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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타결했습니다. 이어서 유럽연합, 그리고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반만년이 넘게 농사를 지어온 이 나라에서 농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입니다. 곡식을 비롯하여 가축들도 수 세기 동안 함께 살아온 토종 종자들이 사라져갑니다. 고작 해야 백 년도 안 되는 시간에 모든 것들이 변해 가는 것입니다.

변화의 바람이 태풍처럼 밀려오는 '자유화'라는 논리에 맞서 힘겹게 우리 것을 지키는 농부가 있습니다. 남들처럼 많은 돈을 원하지도 않고, 남들처럼 편해지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건설회사에서 일을 하다 경찰공무원이 되기도 하였던 농부는 작은 산에서 닭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 10여년째 토종닭을 키우고 있는 유홍렬씨
ⓒ 배만호
최근에 'KBS 환경스페셜'과, 같은 방송사에서 하는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이라는 프로에서 닭과 달걀에 관한 방송이 나간 뒤에 유홍렬(43·경남 함안군 대산면)씨의 닭은 더욱 진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삼복더위를 앞두고 있어 마치 날개 돋친 듯이 주문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6일 만난 유홍렬씨는 오히려 닭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닭을 키우는 농부가 닭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하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하여 물으니, 힘겹게 설명을 해 줍니다.

"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동물들이 다 그렇다. 여름에는 벌레도 많고 병균들도 많고, 또한 자라는 환경 역시 안 좋으니 안 먹는 것이 좋다. 그러니 여름을 제외한 봄, 가을, 겨울에 먹는 것이 좋다."

"형님! 그러면 형님이 닭을 키우지 않아야지요?"

"아니다. 동생네가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내 닭은 죽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는 것이다. 닭들이 내 친구이고, 나도 닭들한테 친구이다."

▲ 낮에는 항상 밖으로 나와서 놀고 있는 유홍렬씨의 닭들은 행복하다.
ⓒ 배만호
0.3㎡의 공간에 3마리가 들어가 있는 케이지식 양계장. 그곳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닭. 사람의 치아처럼 신경조직으로 연결된 부리를 잘리는 고통 속에서 발톱까지 잘린다. 그리하여 땅을 헤집고 부리로 모이를 쪼아야 하는 본성을 통제당하며 살아야 하는 닭. 알을 적게 낳는다고 10일에서 15일 가량 굶어야 하는 현실. 수평아리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알에서 부화를 함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는 운명.

여름날 밤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안주로 먹는 닭고기가 이렇게 길러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 속담에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고 행복하게 살다 맞이하는 죽음은 죽는 그 순간에도 행복할 것이지요. 하지만 고통 속에 살다 맞이하는 죽음은 얼마나 잔인할까요?

▲ 사진의 오른쪽에 보이는 항아리에는 닭에게 먹일 효소가 담겨 있다.
ⓒ 배만호
닭은 생리구조상 대변과 소변이 함께 나옵니다. 더구나 다른 애완동물이나 가축처럼 특정한 장소에만 대소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먹다가도, 걸어다니면서도 볼일은 봅니다. 그래서 닭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은 그 냄새 때문에 아주 고역이지요.

하지만 유홍렬씨의 닭장에서는 전혀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닭들이 있는 한쪽에 조그만 움막을 짓고 휴식을 취하는 농부는 일을 하다가 힘겨움에 휴식을 취하고자 할 때는 닭장으로 가서 담배를 피워 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려고 하는 유럽연합에서는 케이지식 닭장에서 사육되는 닭의 유통을 금지한다고 합니다. 돼지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에서 닭을 유럽연합으로 수출 못하게 됩니다. 자기 나라에는 모든 준비를 해 두고 협정을 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변해야 합니다. 지구상에서 전세계 인구보다 많은 수의 닭이 사육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닭들은 '자라나'는 것이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동물이 행복하게 살다 죽어야 사람도 행복하게 살다 죽는 것입니다.


태그:#토종닭, #농부, #유홍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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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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