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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야. 남진씨가 김포에 온다는데 정말인지 한번 알아 보거라."

깊을 대로 깊은 가을이 안개에 휩싸인 이른 새벽. 친정어머니의 뜬금없는 전화 한 통이 뿌연 미명을 흔들어 깨운다. 달디 단 꿀맛 같은 단잠… 뜬금없는 어머니의 전화 한 통은 분명 불청객이다. 그저 건성으로 '네'하고 한마디 해놓고선 이불 속 따스함에 말초 신경 곳곳이 포근함과 짜릿함으로 전율하며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드나 싶은데… 이런,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출근 전에 잠시 들렀다 가거라."
"왜요?"
"하여간…."

여간 급한 일이 아니면 좀체 전화 한 통 안하시는 친정어머니시다. 그런데 새벽부터 전화를 해선 뜬금없이 김포에 남진씨가 온다는데 알아보라고 하시니 참 모를 일이다 싶어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서둘러 어머니께 들렀다.

몇 년째 공공근로를 나가시는 친정어머니는 여느 아침처럼 가방을 둘러메고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마당을 서성이고 계신다.   

"김포에서 남진 쇼가 열린다며…."
"네."
"공짜는 아닐끼고 얼만가 한번 알아 보거라."
"4만 원이래요."
"4만 원…."

4만원이란 소리에 어머니는 한 치 망설임도 없이 가방을 한참 뒤적여 꼬깃꼬깃 접혀진 만원짜리 넉 장을 건네며 예매를 해달라신다. 그런 어머니 모습이 낯설다. 버스비 천 원이 아까워 일하는 현장까지 걸어서 족히 30~40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몇 년째 걸어 다니는 어머니시다. 그런데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가겠다며 거금 4만 원을 불쑥 내미시니 낯설지 않을 수 없다. 

"엄마. 4천 원도 아니고 4만 원이라는데… 진짜 보러 가시려고요?"
"나는 그런 쇼 보러 가면 안 되나?"
"아깝지 않으세요? 버스비 천 원도 아까워하시는 분이 거금 4만 원을 선뜻 내놓으시니…."
"버스비야 아깝지…. 두 다리 성한데 뭐 할라꼬 굳이 차타고 다닐 끼고. 그렇지만도 남진 쇼는 그게 아이다. 남진씨는 한때 엄마의 우상이었다 아이가. 우상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카는데 4만 원이 뭐 아깝겠노."
"우상? 남진씨가 엄마의 우상이었어요?"
"와? 요즘 아들만 우상이 있고 나이 든 사람은 우상 있으믄 안되나… 요즘 아들이 빅뱅이니 소녀시대니 하는 것처럼 엄마한테는 남진씨가 빅뱅보다 더 멋진 우상이었다 아이가."

"나한테는 빅뱅보다 더 멋진 우상 아이가"

남진 콘서트 현수막
 남진 콘서트 현수막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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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 입에서 우상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순간 참 어울리지 않는다 싶어 피식 웃고 말았다. 잊어버리지 말고 꼭 콘서트 티켓을 예매해 오라는 당부를 남기시고 일터를 향해 잰 걸음을 옮기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유난히 가벼워 보인다.

출근 길. 며칠째 건성으로 보아 넘겼던 김포시민회관 외벽의 대형 현수막이며 거리 곳곳에 걸린 간이 현수막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몇 년 전 열린 이미자씨 콘서트 이후 김포에서 오랜만에 열리는 대형가수 콘서트이다. 점심나절. 예매처인 농협을 찾았다. 더러 젊은 사람들이 눈에 띄긴 했으나 대부분 친정어머니 연배의 어르신들이다.

남진과 문주란의 공동 앨범
 남진과 문주란의 공동 앨범
ⓒ 남진 팬카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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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친정에 들러 어머니께 예매한 표를 건넸다. 하루 종일의 고단함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어머니 얼굴이 금세 박꽃처럼 환해지신다. 티켓을 한참 들여다보시던 어머니.

"세월 앞에 항우장사 없다 카더만… 남진씨도 많이 늙었다 아이가. 하기사 니 손잡고 남진씨 리사이틀 보러 간기 벌써 40년도 훌쩍 넘었으니까네…."
"리사이틀?"
"그래. 요즘은 콘서트라고들 하데. 옛날에는 리사이틀, 아니면 쇼라고 했다 아이가."
"그래서 엄마가 직접 그 리사이틀을 보러 가셨다는 거예요?"
"갔지. 지금도 있는가 모르겠는데 부산에 삼일극장이라고 있었다. 그때 문주란씨하고 같이 나와서 리사이틀을 했는데 진짜 근사했데이. 그때 니가 세살인가 그랬을 끼다."
"참 옛날이야기네요. 당시 가수 리사이틀을 직접 보러 가시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엄마가 남진씨를 좋아하기는 좋아하셨나 보네."
"좋아했지. 남진씨의 '가슴 아프게'를 들으면 애간장이 절로 녹아들었다 아이가."

10남매의 막내로 곱디곱게 자란 어머니는 외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꽃다운 스무 살에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고 하신다. 아버지를 따라 경북 봉화의 산골짜기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하게 되신 어머니… 20년을 도시에서 살던 어머니께 첩첩산골 시집살이는 그저 서러움 그 자체였다고 한다.

설상가상 아버지마저 내가 돌을 막 지나자마자 돈 벌어오겠다며 도시로 나가버리셨으니 꽃다운 새색시의 외로움과 적막함이야 구구절절 말해 무엇 할까 싶다. 당시 시도 때도 없이 눈물바람이던 어머니께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것이 바로 아버지가 결혼선물로 사주신 라디오였다고 한다.

이른 새벽 눈 떠서부터 늦은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밥을 지을 때는 부뚜막에서, 냇가에서 빨래를 할 때는 바위 위에서, 베틀에 앉아 베를 짤 때는 따각따각 베틀소리에 맞춰 혼자 웃고 떠들며 친구가 되어준 그 라디오가 있어 그나마 어머니는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달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너무 특별한 노래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가 수록된 남진의 앨범
 '가슴 아프게'가 수록된 남진의 앨범
ⓒ 남진 팬 카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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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라디오에서 자주 나온 노래가 바로 남진씨의 '가슴 아프게'였다는데.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텐데…'

아버지에 대한, 또 외가에 대한 그리움으로 지나가는 바람소리에도, 넓은 하늘 외로이 떠 있는 구름 한점에도 가슴이 무너져 내렸던 어머니께 그 작은 라디오에서 구성지게 흘러나오는 '가슴 아프게'의 가사 한 줄, 멜로디 한 자락은 서러움의 봇물이었다고 한다.

"늦은 밤. 산골을 지나는 바람소리에 호롱불 그림자가 방문에 어른거리면 행여 기별도 없이 니 아버지가 불쑥 들어서시나 싶어 방문을 열두 번 더 열어 보곤 하다 기어이 긴 한숨만 내뱉고 베틀에 앉으면 서러움에 절로 목이 메여 눈물이 쏟아지곤 했지. 그런데 희한하게 그때마다 라디오를 켜면 '가슴 아프게'가 흘러나오곤 했다아이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구절구절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꼭 나를 위한 노래인 것 같아 오만 애간장이 다 녹아내리는 듯 했제."

'나에게 애인이 있다면'이 수록된 남진 앨범
 '나에게 애인이 있다면'이 수록된 남진 앨범
ⓒ 남진 팬 카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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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차 내가 3살 되던 해 부산 외가에 갔을 때 마침 남진씨 리사이틀이 부산 삼일극장에서 열렸고 어머니는 이모들과 함께 구경 갔다고 하신다. 어머니와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 하던 그 작은 라디오로만 듣던 노래를 직접 듣고 또한 직접 남진씨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참 끝내주더라. 남진씨가 무대에서 '가슴 아프게'를 부를 때 극장 안을 꽉 메운 그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숨을 멈춘 듯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이가. 극장 안을 가득 채우는 남진씨의 그 구성진 가락과 절절한 애달픔에 진짜 가슴이 터지는 것 같더만. 요즘 '카리스마'란 말 자주 쓰데… 그래 남진씨의 그 카리스마… 지금도 눈에 선하데이…."

그때 이후 어머니는 그야말로 남진씨의 열렬한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이전까진 남진이란 가수를 떠나 그저 노래에 온 마음을 빼앗겼지만 삼일극장 리사이틀을 보고난 후엔 가수 남진의 차고 넘치는 매력에 푹 빠져 버렸고 이후 발표한 '님과 함께'는 어머니로 하여금 정말 남진씨의 광 팬이 될 수밖에 없게 하였다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있어 남진씨의 '가슴 아프게'가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위로해준 노래였다면 '님과 함께'는 희망을 북돋워준 노래였다고. 시쳇말로 병역 기피자(?)였던 친정아버지는 내가 8살 되던 해 뒤늦게 군대를 가셨다고 한다. 당시 남진씨의 '님과 함께'가 그야말로 쓰나미처럼 온 나라를 휩쓸던 때. 뒤늦게 군대 간 남편을 기다리며 3년 또 독수공방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 어머니께 '님과 함께'는 그야말로 최고의 위로였다는 것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어머니에게 있어 '님과 함께' 노랫말이 군대 간 남편을 기다려야 하는 3년이란 긴 시간을 막연한 기다림이 아닌 무지개를 꿈꾸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였을 터. 어머니에겐 당연히 최고의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때 쓸라고 돈 버는 거 아니가"

가수 남진
 가수 남진
ⓒ 남진 팬 카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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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거 아부지도 '님과 함께'는 남진씨 뺨치게 잘 불렀다 아이가. 휴가 나오마 어린 니한테 시도 때도 없이 그 노래 가르친다꼬 난리도 아니더만."

어머니 말씀을 듣다보니 그 옛날 날 앉혀놓고 부른 아버지의 '님과 함께'는 어쩌면 어머니를 향한 노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무 살 꽃잎 같은 색시와 귀밑머리 마주 풀어 백년가약 맺을 때는 별도 달도 다 따주마 오만 가지 핑크빛 약속을 다 하셨을 터. 그러나 여의치 못한 현실에 대한 미안함을 아마도 아버지는 그 노래로 대신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남진이란 가수는 어머니에게 있어 그저 화려한 연예인이 아닌 서러움의 고비마다, 외로움의 고비마다 따스하게 보듬어 토닥토닥 등을 다독여주는 친구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그러니 40여 년을 한결같이 그 가수를 사랑하고 그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

또한 그러한 친구 같은 존재이니 천 원짜리 한 장에도 손끝이 오그라드는 어머니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거금 4만 원을 들여 남진씨 콘서트를 보러 가겠다는 것 아닐까. 그것도 하루 종일 길거리에서 휴지 줍고 청소하며 번 돈으로 말이다. 4만 원… 내가 알기로 어머니의 이번 지출은 어머니 당신을 위한 최고의 지출일 것이다. 그런 어머니가 짠하기도 하거니와 어머니께 이번 남진씨 콘서트가 더없는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아 어머니가 건네신 4만 원을 도로 손에 쥐어 드렸더니 손사래를 치신다.

"이럴 때 쓸라꼬 돈 버는 거 아이가. 내가 좋아하는 가수 내 돈 주고 보고 싶데이…."

당신이 번 돈으로 당신 좋아하는 가수 보러 가시겠다는 어머니… 콘서트까지 며칠이나 남았는지 철부지 아이가 소풍을 기다리듯 손가락을 꼽으시는 어머니… 주름진 얼굴 위로 옅은 웃음이 연신 끊이질 않는 그 모습이  예순을 훌쩍 넘긴 연세임에도 마치 열여섯 소녀 같다.


태그:#남진 콘서트, #김포, #가슴 아프게 , #님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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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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