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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9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9주년 기념 특별 강연회에서 '국민의 정부'의 업적과 역사적 성격에 대해 특강하고 있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9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9주년 기념 특별 강연회에서 '국민의 정부'의 업적과 역사적 성격에 대해 특강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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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학자로서 진실성과 지식인으로서 시대정신을 식별하는 통찰력을 갖추고 글쓰기를 계속했다. 해직되어 야인으로 지낼 때나 공직에 있을 때가 다르지 않았다.

"평생 동안 허리띠를 조이며 산 마누라가 그 무렵에 장만한 집이 마침 2층이라 아래층에서 아침을 먹고 출근하는 마음으로 2층 서재로 가서 오늘은 여기까지 쓰리라 작업량을 미리 정해 놓고 미친 듯이 써내려 갔다. 어디에서 그런 힘과 악이 솟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주석 1)

과골삼천(踝骨三穿)이라는 말이 있다. 복사뼈에 구멍이 세 번 뚫린다는 뜻이다. 강진 초당에서 다산 정약용의 가르침을 받은 황상이 자기 제자들에게 다산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했던 말이다. 복사뼈에 구멍이 세 번이나 뚫릴 만큼 오랜 시간 공부하고 글을 썼다는 이야기다. 다산은 또한 엉덩이가 곪아서 앉을 수가 없어 벽에 선반을 만들어 놓고 서서 글을 쓸 때도 있었다고 한다. (주석 2)

다산에 비할 바 아니지만 강만길도 많은 글을 썼다. 전문 학술지, 사론집, 칼럼집을 합해서 18권의 저술을 남겼다. 질량 면에서 엄청난 양이다.

민간독재와 군부독재를 거치는 동안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다가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평화통일의 가능성이 확인되자, 이것이 지속되기를 간절히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곳곳에 지뢰가 깔려 있고, 정세는 언제 다시 역류하게 될지 몰랐다.

강만길은 늘 냉전의 실태를 파헤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그 대표적인 글이 <냉전세력의 정체와 그 극복의 길>(1990)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냉전세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 냉전세력이 우리 역사 위에 자리 잡게 된 조건을 알고 그것을 해소해 가는 일이 중요하다. 일제 강제 지배에서 해방되면서 38선이 그어짐으로써 민족분단의 위험이 높아져 갔을 때, 분단 위험을 극복하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세력도 있었고, 통일국가가 수립되는 경우 권력을 획득할 가능성이 없을 것을 알고 분단국가 수립을 획책하는 정치 세력도 있었다.

38도선 이남의 경우 분단국가 수립을 획책하는 세력 중에는 일제강점시대의 민족해방운동에 종사한 세력도 일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렇지 않은 세력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일제의 강점 지배에 부역하여 그 행정관·경찰관·사법관·직업군인 등으로 있었던 세력, 즉 친일세력이 거의 그대로 분단국가에 통치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주석 3)

그는 친일세력의 생성 과정과 해방 후의 냉전세력으로 전환해 간 과정을 살피고, 그들이 어떻게 세력을 강화했는지를 추적한다. 그러면서 냉전세력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밝힌다.

요컨대, 그들은 민주주의 발전을 달가워하지 않고, 북쪽에 적대적 정책을 펴고, 외세와 쉽게 결탁하고, 평화통일 자체를 싫어한다. 이런 속성을 지닌 냉전세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강만길이 제시하는 방안을 들어 보자.

냉전세력 극복의 길은 첫째 그들이 성립된 요건, 즉 뿌리를 제거하고, 둘째 그들이 의지했거나 그 세력이 강화되어 온 배경을 청산하며, 셋째, 그들의 생존 근거와 속성을 정확하게 집어내어 없애는 길이라 할 수 있다. 냉전세력의 뿌리는 친일세력이었다고 한다. (주석 4)

그는 분단시대의 막을 내리고 통일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냉전세력의 서식지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인의 주장이 아니라 역사학자의 냉철한 부르짖음이었다. 민족의 독립·자주·통일보다 사대·종속·독재·분단의 영구화를 신봉하는 '얼치기 보수'가 다시 극성을 부리는 시대에 그의 지적은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해방 후 친일세력이 정치·경제·문화계 등에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이승만 독재체제와 박정희정권을 비롯한 후속 군사독재정권의 계속이었다고 앞에서 말했다. 이승만 정권과 군사정권을 포함하여 40년이 넘는 독재 기간은 해방 후 우리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그 기간을 통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에 걸치는 우리 역사 전체가 왜곡되었으며 그것이 곧 냉전세력이 서식하는 온상이 되었다. 독재체제의 뿌리를 제거하고 냉전세력의 서식처를 제거하기 위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민주주의를 확립해 가는 일이 곧 냉전세력을 극복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친일세력에서 냉전세력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세력들은 당연히 반북세력이기 마련이며, 따라서 북쪽과의 사이에 냉전기류가 계속되어야만 그 서식공간이 유지되기 마련이다. 그들이 남쪽 중심의 무력통일이나 흡수통일을 염원하는 것도 그 때문이며, 무력통일이나 흡수통일의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남북 협상통일·화해통일·대등통일의 전망이나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초조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냉전세력을 극복해 가는 길은 평화통일·협상통일·화해통일의 길을 계속 넓혀 가는 길이라 할 수밖에 없다. (주석 5)


주석
1> 강만길, <통일운동시대의 역사인식>, 창비, 2018, 424쪽.
2> 김삼웅, <다산 정약용 평전>, 두레, 2023, 263~264쪽.
3> <통일운동시대의 역사인식>, 541쪽.
4> 위의 책, 554쪽.
5> 앞의 책, 358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강만길평전, #강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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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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