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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테 기념 행사
ⓒ 김홍섭
이번 2월에 가족과 유럽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유럽여행은 모두의 바람 중 하나일 것이며, 우리에게 조금 늦게 그 기회가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한다.

여행은 미지의 세계를 보고 체험하는 것이다. 새로움 속에서 자아를 성찰하게 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유달리 뇌리에 남는 것은 피렌체의 좁고 오래된 길들이었다. 돌로 바닥을 깔고 퇴색한 벽들로 이루어진 나지막한 건물들이 시간의 길이와 새겨진 이야기의 깊음을 말해 주는 듯하였다.

흔히 사랑의 유형을 구분할 때 우리는 희랍사람들의 구분을 이용하여 에로스의 사랑, 에피투미아의 사랑, 필레오의 사랑 그리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나누곤 한다. 플라토닉 사랑, 에로틱 사랑 등으로 또는 아우라몬과 아모로겐의 사랑으로 나누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사랑의 구분에도 불구하고 나는 창조적 승화를 가져온 사랑으로 단테와 베아트리체와와 만남 그리고 괴테와 샤 롯데와의 만남 또는 그레첸과 파우스트와의 만남을 좋아한다.

피렌체는 단테(Durante degli Alighieri, 1265~ 1321)의 도시다. 물론 인류의 천재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도시이기도 하다. 단테는1265년 이탈리아의 중부의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유년의 단테의 삶에 관해서는 무엇보다도 소년 시절에 경험한 베아트리체와의 인연을 주제로 하는 자서전적인 <새로운 삶(Vita nuova)>에서 짐작할 수 있다.

단테가 9살이 되었을 때 한 살 아래의 폴코 포르티나리(Folco Portinari)의 딸 베아트리체를 처음으로 멀리서 보고 애정을 느끼며, 이 진귀한 유년 시절의 경험은 단테의 인생행로를 좌우하게 된다.

몰락한 가문의 단테는 당대 영향력 있는 귀족가문의 그녀와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아닌 시모네 디 발디와 결혼을 하고, 단테도 젬마 도나티(Gemma Donati)와 1277년 약혼하게 되며, 26세인 1291년에 결혼하게 된다.

18세 되던 해 단테는 구이토네 다레초(Guittone d'Arezzo)의 영향을 받아 시를 쓰게 되고,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평생 동안 문학적 스승을 받들었으나, 그보다 더 문학적 영향을 미친 사람은 베아트리체였다.

우리는 피렌체의 골목들을 걸어서 여러 굽어진 길을 돌아 한 교회당에 이르렀다. 좁은 골목에 크지 않는 성당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은 매우 어두워 사람의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었다.

▲ 단테 기념성당의 관석
ⓒ 김홍섭
그 어둠속에 작은 불빛으로 빛나는 부분이 있었다. 흰 돌에 빛이 비춰지며 홀 전체에 약간의 조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성당은 베아트리체다 다니던 성당이며, 그녀를 만나러 여러 번 단테는 이곳을 방문하고 서성거렸다고 한다.

9살 때의 첫 만남과 18살 때의 우연한 만남 이외의 긴 시간 동안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기다렸던 것이리라. 그들의 만남은 단테의 유랑과 그녀의 짧은 생으로 다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들의 애틋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후세 사람들이 단테 무덤의 관석(棺石)의 조각을 가져다가 여기 베아트리체의 성당에 안치하고 못다한 두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있다는 설명에 나는 문득 가슴이 아리고 슬퍼지기 시작했다.

후세의 화가들이 두 사람의 조우를 그림으로 그려서 성당 벽에 걸어 놓았다. 죽음이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삶으로 존재하듯이, 삶과 사랑도 사람의 가슴 속에, 기억 속에, 무의식의 깊음 속에 살아 있는 것이리라. 산으로, 산의 광맥으로, 그것이 뻗쳐, 솟아올라 산맥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리라.

아니면 저 깊은 해연으로, 해구로 가라앉아 골을 이루는 것이리라. 두 사람의 사랑은 진정으로 사랑의 아름다움과 참됨과 선함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길을 열어 놓으며, 역사에 빛나고 있는 것이다. 찰나적인 사랑이 난무하는 오늘날 천년을 살아 전해질 아름다운 단테의 사랑과 피렌체의 얘기는 우리를 맑게 한다.

<단테의 피렌체>

붉은 벽돌과 고급 샹들리에에
조용히 깔리는 음악의 도시
빛바랜 천재들의 도시

퇴색하여 더 아름다운 도로와
돌길과 벗은 나무들 사이로
어느 시대의 성곽같은 망루에 종소리 들리고

베아트리체 오 베아트리체
여인이여 구원의 여인이여
한 눈에 멀게한 붉은 영혼이여

내 여기 한 돌로 영원히 남아

그대 기다리노니
그대 그리워하노니

성당의 한 돌로 남아
관석으로 남아

내 혼의 새벽별이여
내 사랑은 내 생명보다 강하니
내 기다림은 죽음 보다 붉으니

▲ 베아트리체에게 인사하는 단테, 홀리데이 작

#피렌체#단테#베아트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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