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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년부터 ‘이주노동자 이야기’라는 연재기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이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이주민들이 일방적인 피해자로 그려지거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도식적이고 한 쪽에 치우친 판에 박힌 이야기를 전하기보단, 다양한 면면을 엿볼 수 있도록 전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달리, 부득불 피해를 당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전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쉼터를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올해에는 우리 사회에 좀 더 밝고 즐거운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년에는 제발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 하나를 말해 보라면, 범죄피해자가 오히려 비난받고, 마땅히 도움 받아야 할 사람들이 외면당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최근 한 달 동안 쉼터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하며, 각기 다른 가해자들의 일관성 있는 태도 가운데 하나가 ‘피해자를 비난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해자들은 너무나 손쉽게 피해자를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마땅히 도움을 받아야 할 피해자가, 도움을 줘야 마땅할 이들로부터 일정 부분 외면을 당했다는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고용허가제 농업분야로 입국했던 베트남인 T는 근무처를 배정받고 일하러 간 첫 날, 자신이 사용하게 될 컨테이너 건물의 기숙사 벽면에 적힌 베트남어를 보고 의아해 하였다고 합니다. 그 벽면에는 “이 농장에 일하게 된 당신은 여자일 것입니다. 성폭력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이 메모를 보는 순간 꼭 저에게 전화를 해 주십시오”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메모를 무시했던 T는 그 다음날, 농장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순간에 귀고리가 뜯겨 피가 나서야 메모를 작성한 사람이 자신과 같은 피해 당사자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서 이러한 사고 전력이 있는 업체에 대해 이주노동자 고용을 제한한다는 규정을 엄격히 적용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혼이민자인 H는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남편의 잦은 외박으로 홀로 지낼 때가 많았는데,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로부터 폭행 위기에 처하자, 완강하게 저항했고, 그 와중에 손가락 골절을 당했습니다.

 

상담을 하며 참 이상했던 것은 상처받은 아내의 편이 되어 보듬어 줘야 할 남편의 태도였습니다. 경찰 조사 후에 처음 우리 쉼터에 와서, 피해자가 임시 거하게 될 숙소를 보고는 “그냥 집에서 쉬게 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는 ‘아무리 집이 편하다 해도, 사고 났던 곳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피해자를 혼자 있게 둔다는 것이 상식적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지만, 남편의 태도는 너무나 완강했습니다.

 

경찰이나 상담단체에 대해 ‘내가 바쁘니 빨리 끝내라’는 식의 태도로 비협조적이었는데, 어떻게든 피해자의 심신의 안정을 꾀하고 가해자를 잡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피해 조사차 진료를 받았던 병원에서는 “골절 치료는 제때 받아야 하는데, 꼭 받으라고 전해주세요”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말도 통하지 않는 아내의 보호막이 되어 주어야 할 남편은, 오히려 ‘아내가 재수없이 번거로운 일을 만들었다’고 비난하는 듯 하는 태도로 일관해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한 해를 보내며 오순도순 모여앉아 이야기나 하자던 쉼터 송년 모임으로 향하던 우리 쉼터 상담실장이 받은 전화는 ‘강간 폭행’ 피해자의 전화였습니다. 저녁 늦게 전화를 해 왔던 여성은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로 성폭력을 당하자마자, 사측에 피해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업체 대표는 자사 통역을 통해 “우리 회사에 그런 일 저지를 사람 없다. 휴일 지나고 나서 이야기하자”며 피해 여성의 도움 요청을 외면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찰의 도움으로 피해 여성이 병원에 후송된 후에 알게 된 사실은, 사건이 있던 날이 가해자가 퇴사하기로 돼 있는 날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상황만 놓고 보면 사측에서 사내 성폭력을 은폐하기로 작정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연말에 경험한 위 세 가지 사건 모두, 성폭력 사건인 데다 우리 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 특별히 이주여성에 대한 인식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어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부디 올해에는 도움을 받아야 할 피해자가 비난받고, 도움을 줘야 마땅할 이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올해에는 우리 사회에 좀 더 밝고 즐거운 이주노동자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만일 이주노동자들도 집에 가면 누군가에게는 사랑스런 아들이요 딸이자, 자랑스런 남편이며 아내이자, 아버지이며 어머니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와 같은 가정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피부색이 다르다고, 국적이 다르다고 무조건 차별하고 무시하는 일들은 없어지겠지요? 그런 세상이 하루 속히 오길 기대합니다.

 


태그:#성폭력 피해, #이주노동자, #새해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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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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