 정신없이 아이들만 바라보며 전력질주 하듯 달려왔습니다. 종종 남편과 콘서트를 다녀왔느니, 여행을 다녀왔느니 하는 친구들이 부러울 따름이었죠.

제게도 이런 날이 오는군요. 문화생활에 목말라 있던 저를 위해 남편이 하루 휴가를 내기로 했습니다. 몇날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황금같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해서 둘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장고끝에 오랫동안 벼르던 '불멸의 화가 반고흐展'을 보기로 했습니다.

시청역에서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정동으로 이어지는 그 길은 사시사철 나름의 미학이 있습니다. 온통 헐벗은 채 잔가지만을 내놓은 가루수에서 강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어느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벌써 봄을 준비하는지 모델이 영하의 강추위에도 얇은 봄옷을 입고 잔뜩 움추린 채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길건너 거리의 화가들은 그림들을 전시해 놓고 그옆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그런 풍경들을 뒤로하고 시립미술관으로 향합니다.
시립미술관 외벽을 덮고 있는 전시 플래카드
 시립미술관 외벽을 덮고 있는 전시 플래카드
ⓒ 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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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임에도 미술관 안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모여 들었을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궁금해집니다. 전시회 입구에서 '반고흐전'글씨만이라도 카메라로 담으려는 청년과 안내요원 사이의 실랑이가 마냥 정겹습니다.

전시장안의 풍경과 대가의 작품을 눈과 가슴에 담기 위해 오감을 활짝 엽니다.

이번 전시는 불꽃같은 삶을 살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천재 화가 반고흐의 불후의 명작들을 한자리에 모은 회고전입니다. 10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예술가의 삶을 살며 남긴 900여점의 작품 중에 67점을 연대기적으로 구성해 전시했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 갑니다.

가난한 농민사회의 생활상을 통해 인류애를 실현코자 화가의 길을 택한 초기 네덜란드 시기(1881 - 1885) 에서는 유독 'sorrow(슬픔)'에 마음이 갑니다. 헤이그의 길거리에서 만난, 병든 미혼모이자 매춘부였던 시엔(sien)은 그의 인생에서 짧지만 함께 했던 유일한 여인이라 합니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누드작품인 이 작품은 절망에 빠진 듯한 가여운 여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 sorrow(슬픔)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누드작품인 이 작품은 절망에 빠진 듯한 가여운 여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빛을 발견하면서 자신의 화풍의 기틀을 마련한 파리 시기(1886 - 1888)는 초기 네덜란드 시기의 어두운 화면에서 벗어나 밝은 톤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남긴 40여 점의 자화상 중에 35점의 자화상이 파리 시기에 그려졌을 만큼 엄청난 양의 자화상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명암대비적인 기능으로서의 빛이 아닌, 색채효과로서의 빛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인식한데서 탄생한 작품
▲ 수레국화, 데이지, 카네이션이 담긴 화병 단순히 명암대비적인 기능으로서의 빛이 아닌, 색채효과로서의 빛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인식한데서 탄생한 작품

이상향을 꿈꾸며 색채의 마법을 구현한 아를르 시기(1888 - 1889)는 그의 화가인생에서 가장 격정적인 시기였습니다. 이 때 그는 인물화와 풍경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잘 알려진 고갱과의 결별로 인해 자신의 귀를 자른 사건도 이 시기의 일입니다.

고갱과 두달을 지내며 많은 작품을 그린 집. 고갱이 결별을 고하자 그에 대한 집착으로 자신의 귀를 자르며 그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 노란집 고갱과 두달을 지내며 많은 작품을 그린 집. 고갱이 결별을 고하자 그에 대한 집착으로 자신의 귀를 자르며 그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불타는 예술혼을 자연을 통해 분출한 셍레미 시기(1889 - 1890)에서는 여러차례 예고없는 발작이 반복되면서 정신병원에 입원도 했습니다. 그리고, 반고흐의 그림을 특징짓는 강력하고 불타는 듯한 붓놀림의 작품들이 두드러지기 시작합니다.

반고흐의 그림을 특징짓는 강력하고 불타는듯한 붓놀림이 두드러지는 작품
▲ 프로방스 시골 야경(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 반고흐의 그림을 특징짓는 강력하고 불타는듯한 붓놀림이 두드러지는 작품

도슨트의 설명도 없이 미술에 문외한인 내가 고흐 작품의 회화적 기법이나 의미들을 해석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오디오 기기 대여해주던 데 빌려올까?"

때마침 남편이 주요 작품을 설명해주는 오디오 기기를 대여해 와서 다시 한번 천천히 작품들을 음미해 볼 수 있었습니다.

남프랑스의 따사하고 태양빛 가득한 노랗고 붉은 색채들이 생의 마지막을 장식한 70일간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 시기(1890)에서는 냉기를 머금은 녹색과 파란색조로 대체됩니다. 고흐는 생의 마지막 70일을 보낸 이곳에서 무려 80여점의 유화작품들을 그렸다고 합니다.

오베르의 농가와 들판이 주는 봄기운을 굵은 곡선이 윤곽을 이루는 독특한 필치로 정감있게 표현한 작품
▲ 농가 오베르의 농가와 들판이 주는 봄기운을 굵은 곡선이 윤곽을 이루는 독특한 필치로 정감있게 표현한 작품

그의 수많은 초기 드로잉 작품들 중에서 간결하면서도 거친 필치가 살아 숨쉬는 듯한 이  그림이 마음에 듭니다.

초기 드로잉 작품으로 훗날 그의 양식적 특징으로 자리하게 되는 요소들을 다분히 담고 있다. 다듬지 않은 거친 선의 처리는 말년에 유화작품의 특징을 이루는 거친 붓 터치와 윤곽선 처리로 이어진다.
▲ 가지 친 버드나무 길 초기 드로잉 작품으로 훗날 그의 양식적 특징으로 자리하게 되는 요소들을 다분히 담고 있다. 다듬지 않은 거친 선의 처리는 말년에 유화작품의 특징을 이루는 거친 붓 터치와 윤곽선 처리로 이어진다.

살아 생전보다 죽어서야 이름을 알린 반고흐. 고통과 비극으로 점철된 그의 삶과 작품을 뒤로하고 나오는 길. 그의 '자화상' 앞에서 멈춥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모델을 구하지 못해 주로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다는 그는, 슬프고 애닯은 눈으로 어딘가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인물화를 그릴때 인물의 외형보다는 인물 각각의 특성, 즉 내면의 표현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 자화상 인물화를 그릴때 인물의 외형보다는 인물 각각의 특성, 즉 내면의 표현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림 그리는 일은 내게 구원과 같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테니까."

'하루동안의 휴가'마법이 풀릴 시간이 다가옵니다. 서둘러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딸들이 기다리고 있는 놀이방으로.

반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의 준데르트에서 태어나 1890년 3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반고흐는 예술에 모든 것을 바친 비운의 화가이다. 10년이라는 짧은 활동기간 동안 가난으로 점철된 척박한 환경 속에서 동시대의 어떤 예술가보다도 처절한 삶을 살았으며 예술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고 말로 할 수 없는 영혼의 모든 것을 담아내려 했다.

후기 인상파 작가로 구분되는 반 고흐는 너무나 짧았던 불꽃 같은 삶을 통해 900여 점의 작품을 남겼지만 살아있는 동안 그의 작품은 거의 인정 받지 못했으며 생존 시에 단 한 점의 작품만을 팔았다.

예술은 그에게 유일한 피난처였고 오직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창조력 넘치는 삶으로 바꾸어 놓으려 했다. 태양을 찾아 남프랑스로 내려간 그는 정신적 고통과 영혼의 구도적인 길을 찾아 불꽃 같은 작품들을 탄생시켰고, 미술사상 유례없는 걸작들을 남겼다. - 전시회 팜플렛 중


태그:#반고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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