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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 이란내 이동경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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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진입 전 마지막 마을 '잔닥'에서 현지학교 교장 선생님의 식사 초대를 받다. 덕분에 계획에도 없었던 작은 사막 마을에 이틀이나 더 머물렀다.
 사막 진입 전 마지막 마을 '잔닥'에서 현지학교 교장 선생님의 식사 초대를 받다. 덕분에 계획에도 없었던 작은 사막 마을에 이틀이나 더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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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과 달리 잔닥에서 이틀을 더 머물렀다. 잔닥에 도착한 첫째날 방문했던 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에게서 점심식사를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주변의 많은 다른 학교 선생님들이 우리를 보러 왔고, 우리 또한 그 분들과 특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 우리가 건너려는 카비르 사막의 일부분은 남에서 북으로 140㎞다. 중간에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기 때문에 물과 음식, 비상식량을 잔뜩 준비해서 새벽달을 보며 떠났다. 하지만 100㎞ 이후, 영아의 무릎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기에 결국 우리는 지나가는 트럭을 잡아 탈 수밖에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소금사막 카비르. 처음부터 끝까지 뻥 뚫린, 그냥 사막 그 자체였다. 그 옛날 길도, 문명의 이기도 없었던 당시, 낙타를 몰고 이곳을 지났던 사람들이 느꼈을 법한 그 막막함과 두려움은, 이미 나있는 길을 따라가는 우리가 느끼는 것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비록 우리가 생각했던 모래 언덕이 끝없이 펼쳐진 그런 사막은 아니었지만 사막의 그 광활함과 황량함을 느끼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이란 고원의 카비르(Kabir)와 루트(Root) 사막은 소금사막이라 일컬어진다. 혹시나 하고 땅에 널려있는 소금을 입에 살짝 갖다대어 봤더니 정말로 찝찔한 맛이 났다. 모래와 소금이 섞인 소금 사막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 카비르 사막 이란 고원의 카비르(Kabir)와 루트(Root) 사막은 소금사막이라 일컬어진다. 혹시나 하고 땅에 널려있는 소금을 입에 살짝 갖다대어 봤더니 정말로 찝찔한 맛이 났다. 모래와 소금이 섞인 소금 사막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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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으로 운전하고 한 손으로 차 대접

솔직히 말하면, 사막 자체에 대한 감동보다는 이 곳까지 찾아오는 과정과  길에서 만났던 이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더 강렬한 것 같다. 140㎞를 자전거로 완주하지 못하고, 트럭을 잡아탄 게 못내 아쉽긴 했지만 그로 인해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인적과 차량이 드문 사막도로, 이미 시작된 영아의 무릎 통증 때문에 자전거를 타기보다는 주로 걷고 있을 무렵, 일렬로 주욱 늘어서 달리는 커다란 트럭 행렬이 나타났다.

"무슨 트럭일까?"
"왜 트럭 한 대당 경호 차량이 한 대씩 붙는 거지?"

잘은 모르겠지만, 각각의 트럭에 실은 거대한 통들은 무슨 원자로를 운반하는 것처럼 비밀스럽고 육중해 보였다.

"혹시 핵폐기물 차량 아닐까? 조금씩 들이마신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죽어가는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영아의 무릎통증 때문에 우리는 결국 트럭 한 대를 세우고야 말았다. 하지만 어찌보면 운좋게도 이튿날 도착하기로 되어 있던 셈난까지 당일에 도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태어나서 이렇게 큰 덤프트럭은 처음 타 보았다. 게다가 기사 아저씨는 얼마나 친절한지, 운전을 하면서도 연신 우리를 쳐다보며 '차를 마셔라, 담배를 피워라' 우릴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 손으론 운전을 하고, 또 다른 한손으론 차를 타는 일, 쉽지 않아 보이는데 기사 아저씨는 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즉석에서 차를 만들어 우릴 대접했다. 게다가 샤프란 설탕까지 챙기는 걸 있지 않으신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를 셈난(Semnan)까지 데려다 준다던 트럭은 얼마 후 경찰의 제지를 받게 되었다. 무슨 일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트럭 일행을 세운 경찰은 내일 아침까지 떠나지 못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원래 계획에 없던 도시 '담간(Damghan)'에서 호텔을 수소문할 수밖에 없었다.

영아의 무릎 통증 때문에 얻어 타게 된 덤프트럭.
▲ 히치 하이킹 영아의 무릎 통증 때문에 얻어 타게 된 덤프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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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한국에 안부전화 하라는 택시기사 아저씨

담간! 도시의 규모는 결코 작지 않았다. 우리는 이런 중소 도시의 호텔 가격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스파한(Esfahan)이나 시라즈(Shiraz), 테헤란(Tehran) 같은 큰 도시들의 호텔보다 3~5배씩 더 비싼 건 보통이다. 아마 부르는 게 값인 것 같다. 우리로서는 몹시 지친 게 사실이었지만 5일치 방 값을 하룻밤 몇 시간 잠만 자는 데 날려버릴 수가 없기에, 또 다시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찾기 시작했다.

첫번째 찾은 모스크는 실패였다. 두번째 찾은 아주 화려한 모스크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초라한 시골의 모스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근사한 곳이었다. 우리는 또 다시 주문을 외쳤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영어는 통하지 않겠지만, 우리가 달려온 루트가 표시되어 있는 지도 한 장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우리 자신의 모습이 이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두 명의 이방인! 몸에서는 쾌쾌한 땀 냄새가 나는, 흙먼지로 범벅된 더러운 동양인 아닌가. 게다가 손에 들고 있는 건 말이 지도지, 이 또한 사막 여행을 시작하기 전 A4 용지에 휴대용 프린터로 임시로 뽑아 사용한 것이라 이미 시커먼 손때가 잔뜩 묻고 너덜너덜해진 걸레나 다름없었다.

에잇, 모르겠다. 그래도 마음만은 경건하게.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선 나는 몇 사람을 거쳐 이 모스크의 책임자인 듯한 사람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이스파한, 구파에, 나인, 아나락, 추파난, 잔닥. 카비르 사막, 넘어왔어요. 호텔 비싸요. 여기. 재워주세요. 내일, 아침. 떠나요. 일찍. 페르시아어는 잘 못해요. 영어나 중국어는 할 수 있어요. 오케이?"

나는 손짓발짓해가며 애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의 한 마디에 따라 길바닥으로 나앉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는 잠시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찾는 것 같더니만, 얼마 후 어깨를 으쓱거리며 허공으로 빈 손만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모스크 아래에 있는 영아까지 불러와 차와 먹을 것들을 대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융숭한 대접. 그는 아무래도 우리를 손님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벌써 이란에 들어온 지 1달 반이 지났다. 처음엔 그다지 친절한 줄 모르겠지만 일단 이란 사람들은 자신의 손님이라 인정하는 순간, 그 결정만 내려지면 정말 최선을 다해 정성껏 손님 대접을 한다.

갑자기 사무실에 있던 남자 한 명이 한국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기에, 처음엔 신원 확인을 위해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기를 가져다주며 한국에 안부 전화를 하라는 것이다.

"한국. 전화, 비싸요. 돈 많이 나와요."
"괜찮아. 괜찮아. 부모님이 걱정해, 한국에 안부전화해요."

괜찮다고 몇 번이나 거절을 하는데도 막무가내로 호의를 베푸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에고 지금 한국은 12시도 넘었을 시간인데!' 하지만 전화는 불통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전화가 안 되자 그는 이번엔 인터넷 이메일, 인터넷 이메일을 물어보면서 마구 다그치는 것이다. 이메일이 뭔지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는 이 곳 모스크의 이 메일을 적어주며, 이 이메일 주소를 이용해서 집에다 이메일을 보내라는 것이다. 이곳 이메일을 이용해 집에다 이메일을 보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우리에게 전화기를 내밀던 아저씨는 우리가 이메일을 안다는 말에, 모스크 근처의 페르시아 카펫으로 고급스럽게 장식되어 있는 회계사 사무실로 우릴 데리고 갔다. 아저씨 친구의 사무실이라고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우릴 데리고 다니는 이 아저씨는 이 곳의 택시기사이고, 이 지역의 마당발이었다.

컴퓨터는 최신형인데, 모뎀접속이 안 돼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참고로 선진국을 제외한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의외로 아직 모뎀을 사용해 인터넷을 접속하는 곳이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2004년 4월) 어쨌든 특이한 것은 이곳은 마우스 패드도 페르시아 카펫이라는 점이다.

이란, 사막 여행중 우연히 들린 현지인의 사무실. 특이한 것은 마우스 패드도 페르시아 카펫이라는 점이다.
 이란, 사막 여행중 우연히 들린 현지인의 사무실. 특이한 것은 마우스 패드도 페르시아 카펫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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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덥수룩한데 마음은 어린아이

우리가 모뎀접속을 시도하며 기다리는 시간, 아저씨는 뒤에 서서, 알라 알라, 하면서 혼자 절을 하고 기도를 한다. 무슬림들에게는 다섯가지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예배(Salat)다. 하루에 다섯 번의 기도를 의무로 하는데, 지금 시간으로 봐선 어두워진 후부터 자정 사이에 하는 마지막 기도인 이샤(Isha) 같다.

30분 정도 계속 시도했지만 모뎀 접속이 안 되어 괜스레 미안해서 이제 괜찮으니 돌아가자고 말을 했지만 아저씨는 계속 괜찮다고만 하신다.

"아저씨, 아저씬, 이렇게 기도하고 있고, 아저씨 친구도 저렇게 바쁜데 우리가 계속 이렇게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갑자기 아저씨는 내 손을 꼭 붙잡고 화장실로 데려다 주는 게 아닌가?  윽. 바디랭귀지의 실패였다. 의사 전달은 못하고 애꿎게 화장실만 다녀오게 되었다.

잠시 후, 결국 우리는 인터넷 접속에 성공했다. 생각보다 많은 소식이 들어와 있었다. 태국에서, 독일에서,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에서 영국에서… 기다리던, 반가운 메일들이 날아와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모르는 새 어느덧 국제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가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사이 아저씨는 전화로 식구들을 모두 불러와 한명 한명 인사를 시켰다. 딸과 막내아들 그리고 손자까지. 영아 친구 중 오랜만에 연락이 된 친구의 메일에서 그 친구 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 영아가 눈물을 흘리자 아저씨는 너무도 슬퍼하셨다.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영아의 조카 사진을 보여줘도, 영아가 슬퍼한다며 자신도 계속 슬퍼하셨다.

수염만 덥수룩한 아저씨지 마음은 완전히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분이었다. 우리는 매 25분마다 한 번씩 차를 대접받으며 인터넷을 사용하다가 저녁 늦게야 사무실에서 나왔다. 오늘 100㎞ 넘는 사막 주행을 했고, 중간에 트럭 히치 하이킹을 해서 이곳에 도착했다. 그리곤 호텔비를 아끼려고 이곳저곳 모스크를 찾아 헤매기까지 했다.

정말 너무 피곤해서, 둘 다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지라, 이제는 피곤한 몸을 눕힐 수 있을 줄 알고 기뻐했었는데…아뿔사! 모스크로 돌아가던 길. 아저씨는 길가에 서 있는 빨간색 푸조 한 대를 잡더니 우릴 보고 다짜고짜 타라는 것이 아닌가.

이곳저곳에 친구, 친구, 친구. 아, 아저씨의 마당발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우리가 탄 차의 주인은, 이곳 멜리 은행의 매니저라고 했다. 그러고는 우리를 차에 싣고서 이곳 담간 구경을 다 시켜주려 하는지 소리를 질려대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다가 옆에 누가 보이면 아는 체를 하며 우리를 인사시키고, 밤늦은 시간이라 문을 닫은 곳은 마구 문을 두드려가며 안을 구경시켜주는 것이다. 그래도 문이 안 열리는 곳은 사다리를 가져다놓고 안을 들여다보게까지 했다.

국이가 비틀비틀 위험하게 사다리 위에 올라가 담을 넘어 건물 안을 기웃거리는데 아저씨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처럼 큰 소리를 치신다.

"더 높은 사다리 가져올까?"
"으악. 됐어요. 됐어."

놀라운 사실 하나는 우리가 지나면서 인사했던 많은 사람들이 우릴 알아본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하나같이 우리가 카비르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을 봤다는 것이다. 참. 자전거를 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대접을 받는다니, 고맙고 기분 좋은 일이다.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다음날 셈난으로 떠나는 버스편을 알아봐주고, 우릴 모스크에 데려다 주었다.

담간의 택시기사 아저씨와 그의 손녀
 담간의 택시기사 아저씨와 그의 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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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모스크. 온통 화려한 카펫으로 덮여있어 눈이 부실 지경이다. 뻥 뚫린 모스크 안. 어디서 가져왔는지, 칸막이로 파티션을 만들어주고, 제일 따뜻한 스팀 나오는 자리 옆에다 우리 자릴 만들어 주셨다. 게다가 담요와 베게도 가져다주신다. 정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너무나 섬세하고 따뜻한 분이시다. 우리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끝으로 등을 돌려 걷던 아저씨가 갑자기 돌아서더니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지셨다.

"내일 오전 7시 버스 알지?"
"네. 그럼요. 알고말고요. 알라. 알라. 알라."

잠자리에 누워서 생각했다. 이게 전화위복이라는 건가. 영아의 무릎 때문에, 사막 한가운데서 트럭을 탈 수밖에 없었지만, 덕분에 고마운 트럭 아저씨의 마음도 만났고. 이곳 담간의 고마운 택시기사 아저씨와의 인연도 맺어질 수 있었으니. 나도 모르는 사이. 이란이라는 나라에, 이슬람의 나라에 젖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이슬람교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 눈 녹듯 사라져 가고 있다.
오히려 우리가 지나온 그 어떤 나라보다도 이란은 편안하고 따뜻한 나라다. 적어도 우리의 개인적인 경험 안에서는….

이란 카비르 사막 여행 후기

이란엔 두개의 대표적인 큰 사막이 있다. 하나는 이란의 동쪽에 위치한 루트(Root)사막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자전거로 여행한 북쪽의 카비르(Kabir)사막이 그것이다. 사실, 이번 여행을 시작하기 전, 이란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사막 자전거 여행에 관한 걱정스러운 얘기들을 아주 많이 들었다. 그분들의 조언은 "충분히 위험할 수도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쪽에 포커스가 맞춰진 얘기들이었다.

특히나 염려되는 건 모래 폭풍! 모래 폭풍 후에는 모든 것이 덮여 버리기 때문에, 이로 인해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주된 경고였다. 

하지만 여행을 마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다지 위험한 요소는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숙소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번 자전거여행을 하는 내내, 이슬람 사원과 현지인의 집, 학교, 식당의 한 켠에서 불편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직접 방문해서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과정에서 알아가는 것이 있다.

'언제나 사실은 소문과 다른 경우가 많고, 세상 어디나 우리가 사는 곳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언제, 누가, 어떤 시간에, 어떤 조건에서, 어떤 마음으로 그 지역을 지났느냐에 따라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경우의 변수는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어쨌든, 이번 사막 자전거 여행은 지금껏 우리가 거쳐 온 어떤 지역에서보다도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주었고, 최고, 최고의 루트로 기억이 될 것이다.

담간에서 하룻밤 묶어갔던 모스크 전경.
▲ 이란 모스크 담간에서 하룻밤 묶어갔던 모스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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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의 미나레트.
▲ 이란 모스크 모스크의 미나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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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구경 - 긴 여정(이란,인도/네팔,터키편)- 은 작자의 홈페이지(http://www.bikeworldtravel.com/)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그리고 SLR CLUB(http://www.slrclub.com/)에서 연재가 이루어 집니다. 오마뉴스는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태그:#국이랑 영아, #자전거 여행, #자전거 세계여행, #세계여행, #이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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