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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근데 12·12 사태가 대체 뭐꼬?"
"쉬이~ 니 잽혀갈라꼬 환장했나? 12·12라는 거는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군부 내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 아이가. 그라고 그 때문에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장군이 체포됐다 아이가."

그해 봄, 그러니까 내가 다니던 공장 총무과 뜰 앞에 있는 흑장미가 피처럼 검붉게 피어나던 그해 5월 17일, 전두환은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정치활동이 금지되었고, 대학이 폐쇄됨과 동시에 정치인과 재야 지도자, 데모 주동 학생들이 무차별적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워메, 이를 우째쓰까? 내 고향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나가꼬 공수부대까지 투입되었다고 하더랑게."
"폭동? 머슨 폭동?"
"지금 광주에서는 학생들과 시민들 수만 명이 계엄령을 철폐하고 전두환 퇴진과 김대중 석방 등을 요구하는 엄청난 시위가 일어났다고 하더랑게."
"그기 우째 불순분자와 폭도들에 의한 난동이고?"

그랬다. 내가 밀링과 탁상선반을 마구 오가며 기름과 칩에 온몸이 된장에 박힌 풋고추처럼 푹 절어있을 때, 공장 안에서도 이상한 소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려오기 시작했다.

특히 광주가 고향인 우리 공장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누이가 죽었다느니, 어머니가 국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느니, 동생이 공수부대 군홧발에 짓밟혀 병원에 실려갔다느니, 하는 별의별 섬뜩한 소문이 마구 나돌기 시작했다.

"워메~ 이 일을 어쩐다냐? 내가 허벌나게 일해서 번 돈으로 대학에 다니는 내 동생이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더랑게."
"아, 국민을 보호해야 할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진 군바리들이 광주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갈겼다고 하더랑게."
"쉬이~ 그 군바리들이 모두 경상도에서 올라간 군바리들이라고 하더랑게."

그때부터 공장 안에는 전라도 출신 노동자들과 경상도 출신 노동자들 사이에 알 수 없는 묘한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들은 아무도 그 사건의 전모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뜬 소문이겠거니 했다. 또한 그 사건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학살로 이어진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얼마 전에 광주에서 겨우 빠져나온 사람한테 들은 말인데, 광주 시민들이 군바리들이 쏜 총을 맞고 엄청나게 죽었다 카더라. 그라고 광주 시민들도 시민군인가 뭔가 하면서 총을 들고 같이 싸운다 카더라"
"쉬이~ 니 입 조심해라이. 말 잘못하다가는 바로 군바리들한테 잽혀가서 개 맞듯이 맞고 까막소로 직행한다카이. 옛말에 소낙비는 일단 피하고 보는 기 상책이라 안 카더나."

그랬다. 1980년에 접어들면서 창원공단에도 서서히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현장 노동자들은 예전처럼 감옥 같은 철조망 안에 갇혀서 밤낮 주야로 일을 해야 했다. 또한 현장 노동자들은 그동안 밀린 방값과 빚 때문에 제발 작업반장이 철야근무를 시켜주기를 애타게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그 흉흉한 소문은 우리 현장 노동자들과는 전혀 별개의 일처럼 들렸다. 또한 공장 안이 핑비총알처럼(재빠르게) 마구 돌아가기 시작하자 전라도 출신 현장 노동자들도 그 사건에 대해 입을 열 틈이 없었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광주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진상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꼬, 내 눈으로도 보지 못하고 내 귀로도 똑똑히 듣지도 못한 일을 가꼬 소문만 워찌 믿는당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난다던가. 아무래도 요번에는 무언가 이상하당게. 전화도 불통이지러, 광주에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게 군바리들이 틀어막고 있지러~"

그랬다. 당시 현장 노동자들은 그 사건이 그 엄청난 광주대학살사건이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게다가 현장 노동자들이 들었던 그런 이야기는 신문에조차도 나지 않았다. 단지 조그마하게 난 단신에 광주에서 약간의 소요가 있었으나 진압되었다는 내용뿐이었다.

"워메~ 김대중 선생님이 사형선고를 받아부럿당게."
"그라모 신민당 총재에서 제명된 영샘이는 우째 되노? 잘못되모 영샘이도 잽혀가는 거 아이가?"
"설마 김대중 선생님을 죽이기까지야 하것어라."
"아, 지금 전두환인가 대두환인가 하는 넘이 말 한마디만 하모 하늘에 나는 새도 떨짜뿐다(떨군다) 카더라."

하지만 우리 현장 노동자들은 공장 밖에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어도, 광주에서 그 어머어마한 학살이 일어나고 있어도, 여전히 잔업과 철야근무로 숨을 돌릴 틈조차 없었다. 또한 그러한 정치적 사건들은 식의주에 목을 맨 우리들에게는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다.

어두움 아프도록
어두움 가슴 아파
먼지 낀 창가에 검은 눈물 줄줄 흘려도
이 땅의 새벽은
끝내 오지 않을 것 같은
참으로 캄캄한 나라에 사는 공돌이 공순이

스윗치만 넣으면 잘도 움직이는
일본산 산업 로봇 같은 우리도
제 살을 찌르는 드릴 같은 분노를
모르는 것 아니다
따순 눈물과 불타는 사랑도 안다
그러나 산다는 것이 별것이더냐
거꾸로 산다는 것이 별것이더냐

팔목까지 기름에 열두 시간 이상 담그며
수 년째 맞는 봄날 아침
공단로에 떼지어 피어난
개나리꽃 속에 잠겨
실컷 취하여 비틀거리고 싶지만
돈이 어딨노

하지만
이 개나리가 다 지고
우리들 그리움 같은 시퍼런 싹이 트면
가슴에 묻어둔 분노들 모두 모아
노동의 칼춤을 추리라

최루탄 가린 대학정문을 울면서 지나
연탄불 꺼진 달셋방에서
웃으며 번개탄을 태운다
밤샘한 육신에 녹아드는 피로를
화알활 태운다
저 착취의 검은 음모가
하얗게 탈색될 때까지

(이소리 '봄날 아침'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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