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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 있는 도리사
ⓒ 손현희
우리가 살고 있는 둘레에 가볼 만한 곳이 생각보다 꽤 있다. 그동안 몸도 마음도 바쁘게 살다 보니 참 좋은 곳이 많은데도 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 이젠 가까운 곳부터 하나하나 짚어가며 찾아가보고 싶다. 그 처음으로 집과 그리 멀지 않은 선산 해평면 송곡리에 있는 '도리사'에 가게 되었다.

이웃 사람들에게 '도리사'가 참 좋은 곳이라는 얘기를 가끔 들었다. 사람들마다 절도 꽤 크고, 무엇보다 절까지 올라가는 길이 참 좋다고 했다. 더구나 '삼림욕'을 하기에 아주 좋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우리가 가려고 하는 '도리사'를 찾아 대충 알아보고 나섰다.

우리가 손수 끄는 차가 없기도 하지만 어딘가 갈 때엔 걷거나 버스를 타는 재미도 아주 남다르다. 시내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가야할 길이지만 길을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고 오랜만에 하는 나들이라 퍽 설렜다. 버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참 푸근했다. 시골냄새 물씬 나는 들녘을 지나 야트막한 산 밑에 자리 잡은 낮은 지붕과 어릴 때 보았던 흙집이 아직도 여러 군데 남아있다.

▲ 해평 버스 정류장
ⓒ 손현희
한 시간쯤 달려 해평 마을에 닿았다. 버스에서 내려 둘레를 돌아보니, 시골 버스 정류장 풍경 그대로였다. 정류장이라고는 하지만 그리 많지 않은 버스, 대기실에는 까무잡잡한 아낙네와 할머니 몇 사람이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차에서 내리니 배가 고팠다. 어디를 가더라도 먼저 배를 채워야 할 것 같아 정류장에서 빠져나와 둘러보니 저 앞에 시장골목이 보인다. 그 골목으로 들어서서 보니 여기 또한 시골냄새가 가득했다. 씨앗가게, 신발가게, 유행이 조금 지난 듯 보이는 옷가지가 몇 벌 걸려있는 옷가게, 또 빨갛고 큰 함지박(한 때 이걸 '고무 다라이'라고 했다.)이 종류대로 쌓여 있고 띄엄띄엄 밥집들이 보인다. 아직 낮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다니는 사람이 그다지 없다.

▲ 해평 시장 골목 풍경_ 오른쪽으로 '할매 보리밥'집이 있다.
ⓒ 손현희
얼마쯤 더 걸어가니 저만치 앞서 '할매보리밥'이라고 써놓은 간판이 보인다. 허름하게 생겼지만 우리가 누군가? 집 가까이에 있는 밥집을 찾아도 꼭 허름하게 생긴 집만 찾아다니던 우리가 아닌가?(사실, 이런 곳엔 겉보기와는 다르게 맛은 아주 좋음) 더구나 가게 이름에 '할매'가 들어가니 틀림없이 어릴 때 할머니가 해주시던 밥맛이 날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까무잡잡한 할머니와 나이 든 아주머니가 어서 오라고 반긴다. 이곳 사람들은 겉보기엔 무뚝뚝하지만 그 속에 푸근하고 살가운 정이 넘쳐난다.

▲ 푸짐하고 맛있는 할매 보리밥
ⓒ 손현희
보리밥 두 그릇을 시키고 조금 있자니, 구수한 된장찌개가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고, 시원한 물김치와 큰 그릇에 금방 지은 듯 보이는 보리밥이 수북하고, 넓은 대접에 갖가지 나물이 담겨 나왔다. 우리 부부는 그 밥그릇 크기를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또 된장찌개는 얼마나 구수하던지….

맛있게 쓱쓱 비벼서 한 그릇 가득 먹었는데 그 맛 또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밥을 먹으면서 할머니에게 '도리사'가는 길을 물었더니, 걸어가기는 멀고 버스도 하루에 두 번밖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가면 1만 원이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택시로 가기로 하고 밥값을 치르는데 또 한 번 놀랐다. 그렇게 많이 주고 맛있게 먹었는데, 보리밥 한 그릇에 겨우 '3천원'이라니 말이다.

▲ 도리사를 세운 아도화상 동상
ⓒ 손현희
다시 해평 정류장으로 가서 택시를 타고 도리사로 갔다. 멀지 않은 곳인데, 만 원이나 받으니 조금 비싸다는 생각은 했지만 오르막길과 구불구불 험한 길이 그만큼 값을 하는 것 같았다. 절로 올라가는 내내 그곳 토박이라는 택시 운전사에게 그 마을 이야기도 조금 들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매우 친절했다.

도리사로 가는 길가엔 오래 앞서 벚나무가 있었는데 십 몇 해 앞서 느티나무로 바꿔 심었다는 얘기 하고, 절로 올라가는 길옆 산에는 소나무가 많은데 요즘 '솔잎혹파리' 때문에 병이 들어 매우 안타깝다는 이야기와 옛날부터 도리사에 '사리'가 많아 그걸 보러 오는 손님들이 많았고 한때 중앙정보부장으로 있던 이후락씨가 '불교 조계종 전국신도회장'을 맡기도 했는데, 그 힘을 빌려 절 아래까지 아스팔트로 길을 닦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절마다 있는 일주문이 그 길 들머리에 세워져 있었고 그 뒤로도 한참을 지나서야 도리사에 닿을 수 있었다.

▲ 도리사 적멸보궁_ 법당 안에 불공 드리는 사람도 있었다.
ⓒ 손현희
절 구경이야 어디든 다 비슷하겠지만 매우 크고 넓었으며 또 여러 전각이 아주 보기 좋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잠깐 이 '도리사'를 소개하자면, 옛날 신라 19대 눌지왕 때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아직 신라에 불교가 들어오지 못할 때 '모례'라고 하는 사람의 집에 따로 굴을 지어 놓고 그곳에 살면서 '포교활동'을 하며 세운 절이라고 한다. 또 때 이른 겨울에 이곳에 복숭아꽃과 배꽃이 많이 피어있어 그걸 보고 절 이름을 '도리사(桃李寺)라고 지었다고 한다. 또 이곳에는 극락전·태조선원·삼성각·적멸보궁·설선당이 도리사 3층석탑·아도화상의 부도·아도화상 동상과 함께 어우러져 멋스런 모습을 담고 있었다.

▲ 왼쪽부터 도리사 사리탑, 아도화상 부도
ⓒ 손현희

▲ 법당에 힘겹게 올라갔다가 다시 법당에서 쓰는 그릇을 들고 나오신 할머니 보살님
ⓒ 손현희

▲ 스님 두 분이 절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절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손현희
이곳에서 서너 시간쯤 머물면서 맘껏 사진도 찍고, 스님에게 절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절에 올라올 때 본 길이 하도 좋아서 걸어서 내려올까 했지만 아쉽게도 남편의 아픈 다리가 아직 낫지 않아서 절에 올라오며 타고 온 택시를 한 번 더 불렀다. 다음에 꼭 한 번 다시 와서 저 아래부터 걸어 오르면서 이번에 찍지 못한 '길'사진도 제대로 찍어보자고 아쉬움을 달랬다.

가까운 둘레에 이렇게 좋은 볼거리가 있고,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산과 마을이 있다는 게 참 고마웠다. 다음에 반드시 다시 오리라!

▲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리사
ⓒ 손현희

덧붙이는 글 | '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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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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