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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 대전 국립현충원을 찾아 12·12 쿠데타 동지들의 묘소를 참배한 전두환씨와 지인들.
ⓒ 심규상
2005년 현충일을 앞둔 지난 1일, 12·12 군사반란의 주역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당시 반란을 함께 도모한 유학성 등을 참배하러 대전국립묘지를 방문했다. 이에 현충원장이 직접 집례관으로 나서 예정된 묘소마다 의장대, 헌화병, 나팔병을 배치하고 호위를 하였다 한다.

유학성은 12.12 군사반란의 핵심인물로 군 형법상 반란중요임무 종사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자이다. 옛말을 빌리면 역적인 것이다. 그런 역적의 묘에 역적 수괴가 참배를 하러 가니 정부 관리가 최고의 대우를 해 준 것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정권을 강제로 탈취하기 위하여 민간인을 학살하고 각종 부정과 비리, 고문 그리고 납치나 다름없는 조직적인 강제징집 등의 숱한 인권유린을 저지른 일당들은 진작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거나 감옥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은 비웃기나 하듯 여전히 호의호식하며 당당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일당들을 두둔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생겨나고 있다.

이해가 되는가? 옛날 같으면 3족을 멸할 역적들이, 활개를 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군사반란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참배를 하니 정부관리가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것은 해방 후부터 반민족행위로 얼룩진 과거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오히려 왜곡되어져, 반민족행위자가 대우받고 애국지사들이 천대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국립현충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귀한 삶을 희생하고 아울러 국가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분들의 충의와 위훈을 후손들에게 영구히 보존·계승시키기 위해 또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장렬히 산화하신 호국영령 및 순국선열을 모시고 그분들의 생전의 업적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성스러운 자리에 묻혀서는 안 될 자들이 버젓이 있는 것이다. 이갑성,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하나이나 일본 밀정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지금 애국지사묘역에 있다. 친일 행적이 뚜렷한 윤익선, 최창식뿐 아니라 일본 천황을 향한 궁성 요배에서 조선 불교계 7천명의 승려들을 참여하게 한 월정사 승려 이종욱 역시 그렇다.

만주제국 협화회 주요간부로서 일본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고 황민화 의식을 선전하는데 앞장선 이선근도 마찬가지다. 국가유공자묘역의 엄민영, 황종률, 조진만 등과 장군묘역의 이응준, 이종찬, 정일권, 김창룡 등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를 보여준다.

이는 역사를 똑바로 세워야 할 국가보훈처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반민족친일파가 어불성설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은 그동안 독립운동 심사가 매우 부적절하고 허술할 뿐 아니라 국방부의 장군묘역 안장기준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광복에 헌신한 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이 모셔져 있는 국립현충원에 반민족친일파들과 군사반란 사범들이 장군이었다는 이유로 편히 안장되어 있는 것은, 국립현충원에 대한 모독이며 아울러 전 국민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우리 국민을 욕보이고 역사를 욕보일 뿐만 아니라, 이곳에 고이 잠들어 계시는 애국지사들과 순국선열을 능멸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할 수 없게 하여, 젊은 세대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몫을 만들면 된다’는 의식을 심어줄 수 있어 그 악영향이 대단히 크다.

우리 국민은 전국의 국립묘지에서 애국지사와 같이 누워 편한 잠을 자고 있는 모든 민족반역자들을 이 신성한 곳에서 추방해야 한다. 그리하여 반민족행위자들은 죽어서도 절대 대접받지 못한다는 추상같은 원칙을 세워야 할 것이다. 국가를 위해 순국하신 분들이 죽어서도 절규하지 않도록 반민족친일파의 이장은 매우 시급하다.

마지막 임정요인이셨던 조경한 선생은 1993년 10월 7일 임종을 눈앞에 두고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가 함께 묻혀 있는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과연 누가 국립묘지에 안장되어야 하는가?

과거사를 올곧게 정립하여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그러한 자리에 있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제라도 국립묘지령을 개정하여 안장되어 있는 반민족 행위자들과 반국가 사범들을 모두 이장시켜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규봉 기자는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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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통해 사회를 분석한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역사가 담긴 자전거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 <체게바를 따라 무작정 쿠바횡단>, <장준하 구국장정6천리 따라 자전거기행> 출간. 전 대전환경운동연합 의장, 전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현 배재대 명예교수, 피리와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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