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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거리에 있는 공공작업소 심심의 작품들(벽화)
 동문거리에 있는 공공작업소 심심의 작품들(벽화)
ⓒ 공공작업소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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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옛 도심을 추억하는 사람들에게 동문거리는 특별하다. 지금은 신시가지에 밀려 조금은 쇠락하고 조금은 소외된 곳이 되어버렸지만 이곳에 추억을 묻은 사람들에게 이곳은 여전히 아름다운 거리이다. 한때 전주의 중심이었던 동문거리. 그것은 꼭 ‘구관이 명관’이래서가 아니다. 이곳에는 한때 이 거리를 걸었던 수많은 사람의 꿈과 낭만 그리고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찻집, 서점, 소극장, 헌책방, 밥집, 퀼트공예점, 들꽃가게, 현악기 수리점… 다양하고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오늘도 서로의 어깨를 마주하고 소박한 꿈을 나누고 있다. 동문거리를 걸어본 사람은 안다. 이곳에는 도시의 분주함이나 빠듯함을 느낄 수 없다. 그렇다고 고인 물처럼 정체되어있는 것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느낄 수 있는 ‘정중동’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공공작업소 心心(심심)'이 있다.

공공작업소 심심이 10월 16일부터 ‘공간문화 아카데미’를 열었다. 매주 화·수요일 총 7회 진행된다. 공공작업소 심심이 주최하는 다양한 행사소식을 통해 그 이름을 몇 차례 들어온 터였다. 이번 행사의 의미와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심히 궁금해졌다. 지난 3일 심심 사무실에서 김병수 소장과 나눈 이야기를 요약해보았다.<기자 주>

공공작업소 심심의 김병수 소장
 공공작업소 심심의 김병수 소장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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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공간문화 아카데미'라는 행사가 궁금하다. 행사 제목이 굉장히 낯선데 공간문화 아카데미란 개념이 쉽게 와 닿질 않는다.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하자면.
"간단히 말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도시를 좀 더 살기 편하고 아름답게 만들어보자는 거다. 도시·문화예술 현장가, 전문가들을 불러다가 함께 고민해보고 그 방법을 모색하자는 데 있다. 즉 우리가 사는 도시의 정체성을 회복하자는 것이 주목적이다."

- 도시의 정체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요즘 우리는 도시를 기능적인 측면, 소모적이고 소비적인 측면으로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어딜가나 부수고 짓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여기에 투기·부동산 등 오로지 경제적이고 산술적인 가치로만 판단되는 경향이 있질 않나.

그러나 이 도시는 우리가 두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터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가 사는 도시에 대해 애정이 없는 거다. 전주만 해도 그렇다. 모두 대도시로 진출하려고 하고 밖으로 나가려고만 하는데 어떻게 자신의 삶터에 애정이 생기겠나. 그러니 당연히 추억도 없다. 도시 안의 구성원들은 그 도시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도시와 그 구성원들의 삶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바로 그 도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도시와 구성원들 간의 관계 회복해야

- 이번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보니 도시에 공동예술 즉 공동작업을 다양하게 접목시켜 성공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공공미술과 공동체 문화를 접목시킨 ‘여주밀머리미술학교’나 도시계획과 아트 퍼블릭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플라잉 시티’의 소개가 그것이다. 도시 구성원에 의한 공동작업, 공동예술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도시는 구성원들의 개별적 자율성과 창조성으로 지탱되고 스스로에 의해 살찌워져야 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가 함께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는 살아있는 도시, 지역적 문화가 소중히 간직되고 지역적 삶의 일상과 문화가 연결될 수 있는, 지속되어지는 공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3기 공간아카데미 포스터
 제3기 공간아카데미 포스터
ⓒ 공공작업소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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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또한 그 도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해야 하는 작업이다. 해당 시·도에서 간단히 시공업체에 맡겨서 하는 그런 작업은 전국 모든 도시를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버린다. 그 도시만의 색깔과 문화가 죽어버린다. 따라서 나는 이 작업은 그 도시에서 나고, 자라고, 그 도시에서 부대껴본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도시만의 생태와 정서, 촉수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이해하는 사람들의 손에 맡겨야 한다. 이것은 공공기관, 행정기관이 해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 심심에서도 현재 동문거리 일대에 작업을 진행 중이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이 지역 문화예술 전문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상호 토론하고 있다. 한 개의 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위해서 몇 번의 프리젠테이션과 스터디, 수정작업을 거치는지 모른다. 어찌 보면 비효율적일 수도 있지만 이 과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을 이 작업에 참여시킨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동문축제도 좋은 예다. 처음에는 이 거리 상인분들도 반신반의했다. 장사도 안 되는데 무슨 축제냐 이거지. 공공작업소 심심? 한 번 들어본 적도 없는 애들이 와서 뭐하나 했겠지.(웃음) 그러나 그들에게 계속 설명하고 토론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했다. 직접 찾아뵙기도 하고 공청회도 열었다. 그렇게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이 힘들긴 했지만 보람도 있었다. "

주민의 참여와 관심 유도가 무엇보다 중요

- 27일부터 동문축제가 시작되는데 이곳 주민들 반응은 어떤가.
"예전에 비해 상당히 좋아졌다. 지금은 어느 정도 우리의 작업을 이해하고 동조하는 편이다. 그렇게 구성원들의 참여와 관심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

동문거리에 있는 공공작업소 심심의 작품(벽화)
 동문거리에 있는 공공작업소 심심의 작품(벽화)
ⓒ 공공작업소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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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점포를 미술관으로 변신시킨 공공작업소 심심의 작품.
 헌 점포를 미술관으로 변신시킨 공공작업소 심심의 작품.
ⓒ 공공작업소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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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부시장 하늘 정원 프로젝트’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때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기회를 놓쳤다(웃음) 그 이야기를 해달라. 남부시장 프로젝트는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남부시장은 개인적으로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고등학교 연극부 시절 연극 올린 뒤 뒤풀이 하러 그곳에 자주 갔다. 학교가 가까웠거든.(웃음) 그런데 이 남부시장은 가장 오래됐기도 했지만 가장 뒤처졌다. 다른 재래시장은 그래도 큰 상권을 끼고 있는데 남부시장은 그게 없다. 옛날에는 남부시장이 꽤 큰 상권이었다. 천변을 끼고 있었고 상점도 즐비했고 양책방 같은 신문물도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생각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어느 날 우연히 남부시장 상가 옥상에 앉아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본 경치가 정말 좋은 거다. 천변도 보이고 승암산, 전동성당도 보이는 것 아닌가. 그런데 개발논리에 의하면 남부시장은 곧 철거되어야 마땅하거든. 그런데 문득, 여러 사람의 꿈과 삶터를 담고 있는 이 남부시장이 없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정말 참을 수 없었다. 나 개인적으로 학창시절의 추억이 많은 것도 아마 그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한 공간이 죽어버리면 그곳의 사람들도 심리적으로 죽는 거다.

하늘정원 축제에 모인 지역주민들과 상인, 청소년들
 하늘정원 축제에 모인 지역주민들과 상인, 청소년들
ⓒ 공공작업소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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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시장 상가 옥상에 있는 하늘 정원. 이 곳이 재래시장 한복판이라는 게 믿기나요?
 남부시장 상가 옥상에 있는 하늘 정원. 이 곳이 재래시장 한복판이라는 게 믿기나요?
ⓒ 공공작업소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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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정원을 꾸미는 학생
 하늘정원을 꾸미는 학생
ⓒ 공공작업소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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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하늘 정원이었다. 재래시장 상인들뿐 아니라 주민들도 함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여기에 교육적인 기능까지 더한  'E-Parket'(Education Park Market)으로 만들고 싶었다. 여기에서 청소년들이 공연이나 캠프, 미술작업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교육공간으로 거듭나는 거다. 실제로 하늘공원을 꾸미는 작업에 청소년들이 참여했다."

- 지금껏 다녀본 도시 중에서 이상적이라든지 구체적인 모델이 된 곳이 있었는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소는 웬만큼 가보았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곳을 꼽는다면 히말라야의 ‘라다크’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곳(전주)의 모델이 될만한 곳은 없었다. 왜냐하면 전주는 전주만의 색깔을 지녔기 때문이다. 어느 도시나 장소도 전주 고유의 향기와 색채를 담아낼 수는 없다. 이는 물론 다른 도시에도 해당된다. 세계유수도시들의 사례들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따라하거나 모방할 수는 없다. 그 도시에는 그 도시 고유의 삶과 정서, 생태가 자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

- 공공작업소 심심은 무슨 뜻인가. 이름 처음 들을 때부터 계속 거슬(?)렸다(일동 웃음)
"이름 그대로 일을 심심하게 하자는 거다.(웃음) 우리가 하는 일이 무슨 목적을 달성하거나 누구와 견주어서 이겨야 한다거나 하는 그런 전투적인 작업이 아니잖나. 좀 더 고상하게 표현을 하자면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여기에는 모든 사건이나 현상을 관조적으로 깊이 있게 바라보자는 의미도 포함되어있다.

경실련을 그만두고 전주로 내려왔을 때 사실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누구와 항상 싸워야 하고 투쟁해야 하고 대립해야 하는 현실이 고단했었나 보다. 그것이 아마 오늘의 공공작업소 심심으로 이끄는데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태그:#공공작업소 심심, #전주 동문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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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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