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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가 2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동성애자 병사와 세 차례 이상 만나면서 파악한 성폭력 사건의 전말을 공개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가 2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동성애자 병사와 세 차례 이상 만나면서 파악한 성폭력 사건의 전말을 공개했다.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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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되게 말랐구나. 40kg은 나가니? 예쁘게 생겼다."
"한 침낭에서 같이 자자. 오늘 밤에 내 침대로 와라."


올 초에 입대한 A씨는 지난 3~4월에 걸쳐 다른 분대의 분대장인 하사 B씨로부터 이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들었다.

또 A씨는 지난 2월 자대 배치를 받은 뒤 상관들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했다. 다른 내무반에서 생활하는 C씨(상병)는 A씨를 찾아와 수차례 손을 잡거나 껴안았다. 타 소대 부소대장 D씨(하사)는 A씨를 껴안은 채 행정반 사무실 안을 돌아다녔다.

A씨는 폭언도 들어야했다. 현재 전역한 것으로 알려진 소대장 E씨(중위)는 간부실에 A씨를 홀로 앉힌 뒤 "왜 여자처럼 잘 우나. 한 번 더 내 앞에서 울면 '귀싸대기'를 때리겠다. 죽여 버리겠다. 남자답게 굴어라"고 윽박질렀다.

"같이 자자" 군대 성희롱 피해자, 결국 '커밍아웃' 했지만

이 같은 사건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가 지난 4월 피해자 A씨로부터 받은 제보 내용이다.

친구사이는 2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씨와 세 차례 이상 만나면서 파악한 성폭력 사건의 전말을 공개했다. 친구사이 측은 "A씨가 본인의 신상에 대해 꾸준히 메모한 것을 바탕으로 자료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주장한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면, A씨는 자신이 성폭력에 시달리고 있음을 소속 부대 측에 수차례 호소했지만 부대는 사태 해결에 무관심했다. A씨가 동성애자임이 드러난 게 큰 이유였다. 

A씨는 지난 4월 중순 대대 군의관과의 면담 과정에서 '커밍아웃'을 했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군의관은 "외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 때문에 A씨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중대장과 대대장에 보고됐다.

이어 A씨는 대대장과 만나 자신의 피해 사례를 털어놨지만 "너를 위한 독자적인 공간을 만들 수는 없다. 도와줄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논산 훈련소의 훈련병들이 각개전투 훈련을 받고 있다(기사와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논산 훈련소의 훈련병들이 각개전투 훈련을 받고 있다(기사와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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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말께 휴가를 나온 A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육군본부 민원실, 사단 감찰보좌관(소령)에 연락을 취해 도움을 요청했다. 그 때문일까. A씨는 부대에 복귀한 뒤로부터 지난 6월 말까지 연대 의무실에서 생활하며 군병원의 진료를 받았다. 5월에 열린 사단 현역복무 부적합 판정심의에서는 떨어졌다. 전역이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악화됐다. 당시 A씨는 군의관 및 군법무관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고, 친구사이가 전했다.

"남자역할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냐?" (군의관)
"(현역부적합심의와 관련해) 생활 부적응에 대한 판단이 없다. 자대 내 타 병사들의 의견이 필요하다. 분대원의 소견서를 받는 동안 커밍아웃과 관련한 인권침해가 일어날 수 있다." (군법무관)


결국 A씨는 더해가는 정신적 고통을 견디다 못해 처방약(졸루푸트, 항우울제)을 과다 복용하는 등 세 차례에 걸쳐 자해를 시도했다. 이에 부대는 A씨를 '비전캠프'이라는 군 부적응자 격리시설로 보냈다. 이곳에서도 A씨는 안경 렌즈를 깬 뒤 날카로운 조각으로 양쪽 손목을 그었다.

"남자역할은 안 해봤나"... A씨, 의무실에서도 고통의 나날

A씨는 지난 15일 정기휴가를 나왔다. A씨와 그의 어머니는 이전에도 휴가를 신청했지만 정기휴가를 받고 나서야 부대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부대를 나오며 '휴가 동안 사고가 발생할 경우 모든 책임을 진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 부대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A씨는 19일 오후 용인정신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진단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A씨는 현재 우울감, 자기 비하적 사고, 자살 사고, 흥미저하 등의 주요 우울증을 의심할 수 있는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상기 증상을 유발시킨 환경에 다시 노출될 경우 자살시도나 극단적인 행동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이어 A씨는 2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고, 모 대학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심리검사를 바탕으로 한 전문의의 진료를 받았다. 그리고 같은 날, 같은 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했다.

A씨의 휴가 복귀일은 바로 오늘(24일)이다.

"성폭력 피해자에 책임 전가하는 악습 적나하게 드러나"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최현숙 위원장.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최현숙 위원장.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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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친구사이·동성애자인권연대 등은 국방부 앞에서 군대 내 성희롱·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인권 침해를 규탄하고, 군 당국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친구사이 등은 성명에서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관리지침)에는 성경험·상대방 인적사항 등 사생활 관련 질문 금지, 성희롱·성추행·성폭력 사고 발생시 엄중 처벌 등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4월 1일부터 관리지침을 시행 중이다. 이 지침은 '군대 내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해소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안을 수용해 마련한 제도이다.

또 이들 단체는 "성폭력 사건의 원인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군대의 악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며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 ▲피해자의 청원휴가 요청 수용 ▲새로운 인권지침의 마련 등을 국방부와 소속 부대에 촉구했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최현숙 위원장은 "A씨를 귀대시키는 것은 자살의 길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해 2월 병사 김아무개씨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군 당국에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및 매독검사를 강제로 받아 인권침해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태그:#군대 동성애자, #성폭력, #성희롱, #성폭력,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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