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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십자가형 지하 암벽교회인 베트 기요르기스. 바위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깎아 내려가며 만들었다.
ⓒ 김성호
▲ 다른 각도에서 찍은 십자가형 베트 기요르기스 교회
ⓒ 김성호
비공식 안내자가 떠난 뒤 혼자 걸어서 북쪽 교회 입구에 도착했으나 역시 안내자 없이 보는 것은 자칫 주마간산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랄리벨라 지하 암벽교회의 경우 교회 하나 하나가 고유의 모양을 가진 십자가를 가지고 있듯이 건립 배경이나 목적, 내부 장식, 전설 등이 다양하기 때문에 공식 안내자의 설명 없이는 교회에 담겨 있는 깊은 의미를 놓치기 십상이다. 여행책자에도 랄리벨라에 가면 반드시 공식 안내자를 채용하도록 추천하고 있는 데다 나 역시 11개 교회에 숨겨진 비밀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매표소에 가서 공식 안내자를 요청하니 30대 초반의 젊은이가 바로 달려온다. 내가 오후 1시께 요청했을 때는 왜 오지 않았느냐고 하자 "점심 먹고 한숨 자고 있었다"고 말한다. 공식 안내자는 "비공식 안내자는 교회 이름도 거꾸로 알려주는 등 엉터리"라며 목에 걸고 있는 안내자 자격증을 벗어 내 눈에 바짝 들이대며 보란 듯이 자랑한다.

안내자는 "랄리벨라 인구는 2만1천명인데 공식 안내자는 모두 70명"이라며 "1월에 열리는 크리스마스와 팀카트(Timkat) 축제 때에는 여행객들이 워낙 많이 몰려들어 70명의 안내자로도 모자랄 형편"이란다.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크리스마스를 서방세계의 12월 25일이 아닌 1월 7일, 예수의 세례식을 축하하는 팀카트 축제를 1월 19일에 대대적으로 연다.

100비르를 주고 다시 채용한 공식 안내자는 역시 달랐다. 교회에 대한 역사뿐 아니라 교회를 지키고 있는 성직자들과의 개인적 안면으로 고유의 십자가며 오래 된 성경, 교회내부 구석구석 등을 보여주기도 하고, 홀로 간 여행객을 위한 사진사 역할까지 충실히 해냈다. 교회안의 성직자에게는 여행객을 위해 희귀한 물건들을 보여주도록 권유하고, 여행객에게는 성직자에게 조금의 팁을 주라고 부추기는 등 성직자와 여행객사이에서 뛰어난 중개자이자 거간꾼 역할을 능수능란하게 해냈다.

지하 암벽교회 마다 고유의 십자가와 전설이 내려오고...

▲ 가장 규모가 큰 사각형 모양의 베트 메드한네 알렘 교회
ⓒ 김성호
북쪽 교회는 베트 메드한네 알렘 교회를 비롯해 베트 마리암, 베트 다나겔, 베트 메스켈, 베트 미카엘, 베트 골고타 등 6개이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한 베트 메드한네 알렘 교회이다. 모두 72개의 4각 기둥이 안팎으로 받치고 있는데, 그리스 사원 형태를 갖추고 있다. 교회의 훼손을 방지하고 보수공사를 위해 철판 지붕을 씌우고 철제 보호 기둥을 세워 놓았다. 교회 한편에는 3개의 빈 무덤이 있는데, 바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무덤이다. 물론 종교적 의미의 상징적인 무덤 일 뿐이다.

베트 메드한네 알렘 교회에서 동굴을 통해 건너가면 3개의 암벽 교회가 있는 큰 안뜰이 나오는데, 가운데 있는 것이 베트 마리암 교회이고 왼쪽에 베트 다나겔 교회, 오른쪽에 베트 메스켈 교회가 나란히 있다. 베트 마리암 교회 바로 앞뜰에는 움푹 팬 작은 연못이 있는 데, 아기를 못 낳은 여성이 이 연못에서 목욕을 하면 애를 낳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이 교회가 성모 마리아를 위해 지은 데서 연유하는 이야기이다.

암하릭어로 마리암(Maryam)은 성모 마리아(Mary)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베트 마리암은 결국 '성모 마리아의 집'이라는 뜻. 11개 교회 이름은 모두 기독교의 성인과 기독교 상징물의 이름을 본 뜬 것이다. 이처럼 랄리벨라 교회는 각각의 의미를 갖는 교회 이름에 걸맞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바로 왼쪽에 있는 교회는 베트 다나겔인데, 암하릭어의 다나겔은 수녀(Virgin)를 의미하기 때문에 역시 베트 다나겔은 '수녀의 집'이라는 뜻. 4세기에 터키에서 순교한 성처녀인 수녀들을 추모하여 만든 교회이다.

지하 암벽교회에서 성경을 낭독하는 성직자들

▲ 베트 메스켈 교회 내부에 있는 11개 모양의 십자가가 들어 있는 철제 십자가
ⓒ 김성호
▲ 지하 암벽교회에서 성경을 낭독하고 있는 성직자들
ⓒ 김성호
오른쪽의 바위벽을 깎아서 만든 교회는 베트 메스켈 인데, 메스켈은 십자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집'이라는 의미이다. 작은 동굴로 이뤄진 베트 메스켈은 다른 곳보다 훨씬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나이가 꽤 든 성직자들이 동굴 안에 살면서 찬송도 부르고, 성경도 낭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성직자는 랄리벨라 스타일의 금속제 십자가를 꺼내 보이면서 사진을 찍도록 허용했다.

성직자가 꺼낸 랄리벨라 금속제 십자가는 커다란 하나의 십자가 안에 단순한 모양의 십자가와 이중 십자가 모양, 꺾어진 십자가 모양 등 여러 형태의 작은 십자가가 무려 11개나 되는 것이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그리스 십자가로 알려진 열십자형 십자가(╋) 에서부터 창틀형 십자가(╬), 만 자형 십자가(卍)까지 여러 형태의 십자가가 섞여 있는 모양이다.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이밖에도 나무나 금속 끝에 작은 십자가를 꽃잎처럼 매달거나, 아니면 아예 꽃잎 네 개를 연결해 십자가 모양으로 만드는 등 다양한 형태의 전통 십자가들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십자가의 모양도 최초의 악숨 스타일에서 랄리벨라 스타일, 곤다르 스타일 등으로 조금씩 다른 특색을 띈 것을 에티오피아 여행하는 동안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베트 메스켈은 크기는 작지만 이처럼 십자가와 성경을 낭송하는 성직자들로 인해 더욱 경건한 분위기를 풍긴다.

북쪽 교회의 맨 뒤쪽에 있는 베트 골고타와 베트 미카엘 교회로 건너갔다. 마치 한 몸처럼 붙어 있는 같은 모양의 쌍둥이 교회인 이들 교회는 역시 베트 마리암 교회와 동굴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베트 미카엘 교회는 황제의 예배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베트 골고타 교회는 교회 방문 자체가 천국의 자리를 예약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더욱 신성시 되고 있다. 이 교회들에서도 성직자 2명이 성경을 낭독하고 있었다. 베트 골고타 교회 뒤쪽의 깊은 도랑 건너에 있는 건물은 역시 상징적으로 만든 아담의 무덤이라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십자가형 지하 암벽교회에 서다

▲ 베트 기요르기스 교회를 위에서 아래쪽으로 찍은 옆 모양의 사진
ⓒ 김성호
▲ 베트 기요르기스 교회의 내부 들어가는 문
ⓒ 김성호
남북 교회 무리를 모두 둘러 본 뒤 마지막으로 발길을 돌린 곳은 전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베트 기요르기스 교회이다. 그 독특하고 아름다운 그리스 십자가(╋) 모양의 건물 사진이 인터넷과 그림책, 여행책을 통해 퍼지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랄리벨라 교회의 대부분이 네모난 사각형 교회인데, 베트 기요르기스는 십자가형이어서 모양부터 독특하다. 북쪽 교회에서 내려와 현지 주민들이 사는 집을 통과해 도착하니 첫 모습부터 놀라움 그 자체이다.

교회 밑으로 내려가기도 전에 땅 위에서 바라보는 그리스 십자가 모양의 독특한 교회 지붕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예술품이다. 지붕은 십자가 3개를 작은 모양부터 중간 크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큰 모양의 십자가를 겹겹이 조각을 해 놓았는데 조화가 완벽하면서도 통일되어 있는 균형감이 여행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십자가형 지하 암벽교회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것이다.

지하로 내려가기 전에 독특한 건축양식에 취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땅위에서 사방을 골고루 돌아다니면서 땅 밑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교회 지붕과 건축방식을 살펴보았다. 이 교회는 바로 땅위에서 십자가 모양의 교회 지붕을 내려다보면서 찍은 사진이 환상적이다. 세계의 여행객들이 먼 길을 마다않고 랄리벨라를 찾는 것은 바로 이 베트 기요르기스 교회를 보기 위해서이다. 너비와 깊이가 각각 12m로 같은 이 교회는 독특한 건축양식과 거의 원형 그대로의 보존 상태로 말미암아 랄리벨라 지하 암벽 교회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땅위에서 보면 이 교회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도 한눈에 들어온다. 중국의 둔황 석굴이나 요르단의 페트라 사원이 절벽의 바위산을 옆으로 깎아 들어간 것인 데 반해, 랄리벨라 지하 암벽교회는 바위산 꼭대기에서부터 밑으로 수직으로 파고들어 갔다는 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둔황 석굴이나 페트라 사원은 멀리서도 건물이 보이지만, 랄리벨라 교회는 비행기를 타고 위에서 보지 않는 한 멀리서는 건물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베트 기요르기스 교회는 우선 바로 한 가운데 큰 바위부분은 남기고 사방에서 12m 깊이로 도랑을 파 내려간 것을 알 수 있다. 그다음 가운데 4각형의 큰 바위부분을 그리스 십자가 형태로 만들었으며, 마지막으로 십자가 형태의 본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부분을 깎아서 출입구를 만든 다음 그 안을 점차 파내어서 예배를 볼 수 있는 바위 안 내부공간을 만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교회는 들어가는 입구부터 독특하다. 십자가형 본 건물로부터 옆으로 조금 떨어진 땅위부터 바위를 깎아서 도랑 같은 길을 만들어 점점 깊이 들어가다 어느 지점에서는 지하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동굴을 통해서 조금 들어서면 바로 지하 교회 입구에 들어서게 된다.

죽은 성직자는 너무나 교회를 사모해 미라로 남아있는데...

▲ 교회를 너무 사모해 죽어서도 미라로 남은 어느 성직자의 주검
ⓒ 김성호
▲ 랄리벨라왕이 만들었다는 올리브나무 상자
ⓒ 김성호
입구에 들어서면 옆 벽에 작은 동굴이 있는데, 사람의 유해가 다리와 두개골이 분리 된 채 자연 그대로 미라가 되어 보존되어 있다. 미라는 다리와 몸통, 머리가 분리되어 각각 놓여져 있었다. 이 교회를 너무 사모해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는 어느 성직자의 것이라고 한다. 죽은 사람의 시체인 미라가 징그럽다거나 혐오스럽게 느껴지기 보다는 친밀하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성직자의 고귀한 사연 때문일 것이다. 특별한 종교를 믿지 않는, 단순한 여행객인 나에게도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교회인데 이곳에서 평생 수행하고 기도했을 성직자의 마음이야 오죽했으랴.

안뜰 한편에는 성수로 불리는 지하수가 나오는 네모난 샘도 있다. 교회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직사각형의 구멍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는 악숨 양식인 버섯모양의 바람과 햇볕 구멍이 만들어져 있다. 이 버섯 모양은 포경한 남자의 성기 모양을 본 뜬 것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에티오피아는 이스라엘 유대교의 영향으로 어릴 때 남자아이의 성기 포피를 잘라내는 할례의식을 지금까지도 해오고 있다.

신발을 벗고 바위 속의 교회 안으로 들어가니 성경을 낭송하던 성직자가 왼손에 주황색 천, 오른손에 초록색 천을 걸친 채 붉은 천막을 배경으로 독특한 문양의 십자가 2개를 보여준다. 붉은 천막으로 쳐진 곳은 성직자들만이 들어가는 지성소라고 설명하는데, 십계명이 새겨진 법궤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벽면에는 성 조지가 용과 싸우는 장면이 그려진 벽화들이 많이 있다. 백마를 탄 성 조지가 긴 창으로 용의 목을 찔러 죽이는 장면인데, 옆에서 여자신도들이 눈을 크게 뜨고 이를 지켜보는 장면도 그려져 있다. 이 교회의 이름인 암하릭어의 기요르기스(Giyorgis)가 기독교 성인중의 한명인 성 조지(St. George)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 교회는 바로 '성 조지의 집'이라는 뜻이다.

교회 내부 천장에도 십자가를 조각해 놓았는데,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것은 오래된 나무상자였다. 성직자는 랄리벨라 왕이 올리브 나무로 직접 만든 상자라고 설명한다. 랄리벨라 왕이 자신이 쓰던 연장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상자라는 것이다. 상자의 몸통은 오래된 가구답게 빛이 바랜 것이 역력한데 상자의 문은 최근에 새로 해놓은 듯 하얀 색깔이어서 도통 어울리지가 않는다. 청동색의 자물쇠로 문을 잠가 놓은 것으로 봐서 현재도 여러 도구나 옷가지 등을 넣은 상자로 이용하고 있는 듯 보였다.

십자가형 교회에서 나오는 향기가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 발길을 돌려 언덕위에서 멀리 찍은 베트 기요르기스 교회의 모습
ⓒ 김성호
베트 기요르기스를 둘러본 뒤 지상으로 올라오는데 에티오피아 여자들을 비롯해 6~7명의 외국 여행객들이 구경을 하기 위해 지하 통로로 내려온다. 지상에 올라와서도 베트 기요르기스 교회의 웅장함과 신비함에 반해 다시 한 번 십자가형의 지붕 둘레를 한 바퀴 둘러본 뒤에야 발길을 돌렸다.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어 여기저기 다시 찍기 시작했다. 어디 하나 놓치고 싶은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니 에티오피아 전체 사진의 거의 3분1이 이 교회 모습이었다.

발길은 교회를 떠나면서도 나의 고개는 자꾸 십자가형 지하 암벽교회를 뒤돌아보고 있었다. 성직자의 미라처럼 내 마음도 베트 기요르기스 교회에 두고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베트 기요르기스 교회에서는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 신비로운 향기가 건물 전체에서 솔솔 풍겨 올라오고 있었다.

태그:#에티오피아, #랄리벨라, #베트 기요르기스 교회, #베트 메드한네 알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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