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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고만 아니었어도 아마 4년제 대학을 선택했겠지요. 근데 이젠 무엇보다도 빨리 돈을 벌고 싶어요. 그래서 2년제 대학에 취직까지 보장되는 곳을 선택 했어요."
 

올해 수시전형에 조선대학교를 비롯한 4년제 대학 3곳에 합격을 하고도 2년제 대학 대전보건대 물리학과를 선택한 태안 만리포고 3학년에 재학중인 이종호(19·남)학생이 올해 대학을 선택한 이유이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의항해수욕장에서 기름제거 작업을 하고 있는 이군을 만났다.

 

"사실 대학에 합격했다는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서요. 등록예치금을 납부하기는 했지만, 몇 백만원이나 등록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군의 부모님은 의항해수욕장 맞은편에 위치한 개목항에서 굴 양식을 하며 가계를 꾸려왔다. 그러나 지난 7일 오전 정박 중이던 홍콩선박 유조선에 삼성중공업 소속 예인선이 떠내려가 충돌, 약 1만 500톤 정도의 원유가 태안 앞 바다는 물론 해안가까지 온통 기름천지로 만든 것. 이군 가족은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아버지는 사고가 있고 나선 그 쪽(굴 양식장)은 한 번도 가시질 않은 것 같아요. 저도 오늘 처음 와봤는데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아버지는 어떻겠어요…."

 

아버지의 절망감과 슬픔을 비로소 느낄 수 있다는 이 군은 아직도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사고가 있던 당일을 회상했다.

 

"학교에 등교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일 거예요. 갑자기 머리가 아플 정도로 기름 냄새가 진동했어요. 이후 선생님들이 만리포 앞 바다에서 유조선 충돌사고가 발생했다고 알려줬고, 설문조사를 했어요. 부모님이 하시는 일과 그 외 몇 가지를 더 물어봤어요. 그때는 이렇게 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별일 아니길 바랐는데…. 모두가 원망스러워요. 사고 후 신속히 대처 못한 해경도, 사고 원인 제공자인 삼성도…."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잇던 이군은 모든 것이 허망하고 원망스럽다며 기름 묻은 돌을 연신 문질러댔다. 굴 양식업은 이군 가정의 주 수입원이었다.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는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것이다.

 

 

올해는 유난히 돈 쓸 일이 많다고 한다. 이군의 등록금은 물론 대학진학 시 지낼 공간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손윗누이들과 함께 지내게 되어 비용은 어느 정도 절감하게 되었지만 2중 3중으로 목돈이 들게 된 셈이다.

 

"그동안 불평 불만했던 제 자신이 새삼 너무 부끄럽네요. 가끔 휴일에 양식장 나가 일할라 치면 그렇게도 싫어했는데…. 소중한 것은 잃어버리고 나서 후회한다고 하는데 제가 그 꼴이됐네요. 근데 왜 하필 여기서 이런 일이…."

 

원망과 함께 푸념 섞인 어조로 말끝을 흐리던 이군은 그래도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함과 희망을 느낀다고 한다.

 

"매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로 인해 점점 깨끗해져가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정말 한없는 감사함을 느껴요. 또한 예상하는 것보다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거란 희망도 엿볼 수 있구요."

 

학교에 등교해 친구들과 고등학교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야 할 이군은, 이젠 이른 아침부터 방제복을 입고 기름제거를 하기 위해 일터로 나간다. 올해도 태안군 내 고3 학생들 중 487명이 수능시험에 응시하여 수시 및 정시에 응시하여 합격을 하였거나 통보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도 이군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나 관계당국에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어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지금이라도 관계당국은 피해지역 학생들을 위한 등록금 인하 정책 등을 마련하여 불가피하게 피해를 보는 학생들이 없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태안신문


태그:#태안 기름유출, #태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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