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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가에 맨발로 십자가 지팡이를 짚고 있는 나이 든 성직자.
ⓒ 김성호
길가에 십자가 지팡이를 짚고 있는 늙은 성직자

나의 넋을 잃게 하였던 십자가형 지하 암벽교회인 베트 기요르기스 교회를 올라와 현지주민들이 살고 있는 초가지붕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을 거쳐 돌아오는데 80대로 보이는 나이 든 성직자가 맨발로 지팡이 같은 십자가를 들고 있었다.

거리에서 나이 든 성직자를 보니 랄리벨라 시내 전체가 마치 구도자들의 도시처럼 느껴졌다. 이 성직자는 여행객을 상대로 사진을 찍고 푼돈을 받고 있었다.

조금 위쪽의 언덕에는 2층으로 된 둥근 오두막집 형태의 에티오피아 전통 가옥이 있는데, 현지인들은 '투쿨(Tukul)'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주로 2층에 살고 1층에는 동물들을 기르기도 한다. 몸체는 흙으로 짓고, 지붕은 짚으로 엮어서 집이라기보다는 마치 여물통을 저장하는 창고같이 보였다.

11개 교회는 모두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걸어서 둘러보기에 충분한 거리이다. 그러나 날씨도 더운데 쉬지 않고 구경하다가 보니 목이 타서 마실 곳을 찾아갔다. 공식 안내자가 이끄는 데로 간 곳이 아스칼레츠라는 이름의 테지(Tej) 하우스였다. 교회 매표소에서 숙소인 미니로하 호텔로 내려오는 길목에 있는 초가집으로 된 휴게실 겸 음료수 가게였다.

공식안내자가 "목마른 데는 테지 한잔이 최고"라고 추천해 테지를 시키니 작은 호리병에 담아서 나온다. 마셔보니 단내가 나면서도 술기운이 확 올라왔다. 사이다 같은 음료수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에티오피아 전통술이었다. 안내자는 "꿀과 알코올을 섞어 만든 술인데, 도수가 5도"라며 마치 음료수 마시듯 마셔댔다.

옆 자리에 있는 현지주민 4명도 테이블에 둘러앉아 테지라는 술을 서로 번갈아 잔에 따라 주면서 우리 막걸리 마시듯이 훌쩍훌쩍 마신다. 나도 목이 말라 작은 병 하나를 모두 마셨더니 바로 얼굴이 후끈후끈하게 달아올랐다. 날씨가 더운데다 갈증이 심해 술기운이 순식간에 온몸에 퍼진 것이다.

▲ 투쿨(Tukul)이라 불리는 2층 짜리 에티오피아 전통가옥
ⓒ 김성호
숙소에 돌아오니 숙소 주인의 어린 딸 2명이 서로 레게 형태의 머리를 따주고 있었다. 언니는 초등학생 3학년이고, 동생은 초등학생 1학년이라고 한다. 18살의 큰딸은 어머니와 함께 낮잠을 자고 있다고 한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가지런히 정리한 뒤 묶어서 땋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니 레게머리를 만드는 정성이 보통이 아니었다.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으니 "3, 4시간도 더 소요된다"고 말한다. 3분의 1쯤 레게머리를 만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다 피곤해 방으로 돌아왔다.

아디스아바바 숙소보다 더 삐거덕거리는 침대에 누워 있는 데 누군가가 방문을 두들겨 열어 보니 숙소에서 일하는 남자 종업원이다. 나보고 바쁘냐고 물어 "괜찮다"고 하자 음료수를 마시자고 한다. 피곤했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것 같아 방에서 나와 조그만 숙소 마당에 앉았다.

키가 작아 자신의 별명이 호텔이름과 같은 '미니로하'라는 종업원은 아침 6시에 출근해 침대와 숙소, 마당, 화장실 등을 청소하는 허드렛일을 한단다. 27살의 이 젊은 종업원은 새벽부터 일하는 데도 월급은 쥐꼬리만큼 준다며 불평이다. 이곳 랄리벨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을 졸업하고 이것저것 남의 집에서 일해주면서 살아오고 있단다. 그는 "랄리벨라에서는 잡일 말고는 달리 일할 것이 없다"며 하소연을 했다.

"아디스아바바 같은 도시에 나가 일하고 싶은 데 많이 배우지 못하고 특별한 기술도 없어 갈 수도 없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이들이 보기에는 외국 배낭여행객은 모두 잘사는 나라의 국민들이기 때문에, 아무라도 붙잡고 신세타령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일주일에 투숙객이 한 명밖에 없는 숙소

최근에는 여행객도 많이 줄었다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여행객이 줄면 자신의 일자리도 위태롭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묵은 미니로하 호텔은 랄리벨라에서도 가장 싸고 허름한 집인데, 여행객이 나를 제외하고는 한 명도 없었다. 나에게 건네주는 숙박 장부를 보니 일주일 전에 일본 남자 여행객 한 명이 묶고는 그동안 한 명도 찾아오지 않을 정도였다. 일본 여행객 이전에도 일주일에 한두 명 묶는 정도였다.

아무리 6월부터 시작되는 우기로 여행 비수기라 하더라도 투숙객이 너무 없는 것이다. 에티오피아를 제외한 나머지 아프리카 여행 중에는 유럽의 휴가철과 맞물린 탓도 있지만 여름방학을 맞아 아프리카를 찾은 전 세계의 수많은 여행객들로 숙소를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숙박 장부를 보면 이 종업원도 언제 일자리를 잃은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걱정하는 것은 에티오피아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였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는 바로 자신의 미래를 의미하기 때문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에티오피아의 가난한 현실보다도 희망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볼 때 더욱 가슴 아팠다. 직업의 선택이 아니라 아예 일자리 자체가 없기 때문에 낙담하고 있었다. 두 시간 정도의 넋두리를 들어주면서도 여행객인 내가 이 젊은이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실망하지 마라. 에티오피아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 잘 살 수 있지 않겠느냐."
"에티오피아가 잘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하고 싶은데…."


농업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80%인 에티오피아에서는 수도 아디스아바바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젊은이들을 너무나 자주 만나게 된다. 에티오피아에서는 공식적인 실업률 통계가 잡히지 않을 정도이다. 이처럼 가난은 제일 먼저 젊은이들로부터 희망을 빼앗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 젊은이에게 별다른 희망을 주지도 못해 미안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잘 견뎌내라는 의미에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여행객을 위해 운영하는 숙소의 작은 식당에서 전통 인제라 음식을 팔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이 젊은이는 어둠이 깔리기 전에 집으로 갔고, 나도 일찍 자려고 방안으로 돌아왔다.

유령의 집같이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잠은 안 오고...

▲ 랄리벨라 시내 입구의 아침 이른 모습
ⓒ 김성호
방안에 들어와 잠을 청하는데 도무지 잠이 오질 않는다. 허름한 민박집이라고 해야 할 숙소는 호텔이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아예 가건물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주인집은 언덕 아래에 있고, 뒤편에 한참 떨어진 언덕 위에 컨테이너 같은 사각형 시멘트 건물을 지은 뒤 방안에 나무 침대만을 갖다 놓은 격이다. 방문의 열쇠 자체가 없고, 허술한 나무걸이 형태로 되어 있어 사람이 밀치면 바로 문이 열리게 되어 있다.

도난방지나 보안장치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으니 어둠이 깔리자마자 마치 공동묘지나 유령의 집처럼 변했다. 시멘트 건물에 덩그러니 침대 하나 놓여 있는 숙소들에서는 언제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어두운 정적이 감돌았다.


밤 9시가 되어 화장실을 찾아갔다. 낮에 젊은 종업원이 건물 뒤쪽 제일 구석진 곳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줘 대충 장소는 알고 있었다.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는 손전등을 배낭에서 꺼내 화장실을 찾는 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방안에서 나와 일단 오른쪽으로 가다 다시 왼쪽으로 돌아서 가니 흙벽으로 막혀 있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다시 뒤쪽으로 돌아가니 어두운 곳이 보인다. 화장실이다. 마치 미로를 찾는 것 같았다. 텅 빈 숙소들을 지나가는 데 방안에서 으스스한 느낌이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어두운 구석 중간에 높이 30cm 정도 높이의 사각형 시멘트 가운데에 동그랗게 구멍을 뚫어놓았다. 동그란 구멍이 바로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곳이다. 그런데 사각형 시멘트의 용도가 그 위로 올라가 발판으로 삼아 재래식 변기처럼 사용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좌변기처럼 변기 받침대나 커버로 사용하라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아예 우리네 재래식 화장실처럼 평지에 밑으로 구멍을 내놓았으면 고민을 하지 않을 텐데, 30cm 높이의 시멘트 사각형을 만들어 놓은 다음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놓으니 사람을 헷갈리게 하였다.

엉덩이를 차마 더러운 시멘트 위에 덥석 내려놓을 수는 없어 발판용도로 삼아 올라갔다. 화장실 문도 없어 발판에 올라가 쭈그리고 앉으니 숙소가 높아서 아래쪽 집들이 어두운 가운데도 희미하게 보인다.

앞이 확 트인 시멘트 변기 위에 앉으니 시원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몇 년 전 '고도원의 아침편지'라는 인터넷 편지 메일 서비스에서 주최한 '몽골에서 말 타기' 단체여행에 참가해 몽골 초원의 나무 판잣집 화장실에서 똥통에 빠지지 않으려고 나무발판에 조심스럽게 발을 올려놓고 초승달을 바라보며 일을 보던 때가 떠올랐다.

화장실 문이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몽골초원에서의 화장실은 낭만이 있었다. 그런데 랄리벨라 화장실은 어둡고 음침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일을 본 뒤 화장실에 물을 넣으라고 플라스틱 물통에 물이 담겨 있고 반쪽으로 자른 커다란 페트병이 놓여 있었다. 반으로 자른 페트병으로 물통의 물을 적당히 담아서 화장실에 뿌리라는 것이다.

수세식 화장실처럼 오폐물로 처리되어 하수구로 흘러가는 것 같지는 않은데, 페트병으로 물을 붓도록 하는 것은 또 왜일까. 어두컴컴한 아프리카 화장실에 앉아서 쓸데없는 생각까지 해봤다.

공동묘지에서 잠자는 것 같은 공포의 밤을 보내고...

방으로 돌아왔으나 잠이 올 리가 없다. 화장실 갔다 온 것이 마치 지옥의 미로를 헤매다 온 것 같았다. 방문 자물쇠가 없으니 솔직히 잠자는 사이에 누가 몰래 들어와 배낭을 통째로 훔쳐갈 수도 있거니와 강도가 들어와 몸이라도 다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떨칠 수 없다. 바하르다르에서 처음으로 현지버스를 타고 블루나일 폭포를 구경 갔을 때의 당혹스러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너무 돈을 아끼려고 싼 숙소에 왔다가 꼼짝없이 강도를 만나 여행 자체를 망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하고. 더구나 숙소에는 여행객이라고는 나 혼자밖에 없으니 누구하고 이 어둠으로부터의 위안을 같이 나눌 사람도 없다. 아프리카 여행 닷새 만에 맞는 최악의 공포의 밤이다.

그러잖아도 뒤숭숭한데 이번에는 박쥐가 날아드는 듯 처마 밑에서 파닥파닥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무로 된 문고리가 바람에 덜컹덜컹 거리면서 방문도 흔들리고, 침대도 몸을 뒤척이는 데 따라 삐거덕삐거덕하면서 여기저기 이상한 소리가 뒤섞이면서 공포감이 내 몸속으로 엄습해왔다.

천장에서는 오래된 슬래브 지붕이 깨어지는 소리와 함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둑이 담을 넘어 지붕을 타고 들어오는 소리 같아 바짝 신경이 쓰이고, 머리칼이 뻣뻣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 살펴볼 수도 없다. 소리 내지 않고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사람의 인기척을 내지 않는 것이 도둑을 피하는 상책이다.

눈을 부쳤다 땠다 하기를 몇 차례, 몸을 엎치락뒤치락하기를 또 몇 차례를 하다 보니 "꼬끼오∼"라는 닭소리에 눈을 떴다.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랄리벨라의 음습한 밤기운에 잠 못 이루는 여행객에게 새벽을 알리는 닭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계를 보니 아직도 새벽 4시 30분. 역시 나처럼 잠을 설친 새벽닭이 밤이 무서워 울었나 보다.

나는 방안에 비상용으로 놓아두었던 초를 꺼내 불을 붙이고 아예 뜬 눈으로 밤을 새우기로 작정했다. 아침 6시가 되자 칠흑 같은 어둠이 조금씩 벗겨지고 성경을 읽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스피커 소리와 함께 새벽닭들도 여기저기서 울기 시작하자 공동묘지 같은 공포는 멀어지고 종교적 도시의 평안함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아침의 밝은 빛을 보면서 밤새 공동묘지에서 나 홀로 밤을 새운 공포감에서 해방되는 느낌을 맛보았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지붕의 슬래브 몇 조각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어젯밤 지붕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바람에 슬래브 조각이 미끄러지면서 땅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였던 것 같다. 랄리벨라는 이처럼 낮에는 신비로운 종교의 도시였다면, 밤은 기괴한 공포의 도시였다. 밤낮이 극단적으로 바뀌는 두 얼굴을 가진 도시로 나에게 다가왔다.

아무리 가난한 배낭여행이라도 이처럼 무조건 싼 숙소가 좋은 것은 아니다. 특히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싼 숙소는 가축우리와 별 차이가 없고 안전장치가 없다 보니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의 공포감에 휩싸일 수 있다.

홀로 다니는 여행객은, 특히 중간 가격의 숙소를 고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여행 자체가 안전을 위해 상당한 긴장과 경계를 필요로 하는데, 숙소에서조차 여행의 즐거움은커녕 공포감을 체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린이 구호단체 플랜(Plan)의 간판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 랄리벨라 시내 입구에 세워져 있는 어린이 구호단체인 플랜(Plan) 간판
ⓒ 김성호
어둠에 떨어야 했던 나는 서둘러 배낭을 챙겨 유령의 집처럼 느껴지는 숙소를 나와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큰길로 나왔다. 큰길에서 조금 내려오니 마을 입구에 커다란 철제 간판이 세워져 있다.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지붕의 흙벽돌 집 바로 앞에 세워진 철제 간판에는 파란색의 지붕에 깔끔한 시멘트 집이 그려져 있어 마치 '우리 마을 우리 손으로 가꾸자'는 70년대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 간판 같다.

그림 위에 내용을 알 수 없는 두 줄로 된 암하릭어가 쓰여 있고, 오른쪽 위에는 'Plan'이라는 영어와 동그란 원안에 어린아이가 왼발 하나를 들고 두 손은 벌린 채 즐거워하는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세계적 비종교 어린이 구호단체인 '플랜(Plan)'이 랄리벨라지역과 자매결연을 맺고 어린이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표시였다. 파란색의 원안의 어린이도안은 바로 '플랜'의 상징이다.

지난 1937년 스페인 내전으로 부모와 집을 잃은 전쟁고아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플랜'은 지금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 빈곤국가의 어린이들을 후원하기 위한 대표적인 비종교, 비정부적 국제아동 개발원조를 위한 민간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직후인 지난 1953년부터 1979년까지 매년 2만5000여명의 어린이들이 '플랜'의 도움을 받다가 1996년부터는 '플랜코리아'가 만들어지면서 수혜국에서 후원국으로 탈바꿈해 아프리카와 북한 등 전 세계 어린이를 돕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오지에서 우리나라 어린이들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플랜' 간판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면 '플랜코리아'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보리라….

'플랜' 간판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헬로"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돌아보니 어제 십자가 목걸이를 주었던 바로 그 어린아이였다. 나도 반가워 "헬로"하고 인사하고 공항 가는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자 자기가 지나가는 차량을 잡아주겠다고 한다. 워낙 작은 도시여서 랄리벨라 교회 주변에서는 하루만 있어도 몇 번을 마주치게 된다.

아이는 자기보다 키가 더 큰 남자아이와 함께 있는데, 9살 난 자기 친형이란다. 어제 어린아이로부터 받아 목에 걸고 다니던 나무 십자가는 끈이 너무 허술해 지하 암벽교회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는데, 어린아이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공항으로 가는 차량마저 오지 않고...

아침 7시에 온다던 차량은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어제 교회를 안내했던 공식 안내원이 아침 7시까지 공항으로 가는 차량을 보내주겠다고 말해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공식 안내원이 어제 전통술인 테지를 너무 많이 마셔 약속을 깜빡 잊어버린 것 같았다.

배낭을 도로 옆에 내려놓고 앉아 어린 형제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어도 도무지 지나가는 차량이 없다. 1시간을 기다려도 지나가는 차량이 없자 어린 형제가 아래쪽에 있는 알리프 파라다이스 호텔로 가면 공항 가는 봉고버스가 있다며 앞장서서 안내한다. 10분 정도 다시 걸어 내려가니 큰 호텔이 나오고 조금 있으니 정말로 공항 가는 봉고버스가 호텔에서 나왔다.

봉고버스에 오르자 공항까지 100비르를 내라고 한다. 어제 30비르 주고 왔는데, 하루 사이에 3배 이상 덤터기를 씌우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며 "어제 30비르를 내고 왔는데 하루 사이에 버스요금이 3배 이상 뛰는 나라는 처음이다"고 태연스럽게 30비르만 내니 아무 소리 없이 그대로 받는다.

이제는 노련한 전문 배낭여행객 행세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홀로 여행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홀로 여행하는 초보자의 경우는 아무려면 '봉'으로 생각해서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서는 초보티를 내지 말고 오히려 전문 여행객처럼 행동하는 것이 좋다.

태그:#에티오피아, #랄리벨라, #투쿨, #구호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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