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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도 일정한 법칙이 있다" "싸움에 반칙이 어딨냐" "싸움은 인생 그 자체야!"

▲ 강준씨가 쓴 책 <싸움에서 무조건 이기는 방법>. 영화 <싸움의 기술>에도 소개됐다.
ⓒ 학민사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싸움 고수' 오판수(백윤식 분)가 쏟아낸 말들이다.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 오판수는 학교 불량배들에게 얻어 터져 얼굴에 피멍 가실 날 없는 '부실 고딩' 송병태(재희 분)에게 싸움의 정수를 가르치는 인물이다.

영화를 본 일부 관객은 오판수를 보고 약간 머리가 돈 사람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싸움에 법칙이 있다니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 독자들의 눈과 귀를 의심할 만한 사실 하나가 있다. 독특한 사상의 소유자 오판수의 '실존 인물', 이전부터 '싸움철학'에 대해 연구하고 훈련하며 영화 <싸움의 기술>에 모티브를 제공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태권도? 유도? 실전에선 결국 막주먹질

눈썰미 있는 관객들은 봤겠지만 영화에서 송병태가 싸움 교과서인 양 매일같이 독파하는 책이 있다. <싸움에서 무조건 이기는 방법>이란 책이다. 공격적이고 거짓 없는 제목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의외로 거창한 공격기술이나 방어기술보다는 '눈을 찌르면 코끼리도 쓰러진다', '일격 필살 박치기', '주머니 속 동전도 몸을 지킨다' 등 유쾌하고 실용적인 글들이 담겨 있다.

▲ 공권유술의 창시자 강준씨.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송병태가 종일 탐독하는 책이 바로 강씨가 지은 책이다
ⓒ 오마이뉴스 김호중
이 책 저자는 바로 공권유술의 창시자이자 현재 대한공권유술협회 회장인 강준(38)씨. 그는 어렸을 적부터 태권도, 킥복싱, 검도 등 각종 무술을 터득해가면서도 '실전싸움' 연구에 심취했다고 한다.

1월 8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는 공권유술 체육관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말하는 싸움의 기술은 무엇인가? 또 싸움의 철학은 무엇인가? 그는 정말 영화 속 오판수일까? 태권도 좀 배웠다고 어깨 힘 잔뜩 주고 있다가 두 눈 시퍼렇게 두들겨 맞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

그는 훈련이 바빠 아직 영화 <싸움의 기술>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이 엮은 책이 클로즈업되어 소개되고 주인공이 불철주야 그 책에 묻혀 있지만 그는 도장에서 그의 방식대로 '싸움의 기술'을 전파하느라 영화 볼 시간조차 없었다.

"시나리오를 보내 달라고 해서 읽었는데 재밌었어. 그런데 두 사람의 훈련 과정이 너무 없더라고. 가령 동전을 던지는 방법에 대한 순간적 기술 훈련만 설명했어도 더 재밌었을 텐데. 아쉬워."

그렇다면 그가 '실용액션'을 연마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20여 년 전 아버지 손에 이끌려 태권도와 인연을 맺은 이후 배우지 않은 무술이 거의 없어. 그런데 평범한 학생 하나가 의자에 올라 발길질하는데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었지. 당황했어. 무도를 백날 닦으면 뭐하냐는 생각이 들었어. 실전싸움은 공간·환경·신체 조건에 따라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라는 걸 처음 깨달은 거지."

▲ 강준씨가 대련을 하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김호중
▲ 강준씨가 꺽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 공권유술협회
강씨가 창안한 '공권유술'이란 '싸움을 위한 무술'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형식과 격식을 타파하고 가장 효과적인 공격과 방어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 함축되어 있는 무술"이다. 막싸움이라는 것이 서서 시작해서 누워서 끝나는 만큼 극진가라테, 태권도, 유도, 유술(꺾기, 조르기 중심의 무술) 등 각종 무술의 장점만을 모아 싸움에 유리하도록 만든 것. '공권'은 '빈 주먹'이란 뜻으로 타격을 의미하고 유술은 상대를 메치고 꺾는 것을 말한다.

그는 2년이란 시간을 들여 '공권유술'을 완성했으며 <싸움의 법칙> <실전대련 테크닉> <공권유술 바이블> 등 실전싸움에 관한 책도 냈다.

"나보고 '너는 무술인이 아니다, 싸움꾼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렇지만 나는 중요한 것은 결국 실전싸움이라고 생각해. 태권도 5단이라고 실전에서 돌려차기로 이기는 경우 봤어? 유도 배운다고 실전에서 업어치기가 가능할까? 실전에선 다 막주먹질이야, 결국."

싸움에 반칙이 어딨냐고? 왜 없어?

<싸움에서 무조건 이기는 방법> 6장의 제목은 '칼 든 자와는 절대 싸우지 마라'이다. "칼 들기 전에 미리 공격해야 한다"는 것. 여기서 그의 '싸움철학'을 엿볼 수 있다.

"도장에서는 칼 막는 방법을 가르치는데 나는 칼 든 사람 보면 도망가라 그래. 무술을 20년 했어도 휘두르는 칼 잡아 꺾는 건 불가능해. 상책은 칼을 꺼내기 전에 제압하는 것이고 하책은 찌를 때 제압하는 것이야. 그런데 일반 무술도장에서는 하책만 가르쳐. 죽으라는 얘기지."

그가 설파하는 싸움의 기술은 적극적 호신법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대부분 수동적 호신법이야. 훨씬 적극적이어야지. 상대가 가격할 때 막는 것은 우리 같은 고수도 잘 못해. 권투선수가 잽 날리는 거를 잡아 채 꺾는 거? 불가능하지. 게다가 실전에선 눈감고 막주먹질인데 더더욱 안 되지."

강씨의 적극적 호신론은 한 발 더 나간다.

"싸움에선 넘어진 놈 때려도 돼. 의자로 쳐도 되고. 둘이서 덤벼도 되고. 이빨로 깨물어도 돼. 싸움에 반칙이 왜 없어! 이게 바로 '적극적 호신술'인 거야!"

언뜻 부당하고 야비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그의 싸움철학. 그런데 온갖 비겁한 방법을 다 동원하고도 싸움에서 만날 진다면? 그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얼굴에 칼자국 있다고 다 싸움 잘 해?"

강씨가 생각하는 '싸움에서 패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이다. 필승을 위해서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하고 싸운다고 생각해 봐. 이길 자신 있지? 그럼 중학교 2학년은? 역시 이길 자신 있을 거야.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이다 생각하면… 쪼금 불안해… 그치? 대학교 2학년은? 질 것 같지? 왜 그럴까? 그건 상대를 과대평가하기 때문이야. 또 얼굴 험악하면 쫄게 되는데. 얼굴에 칼자국 있다고 무조건 싸움 잘 해? 가장 중요한 건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바로 그거야."

싸움은 무술과 달라 실전법칙이 있다는 게 강씨의 주장이다. 바로 이런 것이다.

"상대가 오른쪽 주먹으로 가격한다고 생각해봐. 결국 내 왼쪽 턱밖에 치지 못해. 그런데 상대의 턱을 적중시킨다는 게 매우 힘들거든. 권투선수도 힘들어. 상대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온다. 그래도 두려울 거 없어. 상대는 머리를 치지 않거든. 맞으면 즉사니까. 대부분 어깨나 옆구리, 다리를 치게 돼 있지. 대비를 미리 할 수 있는 거야."

▲ 강준씨가 쓴 <공권유술바이블-타격편>에 나오는 기술동작
ⓒ 오성출판사
▲ <공권유술바이블>에 나오는 막기와 받아치기 동작
ⓒ 공권유술협회
'싸움'에 대해 수년 간 공부하고 책까지 낸 사람이어서일까.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싸움의 법칙을 전수받으면 '17:1'로 싸워도 이길 수 있을까? 그의 대답은 우선 '1:1'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여러 명이 하나 둘 셋 쉬고 동시에 주먹을 뻗지는 않아. 먼저 덤비는 사람이 있는 법이지. 일전에 동네 건달 9명과 싸운 적이 있어. 한 놈을 잽싸게 쫙 뻗게 하고 나머지 8명이 다 덤비겠지 하고 각오하고 있는데 다들 슬금슬금 도망가는 거야. 한 명을 순식간에 쓰러뜨리면 다른 사람들은 피하게 돼 있어. 그런데 5분 내로 현장을 떠야 하지. 왜냐구. 수치심을 느끼고 다시 오는데 그땐 '연장'을 들고 오거든. 아무리 싸움 잘하는 사람이라도 연장 들고 여러 명이 덮치면 이길 수가 없어."

"인생이 곧 싸움... 싸워야 할 땐 당당히 싸워라"

흔히 싸움은 나쁜 것이라고 배운다. 싸움을 남용하면 폭력배가 되며 주먹보다는 말과 대화로 싸우라고 배운다. 하지만 싸움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 걸까? 애인과 함께 데이트할 때 불량배들이 시비를 걸면? 단지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이 자신을 괴롭히면?

싸움의 기술을 설파하며 그가 펼치는 '왕따론' 한 대목.

"가급적이면 싸움을 피해야 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선 당당하게 싸워야 한다. 우리 도장에도 왕따들이 많이 왔는데 이 친구들 공통점이 눈알이 불안한 거야. 반항을 못해. 가만히 있어, 그냥. 왕따는 자기가 만드는 거다. 나쁜 아이들이 손댈 때 딱 한 번만 덤비면 돼. '너 죽는다, 한번 해 볼래'하면 왕따가 없어져. 싸울 땐 싸워야 해."

강씨는 "싸움은 인생의 한 과정이기 때문에 반드시 '싸움의 법칙'을 배우라"고 강조한다. 진정한 강자들은 오히려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싸움 배우기를 권하는' 그의 소망은 "공권유술도장이 태권도 도장처럼 동네마다 생기는 것"이다. "꼭 싸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축구, 농구처럼 하나의 스포츠로서 즐기고 사람들이 이 운동을 통해서 사회생활을 더 활기차고 즐겁게 하는 데 기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싸움 없는 세상'이었다. 정의가 살아 있어 싸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 모든 사람이 '싸움의 법칙'을 배운다면 누가 치고받고 하겠는가. 싸움의 '진짜' 기술을 몸에 익히고 있다면 말이다.

싸움 고수의 '예쁜 손' 이야기

"주먹이 그야말로 압권이네요!"

8일 오전 서울 신당동 공권유술 체육관에서 강준씨와 처음 만나 악수를 나눌 때였다. '싸움의 고수'임을 알고 만난지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묵직한 각목을 쥐는 듯한 그 느낌은 며칠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았다.

"주먹을 좀 자세히 만져봐도 될까요?"

돌아온 것은 "안됩니다!"는 단호한 대답이었다. 알고 보니 그의 주먹엔 남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던 슬픈 사연이 담겨 있었다.

강씨는 2년 전 결혼해 현재 돌이 갓 지난 아들을 가진 '초보아빠'. 나이(38세)를 생각하면 무척이나 늦은 것인데 외로운 노총각 시절 그를 괴롭혔던 것은 다름 아닌 손이었다.

"예전에는 정권단련을 많이 해서 굳은 살이 대단했어. 그런데 장가를 못 가겠더라고. 맞선을 보면 여자들이 손을 보고 기겁을 해. 어른들은 내 손 보고 '저 손으로 딸 때리면 죽겠구나' 생각하고.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지."

그래서 고안한 것이 글쎄 '무작정 벗겨내기'였단다. 그는 2개월 동안 잠자기 전에 따뜻한 물에 손을 담가 불린 다음 철수세미로 빡빡 문질러 허물을 벗긴 후 로션을 바르는 일을 반복했다. 그래서 마치 물한방울 묻히지 않은 여자 손마냥 예쁜 손을 만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자신의 주먹이 창피할 때가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실전에선 남부러울 게 없는, 돌까지도 격파할 수 있는 손이지만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주먹이었던 게다.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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