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5월 1일에 우리는 왜 안 쉬는 거죠?"
"너희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학생이잖아."
"그런 논리라면, 어린이날엔 어린이만 쉬고, 크리스마스 때는 그리스도교 신자들만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노동절에 쉬기는커녕 중간고사를 치러야 하는 아이들이 단단히 뿔이 났다. 예년 같으면 아무 일 없이 넘어갔을 텐데, 시험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화풀이하듯 쏟아냈다. 학교의 경우엔 급식소 등에서 일하는 교육공무직 노동자를 제외하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과를 보낸다.
몇몇 아이들의 느닷없는 '몽니'이긴 했어도, 두루뭉수리 넘어가자니 뒤통수가 따가웠다. 무심결에 건넨 말이라고 해도, 설득력이 전혀 없는 답변이었던 까닭이다. 내가 지금껏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뿐, 그들의 질문과 반론은 충분히 상식적이었고 합리적이었다.
알다시피, 3.1절이나 광복절 등 국경일은 물론,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등 기념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건, 모든 국민이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다. 그 뜻을 기리는 데에 주체와 대상이 따로 있을 리 없다. 국민 모두의 국경일이고 기념일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같은 국경일이라도 쉬는 날과 쉬지 않는 날의 '인지도'는 천양지차다.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으면, 기억 속에서도 지워진다. 일례로, '5대 국경일' 중 개천절이 언제인지 모르는 아이들은 없지만, 제헌절이 몇 월 며칠인지는 태반이 잘 모른다.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아서다.
아이들이 노동절을 알고 있는 건, 직장에 다니는 부모님이 당일 출근하지 않아서다. 그나마 부모님이 자영업자나 비정규직이라면, 관심조차 가지기 힘든 기념일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휴무일이지만, 실제로는 회사 내부의 사정과 사업주의 재량에 따라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공공 기관과 대기업의 전유물이 된 대한민국의 '노동절'
비록 아이들에겐 존재감조차 없지만, 노동절은 전 세계인의 '명절'이다. 1886년 5월 1일,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미국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며 파업한 데서 유래한다. 1889년 노동자들의 국제 연대 조직인 제2 인터내셔널은 이를 '메이데이(May-day)'로 명명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과 연대 의식을 고취하는 날로,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부터 법정 휴무일로 지정됐다. 그러나 대다수 영세 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여서 기념일 제정의 취지가 퇴색된 것 또한 사실이다. 보편적이어야 할 노동권이 우리나라에선 공공 기관과 대기업의 전유물이 됐다.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처럼, 노동절이 달력에 '빨간 날'로 표시될 순 없는 걸까요? 업종과 직장에 따라 누구는 쉬고 누구는 일해야 한다면, 노동자들의 연대가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회사마다 사정이 달라 국가가 일률적으로 강제할 순 없지 않겠니?"
"그런 논리라면, 법정 휴무일인 다른 기념일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
아이들의 반론에 다시 또 말문이 막혔다. 따지고 보면, 회사마다 다른 사정을 꼭 노동절만 배려해야 할 이유는 하등 없다. 다른 기념일은 나 몰라라 하고 노동절에만 토를 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노동절을 대하는 정부와 기업의 뿌리 깊은 편견 말고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노동절이란 이름마저 없애버린 박정희 정부
다사다난했던 우리나라 노동절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시작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3년 5월 1일, 조선노동총동맹의 주도로 대규모 기념행사가 열렸다. 수천 명의 노동자가 한데 모여 '노동 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을 주장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사회주의가 전 세계로 퍼져가던 시절이었다.
항일 독립운동의 성격이 짙었던 노동운동은 해방 후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미군정의 탄압과 6.25 전쟁으로 분단이 고착화하면서 급격히 위축되었다. 급기야 1958년 이승만 정부는 노동절을 5월 1일에서 3월 10일로 바꿔버렸다. 그날은 어용노조였던 대한노동조합총연맹의 창립일이었다.
5.16 군사 정변으로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 정부는 1963년에 노동절이라는 이름마저 없애버렸다. 노동자는 '근로자'로 대체되었고, 노동절은 '근로자의 날'로 공식 명명됐다. '주체적으로 일하며 연대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노동자는 이후 반정부적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반공을 기치로 내걸었던 박정희 정부에서 노동자는 불온한 단어로 인식됐고, 그들이 손 맞잡은 노동조합도 자연스럽게 반정부 조직으로 낙인찍혔다. '무색무취'했던 노동이 군사 독재정권에 의해 '사회주의 용어'로 각인된 것이다. 요즘 아이들조차 노동절을 '데모하는 날'쯤으로 알고 있다.
30년 넘게 지속된 군사 독재정권의 그늘 속에 '근로자의 날'은 법 조문은 물론, 국민의 인식 속에서도 노동절이라는 단어를 지워냈다. 그나마 문민정부 때인 1994년에 이르러서야 이승만 정부가 뒤튼 '메이데이'를 5월 1일로 간신히 회복시켰다. 노동자들의 피맺힌 투쟁의 성과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절이라는 세계 공통의 명칭은 되찾지 못했다. 헤아려 보니, 날짜를 되찾는 데 걸린 시간이 36년이고, 노동절이라는 이름을 빼앗긴 지 61년이 됐다. 이제 다시 '정명(正名)'할 때도 됐다. 분단의 모순 속에 노동에 덧씌워진 편견의 굴레를 벗겨내는 게 급선무다.
노동절에 학교도 쉬어야 한다
듣자니까, 노동절을 실제 휴무일로 운영하려는 학교가 시나브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교사는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아 정상 근무해야 하지만, 편법일지언정 융통성을 부리고 있다는 거다. 예컨대, 학교마다 '합법적인' 휴무일인 개교기념일을 부러 노동절로 옮기는 것이다.
어차피 노동절에 급식소가 운영되지 않아 하루 도시락을 준비하는 학교가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애초 학교 밖 체험 활동일로 편성해 노동절을 뜻깊게 보내는 학교도 있다. 개별적으로 체험 학습을 신청한 뒤 하루짜리 가족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최근 부쩍 늘었다.
"저희도 매일 '학습 노동'에 시달리는데, 노동절 하루만큼은 쉬어도 되지 않을까요?"
한 아이가 5월 1일이면 '봄나들이 가기에 최적의 날'이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잠자코 있던 한 아이는 맨날 놀러 갈 생각만 하니까 기념일마다 취지가 훼손되는 거라며 눈을 흘겼다. 웃자고 건넨 말에 죽자고 따지는 꼴이었지만, 노동절에 학교도 쉬어야 한다는 점에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교육과정 상 수업 일수가 부족하다면 방학을 하루 줄이면 그만이다. 문제라면, 휴무일을 함께 누릴 수 없는 영세 기업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의 처지가 눈에 밟힌다는 점이다. 학교가 쉬기 전에, 당장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는 입법이야말로 노동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첫걸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