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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참 평화롭게 보인다.”
“애고, 꼭 그렇지도 않아.”
“응?”
“재들도 나름대로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는데….”

 

며칠 앞서 남편과 함께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란 방송을 보면서 나눈 얘기에요. 파란 하늘, 푸른 들판을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더 없이 한가롭고 평화로운 풍경이었어요. 아무 걱정 근심도 없는 모습으로 보였으니까요. 그런데 새들의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정말 평화로울까요?

 

우리 사람은 살면서 부지런히 일하고 애쓰는 만큼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음식을 마련해서 먹고, 자식을 기르며 살지요. 때때로 문화를 누리기도 하고요. 또 저축도 해서 나중에 늙었을 때를 미리 준비하기도 하지요.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마냥 평화로워 보이는 새들의 삶은 어떨까요? 겉으로는 자유롭고 평화롭지만 이른 아침부터 들판에 나와 하루하루 먹을 양식을 찾아다니고, 그것으로 새끼를 기르며, 새들 나름대로 먹잇감이 없을 때를 대비해서 따로 숨겨두기도 하면서 매우 부지런하게 살아가지요.

 

문화를 누릴 줄 아는 것만 빼고는 어쩌면 사람과 새의 삶이 같다고 여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들은 그야말로 ‘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두려운지 몰라요. 먹잇감을 찾아 목숨을 잇는 일도 해야 하지만 자기가 살아가는 ‘터’를 지키려고 목숨을 내놓고 싸울 때도 있어요.

 

그리고 언제 어디서 당할지도 모르는 많은 위험을 잘 피하기도 해야 하지요. 그러고 보면, 이들한테는 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또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말할 것도 없이 사람도 마찬가지이지만요.

 

때때로 전봇대에서 자기 ‘터’를 지키려고 까마귀와 싸우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요란스럽게 울면서 터를 빼앗으려는 까마귀를 연신 쪼아대며 쫓아내는 걸 봤지요. 한낱 미물이지만 그토록 ‘자기 터’를 지키려고 애쓰는 게 퍽 놀라웠답니다. 어떤 때에는 땅에 떨어져 죽은 까치도 본 적이 있어요. 아마 그렇게 터를 지키려고 싸우다가 졌을지도 모르겠지요.

 

어제(25일)는 경북 칠곡군 기산면 봉산리 마을에서 죽은 까치를 또 봤답니다. 능금나무 열매를 모두 거둬들인 과수원 앞을 지날 때였어요. 무언가 시커먼 게 나뭇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걸 보고 이상히 여겨 다가갔는데, 저런! 까치 한 마리가 발이 노끈에 꿰인 듯 묶여서 걸쳐 있었어요. 몸에 까만 빛깔이 또렷한 걸 보니, 죽은 지 얼마 안 되었나 봅니다.

 

 

“어머나! 저 녀석이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을꼬!”

 

과수원 곁으로 도랑이 있고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어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사진을 찍어 크게 확대해서 보니, 발인지 몸통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노끈에 묶여 있었어요. 아마 먹잇감을 찾아 나왔다가 어딘가에서 누군가 버려놓은 노끈에 걸렸겠지요. 틀림없이 그걸 풀어내려고 제 딴에는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을 쳤을 테고, 끈에 묶인 채로 이리저리 날다가 그만 이 나뭇가지에 끈이 걸리고 말았나 봐요.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살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을까? 또 얼마나 두려웠을까? 발버둥 치다가 그대로 그렇게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죽었을 까치를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어요. 파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평화롭게 보이던 새, 까치의 삶은 어처구니없게도 이렇게 능금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채 끝나버리고 말았어요.

 

 

누가 봐도 더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이들한테, 하루하루 목숨을 잇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까치를 반가운 손님을 부르는 ‘길조’라고 해서 무척 좋아했지요. 나도 어릴 적에 아침에 일어나서 까치가 울면, 온종일 반가운 손님이 오실까 해서 목을 빼고 기다린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아요. 농사꾼들이 땀 흘려 애써 지은 과일이나 채소를 쪼아 먹어서 피해가 많다고 하면서 싫어한답니다.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이 까치들이 왜 자칫 죽을지도 모르는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이렇게 사람 가까이 와서 먹잇감을 찾는지 알 수 있지요. 날이 갈수록 환경이 오염되고 하루하루 목숨을 잇는 먹잇감이 본디 살던 제 터에서는 찾기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까닭은? 우리 사람한테 책임이 있는 건 아닐까요?

 

능금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채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대롱거리던 까치의 죽음을 보면서, 한낱 보잘 것 없는 ‘미물’들도 조금만 더 따뜻한 눈빛으로, 조금만 더 너른 마음으로 품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http://www.eyepoem.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까치, #새, #평화, #자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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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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