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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명절 설이 이틀앞으로 다가왔다. 고향으로 향하는 이들과 서울에 남아서 설을 준비하는 이들이 공존하는 오늘, 아파트 안 풍경은 여느 때보다 적막하기만 하다.

 

양가 어머님께 드릴 내의를 사기 위해 집 근처 재래시장을 찾았다. 마트나 백화점에서 사도 되지만, 어머님들이 입으실 두툼한 내의는 시장안 속옷가게에서 파는 물건이 가장 좋다. 질도 좋고 주인 아줌마의 넉넉한 인심에다 가격 흥정까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설대목의 분주함이 느껴진다. 오가는 행인들과 그 행인들을 붙잡아 세우려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시장은 그 어느때보다 활기차다. 꽃집 할머니는 봄을 알리는 연초록 앙증맞은 화분들을 내어 놓는다.

 

 

평소 비싸서 자주 사지 못했던 딸기가 한팩에 3000원이다. 절로 우와 소리가 나온다. 시장입구 과일가게 청년들은 입추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추운 날씨에 입김을 호호 불며 대목을 놓치지 않기 위해 큰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딸기가 한팩에 3000원, 싱싱한 사과 배 있어요."

 

어전에도 싱싱하고 살이 도톰하게 오른 온갖 생선들이 주인들을 기다리며 진열되어 있다. 주인아줌마는 연신 찾아오는 고객들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옆 채소가게도 설 제수용품을 사려는 손님들로 북적이고, 볼이 빨갛게 얼은 주인은 분주히 움직이며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소문난 찐빵 만두' 가게에서는 아저씨가 손수 유과며 강정들을 만들고 있다. 그 자리에서 직접 노릇하게 만들어 내는 유과가 맛있어 보인다. 사진 찍는 내게 "하나 먹어 봐요"하며  수줍게 웃으신다.

 

'

'총각네 외양간'은 오늘 유달리 손님이 많아 보인다.

 

 

"국물내게 좋은 꼬리 하나만 줘봐."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어머니!"

 

설대목 세일을 실시해선지 어머님들로 가게안과 밖이 가득차 있다. 가게가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다지만, 설대목 때문에 한창 바쁘다며 총각은 즐거워 했다.

 

시장 안, 수십 여개의 가게 중에서도 사시사철 경기를 타지않고 만원인 가게가 있다. 떡볶이집이다. 단돈 2000원이면 배불리 한끼 정도의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 늘 손님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그러나, 불과 며칠 사이에 떡볶이며 튀김 가격이 올랐다.

 

"(21일로) 가격이 올랐습니다. 떡볶이 1인분 - 1500원, 튀김 3개 - 1000원"

가게 입구와 안에 가격인상을 알리는 종이가 붙여있었다.

 

"어쩔 수 없었어. 밀가루 가격이 보통 올라야 말이지. 그러니 우리도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지. 큰일이야. 물가가 너무 올라서."

 

연초 뉴스와 신문지상을 뒤덮었던 밀가루 가격 폭등 기사가 재래시장 떡볶이가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가격이 올랐지만, 양은 전보다 많아졌고 여전히 맛있었다.

 

'종로떡집'에는 설에 빠질 수 없는 떡이 가득 쌓여있다. 각종 포장된 떡들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내의를 사들고 돌아오는 길, 할머니 한 분이 노점에서 열심히 도라지를 다듬고 계신다.

 

 

"아직 개시도 못하고 있어. 도통 안 팔려. 뭐 필요한거 없어."

 

12시를 넘어가고 있는 시각에, 개시도 하지 못했다는 할머니는 지나가는 행인들을 간간이 쳐다보며 또다시 도라지를 다듬으신다.

 

그나마 정비된 재래시장 안은 설대목의 분주함으로 활기찬데, 불과 500m밖에 안 떨어진 할머니의 노점에는 나물값을 물어보는 행인 한 명 없다. 재래시장의 두가지 풍경이다.

 

10년 전 상설 골목시장으로 시작됐다는 골목시장은 그 일대 재개발로 인해 언젠가는 문을 닫게 될 것이다. 내가 사는 목동은 아파트숲으로 가득찬 동네다. 허나, 도로 하나만 건너면 친정엄마 같은 어머님들의 구수한 옛정을 만날 수 있고, 싸고 싱싱한 물건들을 살 수 있는 재래시장이 있어 좋았다. 하지만, 그곳에도 머잖아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설 것이라 한다.

 

몇 년 후면 이곳의 설대목 풍경도 변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골목시장은 서울 양천구 신정3동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태그:#재래시장, #설날, #설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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