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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길상사 새벽 풍경.
ⓒ 김귀자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에서는 매월 둘째 주 토요일 밤마다 삼천배수행이 열린다. 저녁 8시 반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꼬박 7시간 반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절을 하는 속된 말로 아주 '빡센' 수행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로 유명한 성철 스님은 삼천배를 해야만 사람들을 만나 주었다. 그런데 이곳에 온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삼천 배를 하는 것일까?

호기심이 일었다. 난생 처음 삼천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참고로 나의 종교는 '무교'다.

겁도 없이 삼천배 수행에 도전!

지난 14일 밤 8시가 넘어서자 편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보통 100명 정도 참석한다고 하는데, 오늘은 120여명 정도가 모여 3칸짜리 극락전이 꽉 찼다.

▲ 삼천배 수행중인 초등학생 장승택군.
ⓒ 김귀자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는데, 간혹 부모님을 따라온 아이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엄마를 따라왔다는 장승택군(9)을 만났다. 이미 4살 때 법명을 받고, 108배는 자주 한다고 했다.

"절하는 게 어렵지 않냐"고 물었다. "1000배 정도 하는데요, 절하고 나면 아픈데 마음은 편해요", 초등학교 3학년 같지 않은 답이 돌아왔다. "얘는 작은 부처야"며 주위 아주머니들이 거드셨다. 어른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듯했다.

승택이에 얽힌 이야기 하나. 하루는 학교에 축구바지를 입고 갔는데, 친구가 놀렸단다. 어머니가 한대 때려주지 그랬냐고 말하자, 승택이 말하길, "엄마, 이 세상에 가장 큰 사랑은 용서예요"라고 했단다. 정말 작은 부처가 따로 없다.

삼천 배 시작 전, 살짝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람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한 가운데. 저녁 8시 반이 되자 삼천배가 시작되었다. 절을 하며 '108배 참회문'를 읽었다. '108가지 번뇌 망상을 108배를 하면서 소멸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절 한 번 할 때마다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염불을 하는데 '진리에 귀의 합니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재밌었던 것은 주고받으면서 염불을 하는 것이다. 농요처럼 한 편에서 "나무아미타불"하면, 다른 편이 그를 받아 "나무아미타불"한다. 이런 리듬감이 절하는데 큰 힘을 주었다.

끝없는 번뇌 속에 다리는 아파오고...

삼천배는 50분 절 하고, 10분 쉬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한 시간에 대충 500배를 한다고 한다. 밤 10시에 1차가 끝났다. 쉬는 시간에 과일 한 조각씩 먹고, 10시 15분 다시 시작했다. 2차는 더욱 힘들었다. 몸이 힘든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졸음이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도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떠돌아 다녔다. '가족, 헤어진 남자친구, 어떻게 기사를 쓰면 재밌을까?'하는 생각들이 나를 번뇌에 들게 했다.

드디어 2차가 끝났다. 자정에는 30~40분의 긴 휴식기간이 있는데, 이때 죽 공양을 한다. 오늘 나온 콩죽으로 출출하던 빈속을 잘 달래주었다.

자정이 넘어서자, 주위는 완전히 어둠 속에 묻혔다. 삼천배를 위해 불을 밝혀놓은 극락전만이 제 몸을 환히 드러냈다. 새벽 한 시가 넘어서자 몸과 마음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첫번째 증상은 머리가 '띵~'해지고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절을 할 때 생각을 많이 하면 머리가 아파진다더니, 그대로 들어맞았다. 무릎과 허벅지도 연신 앉았다 일어서는 통에 아프다 못해 후들거렸다. 발바닥도 따끔거린다. 그런 와중에도 잠은 벼락처럼 쏟아졌다.

'내가 어쩌자고 삼천배를 한다고 했을까' 후회막급이었다. 이제는 아예 절하는 게 아니라 코미디에 나오는 것처럼 앞으로 고꾸라지는 모양이다. 그렇게 힘든데도 내 꼴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다른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은 듯했다. 다들 등이며 가슴이 땀으로 흥건히 젖고, 재빠르던 몸놀림들이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아예 좌선(앉아서 명상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시작할 땐 꽉 찼던 곳이 시간이 지나자 듬성듬성해졌다.

"삼천배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삶이 즐거워져요"

▲ 삼천배 수행하는 모습.
ⓒ 김귀자
삼천배를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었다. 나는 애초 목표로 했던 1000배를 넘었기에 쉬엄쉬엄 하기로 했다. 잠을 깨기 위해 밖으로 잠깐 나왔다. 끊임없이 엎드렸다 일어섰다 절하는 사람들이 움직임이 아련해 보였다.

직접 해보니, 삼천배 수행은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고통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청해 하는 걸 보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뭘까?

이미 여러 번 삼천배 수행을 했다는 송아무개씨(남)는 "살면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은 나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문제지요. 삼천배를 통해 내적인 힘을 키웁니다. 한 마음에 따라 세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소원을 빌려고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 마음이 편해지고 사는 게 즐거워졌어요. 지금은 모든 살아 있는 게 감사합니다. 절하면서 남편과 말싸움하는 일도 줄고, 냄비 태우는 일도 줄었습니다.(웃음) 생각해 보면 세상에 열 받을 일 별로 없어요"라며, 승택이 어머니는 '절 예찬론'을 펼쳤다.

이밖에도 여러 사람과 이야기 해보았지만 생각보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내적인 힘을 기르는 것에 주된 목적이 있었다. 여전히 밖은 어두웠지만 조금씩 동이 터오는 것이 느껴졌다.

새벽 4시, 드디어 삼천배가 끝났다. "성불하십시오"라는 말과 함께 서로에 대한 3배로 끝을 맺었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삼천배 도전은 이천배도 못하고 끝났다.

삼천배를 다 하지는 못했지만, 진정한 '나'를 찾으려는 몸짓을 만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많은 이들이 나를 내세우지 못해 안달하는 통에, 밤을 새우며 땀으로 범벅된 채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삼천배를 시작하기 전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

이번이 나의 삼천배 도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것이다.

삼천배 힘들다고? '마음이 몸 지배 한다'면 거뜬
[인터뷰] 박종린 거사님(51·법명 덕암)

▲ 길상사 박종린 거사님
ⓒ김귀자

-삼천배를 하면 그만큼 번뇌망상이 제거되는 게 느껴진다. 가짜인 내가 비워지면 '참 나'가 드러나는가?
"나는 본래 환한 보석과 같은 존재이다. 권력•외모•건강•지식•지위 같은 번뇌망상이 나를 가린다. 우리는 번뇌망상 속에서 살면서도 그걸 모른다. 삼천배는 마음을 내려놓고, 때를 제거해 본래의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삼천배를 하면 마음의 때가 난다. 그게 부처님이다."

-삼천배 하면서 무슨 생각하나?
"아무 생각 안 한다. 오로지 염불에 집중한다. 나무아미타불은 '진리와 하나가 됩니다'라는 뜻이다. 이를 자꾸 욀수록 참된 내가 드러난다."

-힘들지 않은가?
"지금도 힘은 드는데, 알기 때문에 괴롭지는 않다. 걱정하면 못한다. 마음이 몸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못한다고 생각하면 못한다."

-힘든 고비는 어떻게 넘기나
"'그냥 몸이 힘들구나. 고비구나' 그걸 알아차리면 된다. 금방 없어지진 않지만, 집착이 덜해져서 쉬워진다."

-삼천배를 하면 뭐가 좋은가?
"모든 게 다 좋아진다. 나를 버려버리므로 제약 받는 생각을 없애므로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 주위에 많이 하라고 한다. 이만큼 좋은 건강법도 없다."

-삼천배는 누구나 할 수 있는가?
"물론이다. 어차피 모든 종교인의 목적은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닌가? 길상사에선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 삼천배 수행을 한다. 누구나 와도 좋다."

-어떻게 하면 삼천배를 꾸준히 할 수 있는가?
"무조건 '이 일이 우선이다'라고 정해놓아야 한다. 시간 날 때 한다고 하면 못한다. 꼭 핑계대기 좋은 일이 생긴다. 그렇게 안 하기 시작하면 낯설어져서 하기 싫다. 그렇지만 하고자 하면 일들이 피해간다. 뭐가 중요한지 생각하라. 그러면 나머지는 그 중심으로 정리된다."

-사람들은 주로 어떤 소원을 비는가?
"처음에는 자기로부터 출발한다.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자식 잘되게 해주세요, 가족 건강하게 해주세요 하다가 그 원이 점점 커져간다. 소원성취, 건강 같은 건 그 순간 절박한 것일 수는 있어도 작은 원이다. 일시적으로 이뤄진다는 건 의미가 없다. 그걸 넘어, 나의 영역을 키워가는 게 진정 기도다. 모두가 잘 살게 해달라고 하면 모든 게 다 담긴다. 크게 발원하라."
/ 김귀자

덧붙이는 글 | 김귀자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삼천배, #수행, #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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