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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이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에 대해 질문을 하는 기자들을 향해 '인터뷰를 할 수 없다'며 거절하고 있다.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이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에 대해 질문을 하는 기자들을 향해 '인터뷰를 할 수 없다'며 거절하고 있다.
▲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이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에 대해 질문을 하는 기자들을 향해 "인터뷰를 할 수 없다"며 거절하고 있다.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이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에 대해 질문을 하는 기자들을 향해 '인터뷰를 할 수 없다'며 거절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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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은 북방한계선(NLL) 남쪽의 연평도 인근에서 두 번의 아찔한 전투를 벌였다.

1999년 6월과 2002년 6월의 일로, 연평해전이라 부른다. 대한민국 해군 함정과 북한 경비정 사이에서 실제로 서로 사격을 가해 인명 피해까지 입는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강만길은 1999년에 벌어진 1차 연평해전이 벌어진 뒤 안타까운 마음을 글로 담아 냈다. <대를 이어 동족상잔할 것인가>라는 글이다.

북쪽 경비선이 며칠을 두고 경계선을 넘나든다 하더니 기어이 총격전이 벌어졌고, 남북 양쪽을 합쳐 백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났다고 한다. 비록 짧은 시간의 총격전이었다 해도 그 결과가 앞으로 어떻게 번져갈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세계대전으로 불리는 큰 전쟁들도 극히 사소한 일에서 발단된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전쟁치고 처참하지 않은 전쟁이 있을까만, 동족상잔이야말로 처절하고도 비참하기 짝이 없는 전쟁이다.

남북을 막론하고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 중 6·25 전쟁을 겪은 사람은 한마디로 말해서 불행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동족의 다른 한쪽을 적으로 삼아 총부리를 겨누고 싸운 사람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난 후까지도 남쪽 사람들에게는 아직 북쪽은 적이요 전쟁 때 도와준 미국은 혈맹의 우방으로 인식되어 있다. 반세기가 된 지금까지 그들 대부분은 동족의 한쪽을 적으로 간주하는 민족인식 및 역사인식에 갇혀 있는 것이다. 동족상잔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6·25 전쟁을 겪은 세대의 불행은 그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된 지금까지도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그들의 아들 딸 손자 손녀들에게 자기와 같이 북쪽을 적으로, 그리고 미국을 혈맹의 우방으로 인식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강요하지 않고는, 자손들의 민족인식 및 역사인식에서 그것을 확인하지 않고는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동족상잔의 상처란 그렇게 깊은 것이다.

그런데 민족분단 과정에 하등 책임이 없을 뿐만 아니라 6·25 동족상잔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남북의 젊은이들이 군인, 그것도 징집 의무병이 되어 남북 기성세대들의 불행한 적대 인식 및 대결에 따라 서로 총격전을 벌였고 순식간에 백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었다. 그리고 언제 또 더 큰 총격전이 벌어지고 그것이 전쟁으로 확대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처절하고 부끄러운 민족상잔이 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6·25 동족상잔이 끝난 지 반세기가 되면서 남쪽 4천만 인구 중 그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고, 세월이 약이 되어 북쪽을 적이 아닌 동족으로 인식하고 미국을 혈맹의 우방이라기보다 하나의 타국일 뿐이라고 인식하는 젊은 인구가 훨씬 많아졌다. 그것이 21세기를 내다보면서 전쟁통일도 흡수통일도 아닌 평화통일을 전망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남쪽의 그 젊은이들이 북쪽 젊은이들과 총부리를 맞대고 싸워서 잠깐 동안에 아까운 사상자가 났고, 미국의 핵잠수함 등이 이 땅에 증파된다고 한다. 6·25 동족상잔이 50년이 지난 지금 이 땅에 남북 젊은이들이 서로 총질을 해서 피를 흘리고, 미국이 또 혈맹의 우방자리를 더 굳혀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언제쯤에나 남쪽 젊은이들에게 북쪽 젊은이가 도로 동족이 되고 미국이 혈맹의 우방이 아닌 타국이 될 것인지, 그리하여 언제쯤에나 다시 전쟁통일도 흡수통일도 아닌 진정한 의미의 평화통일이 전망될 수 있을 것인지 아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흰옷 입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대대로 살았다는 이 한반도가 어쩌다가 남의 힘까지 빌리면서 대를 이어 동족상잔의 한심하고도 창피한 땅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6·25 동족상잔을 경험했기 때문에 민족의 다른 한쪽이 적으로만 보이는 민족인식 및 역사인식이 청산되지 못하고 후대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한, 대를 이어 동족상잔하는 비극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총격전에 희생된 젊은이들은 남북 기성세대의 동족상잔적 역사인식의 희생물이다. 삼가 명복을 빈다. (1999년 6월) (주석 1)


주석
1> 강만길, <21세기사의 서론을 어떻게 쓸 것인가>, 창비, 2018, 55~5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강만길평전, #강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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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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