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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식 태극권 중 1식인 권굉세 동작을 하고 있는 수련생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이얍! 이얍!" 우렁찬 기합소리도, "퍽! 퍽!" 펀치백 때리는 소리도 없다. 헐렁한 중국식 수련복을 근사하게 차려 입은 수련생 20여명이 여사범의 구령에 맞춰 하나하나 동작을 이어갈 뿐 잔기침 하나 없다.

태극권 초급반 3주째 강좌가 열린 지난 1월 7일 토요일 오전. 서울 주한중국문화원 강당은 이처럼 적막이 감돌았다. 무술을 연마한다기보다는 요가나 기체조를 하는 곳 같다.

태권도 파란 띠, '무림고수'를 꿈꾸다

처음 태극권을 접한 건 2년 전 여름 중국 선양 여행 때였다. 남녀노소 수백 명이 잔잔한 음악에 맞춰 느릿느릿 물 흐르듯 태극권 동작을 따라 하는 모습들이 도심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중국에서 '국민스포츠'라는 태극권의 위세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운동을 즐긴다는 게 부러웠을 뿐, 파괴력 있는 무술이라기보다 우리 국민체조 같아 보였다.

태극권 역시 장권, 남권과 함께 당당히 중국 무술(우슈)의 하나라는 걸 깨달은 건 영화 <의천도룡기>에서 주인공 리렌제(이연걸)가 태극권으로 무림고수를 제압하는 장면을 본 뒤였다. 강력한 주먹과 발차기를 앞세운 상대의 공격을 물 흐르듯 유연한 동작으로 피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급소를 찾아 상대를 제압하는 태극권 고수의 모습은 그 어떤 '싸움의 기술'보다 멋있어 보였다.

나도 한번 '무림고수'를 꿈꿔 봐? 드디어 새해 마음 속에만 품어오던 '태극권'에 도전장을 냈다. 무술이래야 초등학생 시절 동네 태권도장에 몇 개월 다닌 게 고작. 검은띠는커녕 간신히 흰띠 면한 파란띠까지 따긴 했지만 그것도 20년이 넘었으니 기본 품세는커녕 앞발차기, 옆차기조차 가물가물했다. 한마디로 무술의 '무'자도 모르는 '백면서생'인 셈.

"장풍 쏘시려고요? 팔에 힘 좀 빼세요!"

▲ 김명미 사범(왼쪽)이 수련생들의 자세를 고쳐주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그래도 어릴 때 도장 출입 몇 개월 했다고 무술하면 '힘'과 '박력', '기합'이라는 관념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모든 무술이 그렇듯 힘과 기술로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 아니겠는가.

좀 느릿느릿하고 박력은 없어 보이지만 태극권도 어엿한 무술인데, 태권도와 다를 게 있을까?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태극권 첫 시간부터 사범은 온몸에서 힘을 빼라고 주문했다. 턱부터 시작해서 어깨, 허리, 무릎, 손, 발 할 것 없이 힘을 주지 말고 전체적으로 원을 그리라는 것이었다. 결국 첫 수업은 힘주기보다 힘든 게 힘 빼기란 사실을 터득하는 시간이었다.

이것이 바로 무극공. 모든 태극권을 시작하고 끝맺는 기본자세로서 본격적인 동작에 앞서 몸을 풀어주고 정신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무극공은 곧 몸 안에 있는 기를 끌어내는 '기세' 동작으로 이어진다. 왼발을 뒤꿈치부터 들어 천천히 어깨넓이로 벌린다. 이어 양손을 펴서 팔을 나란히 들어 어깨 높이까지 올린 뒤 다시 아랫배까지 내리면서 동시에 무릎도 서서히 굽혀준다. 꼭 말을 타는 자세라고 해서 '마보'라고 부른다.

"팔 내리기 전에 무릎부터 다 굽히면 안돼요. 어깨에 힘도 빼시고요!"

초보자는 어쩔 수 없었다. 팔 따로 무릎 따로인 사람,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동작이 매끄럽지 않은 사람 등등. 김명미(36) 사범은 일일이 수련생들의 그런 자세를 고쳐줬다. 무술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엄한 사범보다는 자상한 선생님 같은 모습이다.

▲ 2식 누슬요보 동작. 마치 장풍을 쏘는 듯한 모양새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 태극권 3식 야마분종 동작. 말의 갈기를 쓰다듬듯 부드러운 동작이 특징이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두 번째 시간에 8식 태극권 중 '누슬요보'와 '야마분종'을 배울 때까지도 몸에서 힘빼기가 쉽지 않았다. '누슬요보'는 마치 장풍을 쏘듯 한 손바닥은 바닥을 누른 채 나머지 한 손바닥은 정면을 향해 천천히 뻗는 동작. 한 수련생이 장난 삼아 장풍을 쏘듯 손바닥을 힘껏 내뻗자, 김 사범이 가만 있지 않는다. "왜요? 장풍 쏘시려고요?"

김명미 사범은 "태극권도 동작을 빨리하면 공격과 방어가 가능해요. 실제 대회에서는 '추수'라는 겨루기 종목도 있고요"라고 말한다. 허허실실 느리다고 얕보다간 큰 코 다치는 무술인 셈이다. 이연걸의 태극권 겨루기가 단순히 영화 속 얘기만은 아닌 것이다.

6살 꼬마과 60대 어른이 함께 배워요

하지만 요즘 '싸움의 기술'을 터득하려고 태극권을 배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 건강이나 정신 수양, 스트레스 해소 목적으로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수련생도 6살짜리 꼬마부터 60대 중장년층까지 다양했다.

▲ 6살짜리 민석이와 함께 태극권을 수련하고 있는 김학순씨 가족
ⓒ 오마이뉴스 김시연
가장 눈길을 끄는 건 6살짜리 아들 민석이와 함께 태극권을 수련하고 있는 김학순·김상미씨 가족. 고등학교 때부터 검도로 몸을 단련해 왔다는 김학순(50)씨는 "태극권이 쉬워 보여도 공중에 떠 있는 동작이 많아 온 몸에 운동이 된다. 건강도 지키고 정신 수련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50~60대 중장년층 못지않게 20~30대 젊은이들도 많았다. 웰빙 열풍을 타고 중국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건강을 위해 태극권을 배우는 한국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중국 현지에서 태극권이 주로 노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것과는 또다른 현상이다.

우슈 공인 4단인 김명미 사범 역시 대학원에 다니면서 처음 태극권을 접해 올해 5년째 수련하고 있다. 태극권을 제대로 익히려면 보통 10년 정도 수련이 필요하며, 대한우슈협회 승단 심사를 거쳐 9단까지 오를 수 있다고 한다.

흔히 우리가 '쿵푸'라고 부르는 우슈는 '무술(武術)'의 중국어 발음.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이자 2008년 베이징올림픽 시범종목이기도 하다. 태극권 역시 중국의 북방무술인 장권, 남방무술인 남권과 함께 우슈의 당당한 한 종목.

"태극권의 가장 큰 장점은 오래해도 지치지 않는다는 거예요. 계속 같은 힘을 주게 돼 몸에 무리가 없는 거죠. 그래서 어린이부터 노인분들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고 관절통 등 몸이 아픈 분들도 소개받고 많이 찾아오세요."

김 사범이 수련하는 태극무술원에도 꾸준히 수련하는 이들이 40~50명 정도라고.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 우슈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도장이나 동호회를 중심으로 태극권을 배우려는 일반인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올 겨울 태극권 배워 볼까?

주한중국문화원에선 초급반과 중급반으로 나눠 태극권 수련생을 받고 있다. 매 주말마다 한 차례씩 5주 동안 진행하는 초급반의 경우 25명 정원이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초급반에선 태극권의 기본 품세에 해당하는 8식 태극권을, 중급반에선 16식 태극권을 가르친다.

중국문화원 이외에도 서울에만 10여 곳의 우슈 도장에서 태극권을 가르치고 있다.

문의: 주한중국문화원 www.cccseoul.org 02-733-8307~9

제7기 태극권 주말반(초급)

기간: 2006년 2월 18일~3월 18일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11시 30분(총 5회)
신청기간: 1월 7일~1월 27일

제3기 태극권 평일반(중급)

기간: 2006년 2월 15일~3월 16일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오전 10시-11시 30분(총 10회)
신청기간: 1월 7일~1월 27일

/ 김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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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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