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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

기성세대라면 이 노래를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바로 새마을노래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엔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새마을 노래도 또 새마을 운동도 배고프고 헐벗었던 우리의 과거와 함께 한낱 추억이 되어 기억 한 켠에 자리할 뿐이다.

김장하기 현장에서의 오세월회장
 김장하기 현장에서의 오세월회장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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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도 새마을운동이 삶 그 자체라 고집하며 무시로 새마을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김포시 새마을부녀회 오세월(53) 회장이다. 오 회장이 새마을운동과 인연을 맺어온 지 어언 23년. 강산이 두 번 변할 만큼의 긴 세월이다. 

새마을운동과 오 회장의 긴 인연이야기를 듣기에 앞서 새마을운동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새마을운동은 잘살기 운동이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 인구 중 농촌인구가 전체인구의 70%를 차지할 만큼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은 농업에 치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농촌 실정은 너무나 가난해 보릿고개조차 넘기 힘들 지경이었다.

따라서 모든 국민들의 바람은 찌든 가난에서 해방되어 한번 잘살아 보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업고 태동된 새마을운동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경제위주의 잘살기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후 1990년대에 이르러 눈부신 경제성장 덕분에 점차 사회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질적인 풍요는 인정의 빈곤을 함께 가져왔다.

이즈음, 새마을 운동은 나 혼자가 아닌 더불어 잘살기 운동으로 이념의 폭을 넓혀 1998년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새롭게 전개되었다. 즉, 제2의 새마을 운동은 더불어 잘살자는 국민운동을 지향이념으로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실천원리로 재탄생을 한 것이다. 

84년 고촌면 전호리 마을부녀회장으로 출발해 현재 김포시 새마을부녀회 회장이 되기까지 오 회장이 살아온 삶도 새마을운동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오 회장이 마을부녀회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단지 시어머니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결혼하고 나서 7년쯤 지나 시어머님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다짜고짜 부녀회 일을 한번 해보라고 하셨어요. 부녀회가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그저 시어머님께 등 떠밀려 발을 내디딘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왔어요.”

휴경지사업으로 밭에서 고구마를 수확하고 있는 새마을부녀회원들
 휴경지사업으로 밭에서 고구마를 수확하고 있는 새마을부녀회원들
ⓒ 새마을회 김포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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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부녀회에서 주로 하던 일 역시 애초 새마을운동의 목적처럼 잘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당시 절미운동으로 십시일반 힘을 모으던 일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어 벌인 사업이 공동작업장을 만든 것이었다고.

버려진 땅을 일구어 공동텃밭을 만들었어요. 내 일 네 일 따지지 않고 부녀회원 모두 열심히 일한 덕에 수익이 제법 많이 났어요. 그것으로 어려운 이웃도 돕고 마을 대소사도 챙겼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의 보람과 그리고 그 보람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요.”

오 회장은 그때부터 봉사의 마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또 그것이 바로 더불어 사는 삶이며 나아가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임을 확연히 깨우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 회장은 이미 몇 년 앞서 제2의 새마을운동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마을부녀회의 독거어르신들 위로잔치
 새마을부녀회의 독거어르신들 위로잔치
ⓒ 새마을회 김포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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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녀의 삶은 오로지 봉사 하나로 일관된다. 새마을부녀회가 하는 일은 조건도 제약도 따르지 않으며 시간도 장소도 구애받지 않는다. 독거노인 및 소년소녀 가장 돕기, 복지시설 방문, 수해·한해 및 각종 재해 시 신속한 복구활동, 재활용품 모으기, 재생비누보급, 알뜰마당운영, 농산물 직거래, 휴경지생산화 등 새마을부녀회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팔을 걷어붙였다고 한다.

오 회장의 이런 열정적인 활동으로 보자면 2006년 수여한 새마을훈장 노력장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훈장을 받을 때 시어머님 얼굴이 맨 먼저 떠올랐어요. 봉사하며 살 수 있는 기회를 시어머님께서 만들어 주셨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삶의 가장 값진 선물을 시어머님께 받았어요. 그래서 저도 제 자식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가르치려 늘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 노력이 제게 덕이 되더군요. 가르치기에 앞서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러니 게을러져서도 안 되고 매사 최선을 다하게 되더군요.”

'저소득층 고추장 담아주기' 봉사를 벌이고 있는 새마을부녀회 모습
 '저소득층 고추장 담아주기' 봉사를 벌이고 있는 새마을부녀회 모습
ⓒ 새마을회 김포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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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 김포시 새마을부녀회 수장으로 활동해온 오 회장은 가장 보람 있었던 사업으로 ‘고추장담기’와 ‘몽골’과의 자매결연을 꼽는다. 

“‘고추장담기’는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사업입니다. 대다수 부녀회원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지라 고추를 다소 싼값에 살 수 있어요. 그렇다보니 보다 많은 어르신들께 고추장을 담아 드릴 수 있어 좋아요. 그리고  몽골로 여러 번 봉사활동을 다녀왔는데 우리나라에 비해 많이 낙후된 곳이라 할 일이 아주 많았어요. 다리도 놓아주고 우물도 파주고…. 그런데 뭐니뭐니해도 새마을운동을 알리고 왔다는 것이 제일 뿌듯해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들 즐겁게 김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좋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들 즐겁게 김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좋다.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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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첫사랑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오 회장의 표정이 인터뷰 내내 상기돼 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저리도 신나고 행복할까 의문이 생겨 봉사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보았더니,

“봉사는 치유될 수 없는 중독입니다. 아무리 헤어나려해도 헤어날 수가 없지요. 일반적으로 봉사라면 남을 위한 것이라고들 하는데 사실은 나를 위한 일입니다. 봉사 후 맨 먼저 제자신이 기쁨을 느끼고 보람을 얻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말인데 사실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봉사를 가르쳐야 해요.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게 바로 행복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봉사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니까요.”

겨울로 접어드는 요즘. 오 회장은 특히나 바쁘다. 독거노인들이나 소년소녀 가장들, 그리고 이웃의 불우한 이들이 좀 더 따스하게 겨울을 나도록 단단히 단도리를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겨울준비의 으뜸은 바로 김장이다. 배추가 금추라고 할 만큼 비싼 가격 탓에 오회장은 더 발품을 팔아야 한다.

새마을부녀회원들의 김장하는 모습
 새마을부녀회원들의 김장하는 모습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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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배추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며칠씩 걸려 김장을 해도 늘 모자랐어요. 그런데 올해는 배추 값이 만만치 않잖아요. 배추며 양념들을 좀 더 싸게 구입하기위해선 발품을 팔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여기저기 봉사단체들의 협조를 구하고 또 그들을 도와 김장도 함께 담그고…. 하여간 올해는 김장과의 전쟁입니다.”

저녁이면 물먹은 솜처럼 몸이 천근만근이어도 아침이면 다시 불끈 불끈 힘이 솟는다는 오회장. 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 걸까. 자신의 동동거리는 한걸음 한걸음에 이 겨울 누군가가 좀 더 따스해질 수 있다는 스스로의 최면 때문이라는데.

아침마다 최면에 걸려 결국 봉사라는 중독에 빠져버린 오 회장. 작은 체구로 거인의 삶을 사는 열정적인 그녀가 있어 외롭고 쓸쓸한 우리네 이웃들의 겨울이 봄 햇살처럼 따스할 것 같다.


태그:#봉사, #새마을부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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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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