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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흥은행은 매각이냐, 독자생존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조흥은행 매각 문제가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조흥은행 노조는 정부의 매각방침에 반발해 17일 매각반대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정부나 조흥은행 모두 독자생존이냐, 매각이냐를 놓고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 서 있는 셈이다.

5월 1일 밤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조흥은행 매각'과 관련 몇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흥은행 매각에 대해 패널로 참석한 김윤자(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에게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조흥은행 실사 과정에 정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고 심지어는 대통령 방미에 앞서 매각을 마무리해서 미국을 비롯한 외국투자자들 안심시킨다, 이런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독자생존'과 '매각'에 반반씩 힘을 실어줬다.

"방미 전에 미국을 안심시키려 한다는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처음 듣습니다. 김 교수님도 조흥은행 독자생존이 가능하며 유리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쉽게 답변하기 힘드실 겁니다."

"조흥은행 노조와 만나서 진짜 고심했던 내용은 독자생존이 가능하냐, 안 하느냐 우리 공정한 심사기관에 맡겨서 한번 평가해보자 그렇게 합의를 했고요.(중략) 지난 번 하이닉스를 미국 마이크론에 매각한다고 했을 때도 논란이 많았지만, 하이닉스를 그 때 팔았던 것이 잘된 일인지 팔지 않았던 것이 잘된 것인지에 대해 어떻게 판단을 하십니까. 조흥은행에 관한 문제도 원매자가 항상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원매자가 나타났을 때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그냥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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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왜 2000원 낮아졌나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지난 1월 14일 금융노조 이용득 위원장과 조흥은행노조 허흥진 위원장을 만났다. 이 만남은 비공식적인 것으로 회동 자체가 비밀에 부쳐졌다.

이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용득 위원장과 허흥진 위원장에게 "신뢰할 수 있는 제3자에 맡겨 조흥은행 매각가격을 다시 실사한 후 매각 여부를 결정한다"고 해법을 내놓았다.

금융노조와 조흥은행노조는 제3자 실사기관 의뢰를 독자생존여부를 가려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만남 때문에 1월 23일 공자위가 신한지주를 우선 협상자로 선정했지만 노조는 '조용히' 있었다.

4월초쯤 만난 조흥은행 관계자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제3자인 신한회계법인 실사 결과 조흥은행 주당 가격이 1차 실사(4691원) 때보다 상당히 높게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독자생존'에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후 3월말 재실사를 마쳤을 당시 신한회계법인이 추산한 조흥은행 주당 최저가격은 7800원대로 확인됐다.

그러나 4월 16일 신한회계법인 실사결과 공식 설명회에서 조흥은행 주당 최저가격은 5788원으로 조정됐다. 보름 사이에 2000원의 차이가 발생한 셈이다. 주당 100원 차이가 생겨도 680억원 차이가 나는 점을 감안할 때 2000원 차이는 1조3600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다.

노조는 4월 2일과 7일 재실사를 맡았던 신한회계법인이 1차 실사기관인 모건 스탠리측과 예금보험공사 관계자와 극비리에 만나 재실사 결과를 사전 조율한 것을 확인하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재실사를 통해 독자생존 여부를 판단하자"는 대통령의 약속을 관료들이 나서서 막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흥은행 공적자금 투입 현황

1999년2월19일 예금보험공사 조흥은행 2조1123억원출자
1999년4월30일 충북은행과 합병
1999년5월 7일 예금보험공사 충북은행 2123억원 출자
1999년9월11일 강원은행과 합병
1999년9월30일 예금보험공사 강원은행 3933억원 출자
공적자금 합계 : 2조 7179억원
총자산 68조7809억원(2002년 9월 현재)
예금보험공사도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취했다. 모건 스탠리, 신한회계법인과 만나 가격 산정을 조정한 사실을 부인했던 예금보험공사는 '조흥은행 매각가치 조정 외압 의혹이 있다'는 <대한매일> 4월 25일자 보도와 관련 해명자료를 통해 "통상적인 만남이었다"면서, "추측과 과장보도가 향후 당 공사의 협상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공적자금 투입금융기관의 민영화에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해명은 예금보험공사가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의 민영화를 위해서 스스로 말을 바꾸고 있음을 인정한 대목이다.

조흥은행 노조가 예금보험공사의 행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조흥은행 노조는 1차 실사를 맡은 모건 스탠리가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재실사를 요구했다. 모건 스탠리가 예금보험공사의 자문사기 때문에 이들의 실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노조에게 '신뢰할 수 있는 제3자 실사'를 통해 매각여부를 결정하자고 제안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조흥은행 노조 허흥진 위원장은 "대통령이 과연 실사과정에 예금보험공사가 개입해 압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를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팔아야 한다는 입장만을 주장하는 관료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때문에 노조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3자 실사가 독자생존'을 전제로 한 내용임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5월 6일 일간지에 조흥은행 직원 명의로 '노무현 대통령님! 이런 보고 받으셨습니까? 지금 국민 사기극이 진행되고 있습니다'라는 의견광고를 통해 '외압 의혹'을 강조했다.

노조가 발빠르게 움직이는 이유는 또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해 '조흥은행을 하이닉스'를 빗대 표현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발언은 경우에 따라서는 '살 사람이 있을 때 파는 것이 좋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대안연대회의 정책위원 정승일 박사는 "2,3년마다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데다 여전히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는 하이닉스 반도체와 조흥은행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1/4분기에도 경상이익을 내는 등 독자 생존력이 있는 조흥은행에 대해서 원매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무조건 팔겠다는 생각이 장기적으로 은행산업에 발전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금융계의 한 전문가는 "미국이 한국의 은행민영화를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흥은행의 민영화는 그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신한은행의 경우 조직문화를 비롯해 경쟁력 면에서 월등해 정부 입장에서는 매각을 통한 합병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정부 입장에서는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1월 23일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의 아시아판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 인터넷판은 '조흥은행 매각 해결을 시험하는 정치'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AWSJ는 "16억 달러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공기업인 조흥은행 매각에 대해 외국인 투자가들은 차기 한국 정권의 경제정책을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여기고 있다"면서, "이들은 조흥은행 매각 건이 향후 한국투자 과정에 지속적으로 직면할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읽기에 따라서는 조흥은행 매각을 노골적으로 강요한다고도 볼 수 있는 글이다.

매각과 관련된 일정은 구체적으로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예금보험공사에서 구체적 계획이 넘어와야 공자위 일정이 잡힐 수 있다"면서, "5월 중으로 회의가 진행되길 희망하지만 헐값 매각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매각이 되든, 독자생존 되든 조흥은행 진로는 향후 은행산업의 새로운 지도를 그린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조흥은행 문제를 국제 투자가들과 금융권이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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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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