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번 5월 초에 L 목사님으로부터 한 문자를 받았다. '화해와 용서의 기도회 42차 모임을 갖는다'는 안내였다. 철원 노동당사에서 모여 인근 소이산을 돌아 민통선 안에 들어가 침묵과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철원은 군대생활을 한 곳이어서 늘 남다른 추억과 감회가 있는 공간이고 시간이 되어 참석하기로 했다.

아침부터 하늘은 흐리고 이슬비가 내리고 있다. 서둘러 차를 운전해 아내와 안개 낀 임진강 길을 따라 노동당사에 도착했다. 노동당사(勞動黨舍)는 강원도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1946년에 완공된 3층 건물이다. 38선 이북이어서 한국전쟁(Korean War)이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의 노동당사로 이용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전쟁 때 큰 피해를 입어 건물 전체가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게 나있는 검게 그을린 뼈대만 앙상한 건물 유적이다.

우리는 건너편 야트막한 소이산(所伊山,362m)을 걸으며 묵상과 기도로 그리고 이 땅의 분단과 아픔의 화해와 용서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 모였고 길을 출발하였다. 우리 일행은 이 모임을 공동으로 이끌고 있는 몇 분의 목사님, 신부님, 지역 선생님들과 주변에 초대 받은 관심 있는 20명으로 구성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 앞장을 서 길을 인도했고 젖은 흙을 피해 조심스레 걸으며 시골길을 걸어 산의 입구에 들어섰다.

이 산은 일제 시대에 신사(神社)가 있던 곳으로 상당한 지세와 풍수지리적 가치를 갖는 곳이라 한다. 노동당사 주변의 지역에 2만여 명이 거주했고 일제는 강제로 신사에 절하게 하며 민족혼을 말살하던 기억이 있는 땅인 것이다.

산은 젖은 산길 사이로 풀과 나뭇잎이 무성했다. 철조망으로 차단된 지역을 끼고 돌아가며 점차 산정을 향해 나가고 있다. 철조망에는 지뢰라고 표기된 표지가 붉고 선명하게 달려있다. 안내 맡은 신부님의 '지뢰밭에 들어가면 영 못 보게 될 수도 있다'는 농담을 했지만, 약간의 긴장이 감돌고 있다.

지뢰밭을 끼고 돌아가는 길가에 놀랍게도 노랑과 붉은 그리고 하얀 꽃들이 만개했다. 군락을 이루며 피어난 금낭화는 철조망 이쪽 저쪽에 피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애기똥풀이란 앙증맞은 이름의 노란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다. 철 지난 듯한 왕벚꽃들의 분홍빛 흔들거림과 복사꽃, 수국, 제비꽃 등도 보였다.
 
지뢰밭과 금낭화 꽃길
▲ 지뢰밭 꽃길 지뢰밭과 금낭화 꽃길
ⓒ 김홍섭

관련사진보기

 
많은 봄꽃들이 수도권보다는 다소 늦게 피었다. 지역 문인들이 조성한 지뢰밭 꽃길에 핀 꽃들의 조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화해, 죽음과 생명의 대화, 오래 갈라져 무시하고 분노하고 증오하던 것들의 용서. 그 모든 것들이 함께 봄비를 맞고 있다.

소이산 정상은 주변 표고 차가 200여 미터 밖에 안되나 평야에 우뚝 서서 앞을 바라보면 널찍한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 백마고지, 건너편 북한의 평강고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철원평야를 한눈에 굽어보는 위치로 고려 때부터 봉수대가 설치돼 함경도 경흥에서 서울로 연결되던 경흥선 봉수로에 속해 있었다. "이 산이 없었다면 전쟁 때 철원평야를 지킬 수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산정에 서면 앞의 작은 산들 뒤로 높이 솟은 북한의 고암산( (高巖山, 780m)이 멀리 보인다. 일명 김일성고지라 하며 백마고지와 철원평야를 빼앗기고 김일성이 탄식했다고 해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암산은 태봉국을 새운 궁예가 궁의 주산으로 삼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 풍수인이 '금학산을 진산(鎭山)으로 도읍을 정하면 300년이고, 고암산을 진산으로 하면 30년이다'란 말에도 궁예는 고암산 기슭에 도읍을 정해 지금도 궁예궁의 자취가 있고, 후일에 이를 복원하는 것도 중요한 통일 과업이라고 한다. 우리는 민통선을 지나 만개한 꽃과 풀과 나무들이 한창 뿜어내는 봄의 훈향을 느끼며 월정리와 국경선 평화학교를 탐방했다.
 
월정리 철마
▲ 월정리역 월정리 철마
ⓒ 김홍섭

관련사진보기

 
화해와 용서란 큰 갈등과 상처가 있는 당사자가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하고 서로 맺힌 감정을 풀고 새로운 좋은 관계를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분단 70여 년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가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먼저 우리 마음을 고쳐 먹는 것이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상대가 결코 바뀌지 않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내가 나와 다른 생각의 이웃을 이해하고 그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이 평화의 출발이요, 아니 행복의 출발이다. 우리가 진정 누구를 용서할 자격이 있는가, 누구와 화해할 만한 사건과 기억을 직접 체험했는가, 상대는 변하고 있는가? 상대방은 진정으로 우리의 화해와 용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받아 줄 의향이 있는가 등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면서 걷는 봄 길은 많은 생각과 역사에 대한 기억들을 회고하게 한다.

'꽃은 칼보다 강하다'란 말이 있다. 칼의 힘과 무력은 일시에 꽃의 목숨을 앗아갈 수는 있을 것이나 꽃의 향기와 아름다움까지 빼앗지는 못한다. 일시적으로 꽃의 가치를 상하게 할 수는 있을지라도 또다시 피는 꽃의 장구한 생명과 지속과 지향의 고상함은 결국 실현되고 마침내 칼을 이기게 될 것이다.

칼로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일순 막을 순 있어도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수 없었듯이 우리의 화해와 용서, 평화와 통일의 걸음들이 지속되고 이어진다면 그 꿈의 봉우리를 오르는 날도 반듯이 올 것이다. 명확한 대상이나 사건이 없을지라도 직접적인 기억이나 이해 관계가 없다할지라도 우리 민족의 가야할 화해와 용서의 길이라면 걸어가야 할 것이다.

분단 70여 년. 둘로 나누어져 갈등하고 분노하고 총질하는 이 땅의 질곡을 근원부터 해결하기 위해 작은 기도, 화해와 용서 그리고 상호이해와 공존, 공생의 지향점을 향해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제사를 지내기 전에 형제와 화해하라(마 5:24)던 예수님의 말씀처럼 가까이에 있는 이웃과 오늘 실현가능한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이 바른 길이 아닐까?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지뢰밭의 현실에서도 지혜롭고 신묘하게 꽃을 피우고, 꽃길을 내고, 기도하며 묵상하며 그 길을 걷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그날이 올 테니>

멀리 보이는 북의 산
물 벙벙한 철원 평야들

숨어 생명을 위협하는 지뢰밭
새 봄 연분홍으로 핀 새 생명

지뢰밭 꽃길
금낭화 꽃길
애기똥풀의 애잔한 웃음

물과 흙과
산의 대지
민족의 젖가슴에 생기 돌고

물의 용서를 받아
흙과 화해하는 우리 모두
화해하고 용서하는

낮은 곳으로 흘러 흘러 모두를
용서하는 물처럼

모든 아픔 품고 삭히며
기다려 마침내 화해하고
하나되는 흙처럼

우리 기도 더 깊으면
우리 용서 더 넒으면

그날이 올 테니
한강물 다시 솟고
동해물 춤추며

 
한반도 만주 연해주
평화 통일
그날이 오고야 말 테니

김홍섭  (시인, 인천대 명예교수)

태그:#평화통일, #지뢰밭 꽃길, #철원평야, #소이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민의 정보 교환의 장이자 모든 시민이 기자인 오마이 뉴스의 기자가 되고 싶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