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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살 없는 감옥생활 '보안 관찰'

국가보안법상, 형법, 군형법상 반란죄 등으로 실형을 언도받은 뒤 재범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된 자들에게 내려지는 보안관찰처분. 1987년 폐지된 사회안전법의 하위 지침으로 1989년 대체 제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출소 후에도 자신의 사생활에 관한 일거수일투족을 경찰에 신고해야만하며, 검찰과 사법경찰에 의해 여러 사찰과 감시를 받아야 하는 보안관찰대상자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보안관찰대상자들은 신체의 자유를 비롯해 거주이전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인권 침해는 심각하나 잘 알려지지 않은 보안관찰. 모두 7차례에 걸쳐 보안관찰대상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들과 보안관찰의 문제점, 그 대안에 관해서 짚어본다.

▲ "나도 나지만 가족에게 내가 요즘 뭘 하고 있는지 어디에 갔는지 등을 물어오지... 마치 범죄자를 심문하듯이. 애들 심정은 어떻겠어..."
ⓒ 장익성
또 다시 12월이 다가왔다. 이 지긋지긋한 소환장 발송이 언제나 끝날까?

종이 쪼가리 한 장, 그냥 잊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손톱의 가시마냥 신경쓰이는 것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마흔을 두 번이나 거친 팔순 노인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강순정 씨에게 보안관찰처분은 존재 자체를 무시해 버리고 싶은 법이지만 상대가 노구라도 그냥 놔두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수감생활

"형도 다 치르고 사면 복권까지 받았지만 소용없어. 풀려났던 1998년부터 지금까지 2년마다 요구되는 출두 명령에 감시가 여간 성가시지 않아."

1995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하 범민련) 사건으로, 96년 6월 간첩 혐의로 4년 6월형을 받았던 강순정(77)씨는 98년 8.15 특사로 불려나고 2003년 사면복권 조치가 취해졌지만 여전히 감옥에 있는 심정이다.

"출소 때 구치소에서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는 소릴 듣기는 했지만 귀담아 듣진 않았지. 형기도 어쨌든 마쳤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것도 대통령의 특별 명령에 의해 사면되는 마당에 신고는 무슨 신고야'라는 생각도 있었지. 게다가 국가보안법과 연결된 보안관찰처분 자체를 우린 인정할 수 없으니까 더욱 그랬고.

하지만 출소하자마자 내가 살던 관할 경찰서에서 신고하라며 하루에도 수십번 씩 전화를 해대니 이루 말할 수 없이 성가셔 내 맘처럼 무시하긴 힘들었지."

감옥하고 비교할 순 없지만 여전히 공권력의 감시 속에 하루를 살아가는 강 할아버지에게 사회는 또 다른 수감생활의 한 장소일 뿐이다.

"구치소에선 신체를 구속당했지만 지금은 정신이 구속된 수감생활을 하고 있어. 내가 뭘 했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다 알아야 한다는 거야. 집회 참석 여부는 물론이고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다 보고하길 원했지. 물론 내가 말 안 해줘도 이미 누굴 만났는지는 다 알고 있었고….

한번은 친구 만나러 다방에 갔는데 이 놈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가 와서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물어 보더라고. 그래서 호통을 치고 끊어버렸지만 누군가 항상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이 여간 찜찜하지 않아."

강 할아버지의 경우 1998년 출소 이후 보안관찰처분에 의한 매 2년마다 요구되는 검찰 출두 요구를 매번 거부하고 있다. 연세가 많은 노인이어서 그런지 검찰도 법적 근거를 가지고 구속하고 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지도 않고 있다.

"계속 출석 거부를 하고 나중에는 전화도 안 받으니까. 오라고 한 적도 없고 집에 있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집에 쳐들어와서는 타자기를 들이밀고 진술하라는 거야. 경찰에 출두하지 않아서 여기에서라도 받아야 한다나? 그 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많이 싸웠지 욕도 하고 나가라고 고함도 치고, 내 성격이 좀 드세야지. 그래서 막무가내로 못하겠다 싸웠더니 어쩔 수 없이 경찰도 돌아갔지만 여전히 반복되는 상황이 대단히 불쾌하고 짜증스러워.

나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수시 때때로 내가 요즘 뭘 하고 있는지 어디에 갔는지 등을 물어오지… 마치 범죄자를 심문하듯. 우리 애들 심정은 어떻겠어…."

물론 강 할아버지는 구두 서면으로 '출두 거부에 대한 입장'을 수차례 보내며 항의했고. 담당 검사에게 직접 항의도 해봤지만, "억울하면 민사소송을 걸어 보라"는 말만 반복해서 들을 뿐이었다고 한다.

"나를, 우리를, 간첩으로 몰아 사회와 격리시킬 때는 자기 마음대로 법을 만들고 해석하더니, 부당하다고 하니 다른 곳에서 법으로 풀어 보라는 거야. 말이나 돼?"

형평성 없는 보안관찰대상

▲ 강순정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온 사면 복권 통지서를 보여주며 "사면 복권이 무슨 소용이냐 어짜피 보안감찰대상이 되어 감시할 꺼면서"라고 하소연한다.
ⓒ 장익성
더욱 강 할아버지의 노기를 끌어올리게 하는 것은 법에 형평성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왜 우리만이야?"

도둑질에 강도, 심지어 남을 해치는 심각한 범죄의 경우도 형기를 마치고 나온 이들에 대해 다시 죄를 묻지 않는 것이 법인데.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생각이 같기를 강요당하며 감시 속에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 통일해보자고 한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인가? 경제로 수천 수만 노동자의 희망을 꺾고, 삶의 밑바닥으로 떨어뜨린 그룹 회장이나, 군사 쿠데타를 통해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도 있는데, 그들이 감시를 받았다는 소릴 난 들어 본 적이 없거든."

이 밖에 보안관찰대상에 속하는 사람끼리의 만남을 허락받아야 하는 것도 강 할아버지를 어이없게 만드는 것 중 하나다.

"결국 죽을 때까지 혼자 있으라는 거지."

동법안 제19조 2항에는 보안관찰 해당 범죄를 범한 자와의 회합 또는 통신을 금하고 있다. 50여 년을 통일운동에 몸담아 왔던 강 할아버지 주변에는 같은 성향과 생각을 지닌 이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이들 대부분 강 할아버지와 같은 보안관찰법 대상이고, 주로 만나는 이들도 보안관찰처분 대상이다.

대상자끼리 만나는 것만으로 동 법안에 따르면 구속의 사유가 되기 때문에 한마디로 강 할아버지의 경우 사람과의 접촉이 사실상 범죄에 속한다.

"한번은 범민련 관계자로 장기수들이 모여있는 만남의 집을 방문해 함께 대화하는 행사를 가졌지. 아 그랬더니 이 놈들이 우리보고 불법 모의를 하고 있다는 거야 어찌나 부화가 치미는지."

"그냥 불편함으로 감수하고 살수도 있지, 하지만..."

통일이 되고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보안관찰자 신분이기에 단기 방문조차 허락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고향산천을 방문조차 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은 다른 어떤 것보다 그에게 고통이다.

"나도 북에 가보고 싶지. 그래서 이산가족 만남 신청을 했고. 그랬더니 통일부에선 해외에서 만나라고 하고, 외무부에선 보안관찰 대상이라서 해외는 안 된다고, 뭐 결국 만나지 말라는 거지….

그래도 죽기 전에 꼭 방문해 보고 싶은데…. 준법 서약서에 서명을 하면 혹 만날 수 도 있겠지. 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아.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이건 우리 쪽 사람 모두가 같은 생각일 거야."

국가보안법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데, 준법 서약서에 서명한다는 것은 악법 자체를 인정하고 민족을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표시이기 때문에 서명하거나 관찰 대상의 의무를 지킬 수 없다는 강 할아버지는 "내 자유와 권리, 하늘로부터 내려온 인권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 아마 12월이면 또 다시 소환장이 나오고 관할서와 실랑이를 벌이겠지"라며 거듭 서명과 소환 거부의 뜻을 밝혔다.

신체는 98년 풀려났지만 정신은 보안관찰을 통해 여전히 수감생활 중이라는 강 할아버지는 "점점 더 힘들어, 나이도 나이지만 경제가 나빠진다고 국보법을 다시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게 걱정"이라며 혹 이대로 영혼의 무기징역 속에 자신의 삶이 끝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인터넷신문 에큐메니안에도 실렸습니다. '에큐메니안'은 보안관찰에 관한 특별기획을 연재하면서, 보안관찰처분의 피해자와 기타 유사한 인권침해 경험을 가지신 분들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은 물론, 교회에서 이런 피해자들에 대해 보호나 도움을 주면서 느끼신 사례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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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메여 있다는 것은 사람이든, 조직이든 줄을 잡고 있는 이의 방향과 눈치를 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조직을 떠나 비교적 자유로워지니 이제 메이지 않은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진솔한 이야기를 다른 이와 이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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