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시오노야씨와 후쿠시마 교수가 손가락 점자로 대화하고 있다.
ⓒ 일본시청각장애인협회

지난 주 장애인계에는 참으로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동양판 헬렌 켈러'로 불리는 후쿠시마 사토시(45)씨를 비롯한 일본 시청각장애인 협회 관계자들이 한국의 시청각장애인들의 모임의 결성을 축하하러 온 것이었다.

이들에 방한에 대하여 많은 매스컴에서는 관심을 보였고 후쿠시마 교수는 방한 일정 내내 취재에 응하느라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러나 이들 일행 뒤에서 조용히 일행의 여러가지 뒷처리를 해주는 나이 지긋한 일본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매체는 없었다.

바로 그가 후쿠시마 사토시 교수를 길러낸 스승 시오노야 오사무(63)씨였다. 시오노야씨는 국립 특수교육기관인 츠쿠바대학교 부속맹학교에서 교사로 30 여 년간 재직하다 정년퇴임을 한 후 지금은 일본 시청각장애인들의 복지의 본산인 '일본 시청각장애인 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갑자기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된 제자 후쿠시마 사토시

시오노야씨와 후쿠시마 교수으 인연은 후쿠시마 교수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다. 후쿠시마 교수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바로 시오노야씨. 후쿠시마 교수는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시각장애인에서 청각까지 상실해 시청각장애인이 된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고안한 '손가락 점자'를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다시 학교에 나타났다.

시오노야씨는 이런 제자를 위해 여러가지 지원 방안을 고심했다. 그래서 처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한 방법이 손가락 점자와 함께 '부르스타'라는 점자 타이프를 통해 수업내용을 후쿠시마 학생에게 전달하였다.

이 타이프는 다른 타이프가 종이를 빼고 나서야 내용을 읽을수 있는 것과는 달리 타이프를 치면 롤로 말아진 종이가 옆으로 나와 실시간으로 수업 내용을 전달 받을 수 있는 기계이다. 이 점자 타자기와 손가락 점자 덕분으로 후쿠시마 학생은 수업 내용을 전달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도 시각장애인이 대학에 진학하기란 매우 드문 일이었으나 후쿠시마 학생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시청각장애인이되고나서 그 희망이 실현 될수 있을까에 대하여 모두들 염려하였다. 실제 후쿠시마 교수는 당시 몇몇 대학에서는 입학이 거절된 사례도 있었다고 말한다.

시오노야씨는 이러한 후쿠시마 학생을 위해 여러가지 상황을 찾아보고 지원하여 드디어 1983년 일본에서 시청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후쿠시마 교수가 도쿄도립대학 인문학부에 입학을 하게되었다.

그러나 입학 후 대학에서의 수업이 문제였다. 당시는 후쿠시마씨와 의사 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극히 일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오노야씨는 이를 위해 후쿠시마 지원 모임을 만들었다. '후쿠시마와 함께 걷는 모임'이라는 모임을 통해 시오노야씨는대학에서의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통역자의 확보와 이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일에 주력했다. 그 결과 후쿠시마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지속적으로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스승에서 전체 시청각장애인의 스승으로

시오노야씨가 중심이 되어 만든 '후쿠시마와 함께 걷는 모임'에는 인간 승리의 기적을 만든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여든 사람 가운데는 지원을 하기위한 자원봉사자도 적지 않았지만 후쿠시마씨와 같은 장애를 가진 시청각장애인도 함께하였다.

이렇게 모여든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시청각장애인의 통역을 위한 서비스 제공과 정보교류, 그리고 활동 지원 활동등을 통해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향상시키고 이들에 대한 복지가 발전하게 되었다. 이 모임에 중심에는 언제나 시오노야씨가 있었다. 결국 이 모임이 모태가 되어 1991년 에는 '일본 시청각장애인 협회'가 만들어이 단체를 중심으로 일본의 시청각장애인의 복지가 실시되고 있다.

후쿠시마 교수는 늘 시청각장애인을 꺼진 텔레비전에 비유한다. 시각을 상실하면 텔레비전의 소리만 듣는 것이고 청각을 상실하면 소리없이 화면만 보는 것이라고 할 때, 시청각장애인은 꺼진 텔레비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꺼진 텔레비전과 같은 시청각장애인도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가지 방법들과 그러한 방법을 지원하는 통역 서비스만 있다면 다시 꺼진 TV를 켤수 있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교수 일행의 한국 방문 일정내내 동행했던 기자도 이러한 사실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시각장애를 가진 기자보다 오히려 모든 상황에 대하여 후쿠시마 교수와 함께 한국 방문을 한 가토카와 신이치로씨의 경우가 훨씬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이들 두 사람의 시청각장애인에게는 각각 두 사람씩의 통역자가 함께하면서 상대방의 대화 내용 뿐만 아니라 주변 상황까지 모두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이 힘들지만 보람 느낀다"

17일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공항에서 시각장애 특수학교의 교사와 현재 시청각장애인 관련 일중에 어느 것이 힘드냐는 기자의 질문에 "현재가 더욱 힘이 듭니다, 시청각장애인 한 사람 한사람의 장애 유형이 다르고 요구가 달라 거기에 부응하는 서비스 제공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작은 어깨가 이제 나이를 대변하는 이 늙은 스승을 바라보면서 한국에서도 이러한 진정한 스승이 계셔서 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학생에게 진정한 삶의 가르침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