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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사건 희생자유족회 대표들이 대전 동구청을 방문해 암매장지 내 건축공사중지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 심규상

제주4.3 항쟁 56주년을 앞둔 지난 30일 제주 지역 4.3 희생자 유족회 소속 대표단 3명이 대전을 찾았다. 4.3을 앞두고 대전 산내 골령골 계곡에 묻힌 300여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대표단의 일원인 이성찬 제주 4.3사건희생자유족회장과 김익중 씨는 가족이 대전 산내에서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날 유족들은 참배도 하기 전에 연신 가슴을 쳐야 했다. 암매장지에 들어선 교회 건물이 한창 페인트 도색작업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에는 어린이 놀이시설이 들어차 있었고 공원용 벤치가 공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2001년 대전 동구청의 공사 중지명령에 이어 지난 해 고등법원과 대법원이 각각 구청의 공사중지 명령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그동안 암매장지 한복판에 들어선 건물은 아무런 장애없이 공사를 계속했고 시설을 늘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고법과 대법원은 지난 해 각각 '건축주가 건축허가 조건을 위반한 데다 인근에서 제주 4.3 사건 관련 추정 유골이 발견돼 제주 4.3 사건 특별법에 의거 관련자료 발굴 및 자료수집을 위한 현장 보존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공사중지명령이 정당한다고 판시했다.

참배를 하는 둥 마는 둥 한 유족들은 곧장 대전 동구청으로 달려갔다. 구청 도시개발과에 들어선 유족대표들은 박재범 과장과의 면담을 통해 이를 거칠게 항의했다.

(이 회장)“대전 동구청과 교회 건축주간 구청의 공사중지명령을 놓고 벌인 소송에서 누가 승소했나?”
(박 과장)“우리가 승소했다.”
(이 회장)“그런데 왜 교회 외벽 도색공사를 벌이고 있나? 엄청난 어린이 놀이터 시설을 다 뭔가? 그 교회에서 어린이 시설을 운영하고 있더라. 무허가 건물에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박 과장) ....
(이 회장) “대법원 판결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 거면 돈 들여가며 뭣 하러 소송은 했나”
(박 과장) ....
(이 회장) “공사 중지시켰다더니 역으로 공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사람도 살고 있고 보일러 시설에다, 애들 놀이시설 뿐만이 아니고 야외용 공원 벤치까지 실어다 놓았다. 현장은 가 봤나?”
(박 과장) “전에 가 봤다.”
(이 회장) “가 봤다면 다 알고 있었을 것 아닌가. 왜 알면서 구청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관심도 갖지 않나?”
(박과장) ....

▲ 대법원 판결 전(2003년 여름)
ⓒ 심규상
▲ 대법원 판결 뒤인 (2004년 3월 31일)
ⓒ 심규상













(이중흥 4.3 희생자유족회 부회장) “도대체 동구청 입장은 뭔가. 왜 공사가 중지된 채로 있지 않고 계속 시설을 늘려 가도록 가만히 보고만 있나?”
(박 과장) “국비 지원 받아 그 땅과 건물을 살려고 한다.”
(이 부회장)“땅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지난 해 행정자치부 예산은 왜 거부했나.”
(박 과장) “5억 2천만원을 지원 요청했는데 장관이 3억만 준다고 했다. 3억 가지고는 이것도 저것도 안돼 기왕 하는 거 한꺼번에 (지원 받아) 해결하려고 했다. 땅만 사면 (교회쪽과) 협의하기 쉽다. 그 쪽에서도 땅(이전부지)을 사달라고 했다”
(이 부회장)“그럼 올해 예산 요청은 했나?”
(박 과장) “금년에는 요구하지 않았다.”
(이 회장) “국고 지원받아 해결한다 해놓고 지원 요구도 안한 것은 아예 관심이 없다는 얘기 아니고 뭔가?”
(박 과장) “작년보다 땅값이 많이 올라 금년에는 힘들다”
(이 회장) “땅 얘기 이전에 우선 현장 조치부터 해달라. 어떻게 할 건가?”
(박 과장) “현장을 보고 말하겠다”
(이 회장) “제발 관심 좀 가져달라.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제발 관심 좀 가져달라.”

그러나 박 과장은 유족들과의 면담을 끝낸 후 후속조치 방안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페인트 도색이 뭐가 문제냐.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고 되물었다.

'밭 갈이에 또 드러난 '사람의 뼈'

이 회장은 다시 제주도로 되돌아 가기 위해 동구청 정문을 나서다 “4.3 특별법도 대법원 판결도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구청의 철저한 무관심에 가슴이 아프다”며 눈물을 훔쳤다.

▲ 괭이 끝에 걸려 나온 '사람의 뼈'
ⓒ 심규상
31일 오전. 기자가 찾은 산내 암매장지는 농사철을 맞아 논밭 갈이에 여념이 없었다. 2학살지 부근 밭에서 괭이질을 하던 한 아주머니가 기자를 손짓했다.

“며칠 전 우리 바깥양반이 일하다가 뼈가 나와서 저 모퉁이에 묻어 놨어유.”

슬쩍 땅을 헤쳐 찾아낸 뼈는 30cm쯤 돼 보이는 '사람의 뼈'였다. 주변 교회건물은 말끔히 도색 작업이 끝나 있었다. 인근에서는 농지 정리를 위해 중장비가 굉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대전산내학살 현장은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제주 4.3 관련자 등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과 보도연맹 관련 민간인 등 7000여명이 집단학살 후 암매장된 곳으로 알려져 있으나 지난 2000년 10월 대전 동구청의 건축허가로 현장과 유골 일부가 크게 훼손됐다.

특히 현장 보존조치와 유골발굴이 늦어지면서 암매장지 대부분이 농경지로 개간되는 등 이미 상당수 훼손이 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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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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