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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1일, 대한민국 철도, 나아가 한반도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혁명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한국고속철도, KTX가 첫 번째 기적을 울리며 대한민국 전역을 일일 생활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20번째 생일을 맞이하며 성년이 된 KTX 이야기, 앞으로의 KTX, 그리고 특별한 인터뷰까지 세 편으로 정리했습니다.[기자말]
한국고속철도, KTX가 올해로 개통 20주년을 맞았다.
 한국고속철도, KTX가 올해로 개통 20주년을 맞았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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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마음이 시속 300km로 달려갑니다" - 2006년 KTX 광고 문안

한국인의 교통은 2004년 4월 1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 이후로 한반도 안에서의 물리적·시간적 거리를 300km/h라는 경이로운 속도로 좁혔고, 전국 어디서나 2시간 반이면 다른 어디로도 갈 수 있는 일일 생활권 시대가 펼쳐졌다.  

한국고속철도는 대한민국의 역사 그리고 경제개발을 보여줬다. 1960년대 일본의 고속열차 '신칸센'의 외관만을 따라한 열차를 만들었던 대한민국은 프랑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30년 만에 이 땅 위에 고속열차를 운행한다는 꿈을 이뤘다. 그 꿈에서 그치지 않은 대한민국은 완전한 국산 고속열차를 생산, 운행하는 현재에 이른다.

한국고속철도, KTX가 개통한 지 올해로 정확히 20주년이 됐다. KTX는 성년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지구 둘레를 1만5800여 바퀴를 돌 만큼 달렸고, 2003년에는 누적 10억 명의 이용객을 달성했다. 한국의 21세기를 함께 한 대표적인 교통수단으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기록을 써왔다.

꿈이었던 고속열차, 한국 땅 위를 밟기까지

한국에서 고속열차의 본격적인 도입이 시작된 것은 1992년 한국고속철도의 기공 부터이지만, 한국이 고속열차를 동경하기 시작한 것은 더욱 오래 전의 일이었다. 1969년 당시 일본에서 모든 객차를 수입하면서 개통했던 새마을호의 전신격 열차, '관광호'의 외관부터가 그랬다.

당시 초호화 열차였던 관광호는 1964년 개통하면서 일본의 고도 경제기를 상징했던 신칸센의 전두부를 그대로 벤치마킹했다. 물론 최고속도는 당시 신칸센의 시속 200km에 한참 못 미치는 90km/h였고, 전동차인 고속열차와 달리 디젤 기관차의 앞머리를 개조한 것에 그쳤지만, 고속열차에 대한 열망은 이미 시작된 셈이었다.
 
1969년 개통한 '관광호'의 모습. 5년전 개통한 일본 신칸센의 전두부를 디젤기관차에 그대로 접목시킨 것이 눈에 띈다.
 1969년 개통한 '관광호'의 모습. 5년전 개통한 일본 신칸센의 전두부를 디젤기관차에 그대로 접목시킨 것이 눈에 띈다.
ⓒ 한국철도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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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고속열차가 실제 한국에서 달릴 수 있다는 것이 가시화된 것은 1989년이었다. 당시 국책사업으로 신국제공항(지금의 인천국제공항) 사업과 함께 경부고속철도를 선정하면서 그간 '외국에는 이런 것이 있다더라' 수준에서 그쳤던 고속철도라는 단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술이 문제였다. 한국이 내놓은 당시 최신 차량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대비를 위해 도입한 150km/h급의 새마을호 디젤 열차였다. 전기 동차 역시도 갓 국산화가 이뤄지는 등, 고속철도 운영에 들어가는 장비와 가장 중요한 고속철도 전용 차량을 바로 만들기에는 무리였다. 해외 기술 도입이 필요했다.

어쨌건 정부는 1992년 충남 아산에서 경부고속철도 선로의 첫 삽을 떴고, 1993년에는 프랑스·독일·일본의 국제입찰 '삼파전' 끝에 프랑스의 알스톰이 기술 도입 대상으로 낙찰됐다. TGV를 기반으로 한 고속열차가 한국 땅을 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국고속철도 개통을 위한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1998년 4월 18일은 한국고속철도 역사에 길이 남을 날 중 하나다. 프랑스에서 제작이 완료된 고속열차의 1호기가 부산항에 도착해 한국 땅을 밟았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주류로 운행되던 TGV 레조 차량을 기반으로 한 한국고속철도의 차량은 1999년 1차 구간이 개통된 고속철도 시험선 위에 올라서게 됐다.

시험선 완공과 함께 'KTX'라는 이름도 정해졌다. 1994년부터 정부는 국민 공모전을 펼치는가 하면, 전문가, 광고업체 등과 함께 고속열차 이름을 작명하기 위해 나섰다. 5년에 걸친 장고 끝에 나온 이름은 KTX(Korea Train eXpress). KTX 하면 생각나는 지금의 로고도 그해 12월 나오며 개통에 대한 기대도 높였다.

시험운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KTX는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열차의 기록을 연이어 갈아치웠다. 한국에서 선로 위에 선 열차 중 처음으로 200km/h를 넘어섰고, 2000년 11월 13일에는 천안-대전 간 시험선의 전구간 개통과 동시에 시운전 열차가 운행, 모두가 고대하던 꿈의 속도, 300km/h를 돌파했다. 

2004년 4월 1일, 한국 교통의 역사가 바뀌었다
 
2021년부터 운행을 시작하며 KTX의 새로운 얼굴이 된 KTX-이음.
 2021년부터 운행을 시작하며 KTX의 새로운 얼굴이 된 KTX-이음.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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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도 있었다. KTX가 한창 준비되던 시기는 IMF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가 겹쳤을 때였다. 당초 2002 부산 아시안게임과 한일 월드컵 시기에 맞춰 진행하려던 개통 시기 역시 2년가량 늦어졌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속철도 인력의 해외 연수가 이어지고, 외환 위기 극복과 함께 공정률 역시 회복되는 등 준비가 이어졌다.

KTX의 시대가 가까이 왔음을 체감할 수 있었던 계기도 있었다. 철도청은 2003년부터 KTX가 운행할 주요 기차역의 리모델링 및 재건축을 통해 역사 환경을 바꿔놨다. 지금의 서울역·용산역·부산역 등 주요 역사의 모습은 KTX 개통과 함께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

2004년 1월에는 영업 시운전에 돌입했고, 같은 해 3월에는 대국민 시승 행사를 개최하는 등 개통을 위한 마치막 준비에 돌입한 KTX. 그리고 3월 30일에는 서울역에서 조순 당시 대통령 직무대행 등이 참여한 가운데 고속철도 시대의 첫 시작을 알리는 개통식이 열렸다.

그리고 4월 1일 오전 5시 30분,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운행하는 1번 열차가 처음으로 승객들을 싣고 KTX의 첫 여정에 나섰다. 오전 5시 15분에 개찰구를 가장 먼저 통과한 박준규(현 여행작가) 씨는 KTX의 '1호 승객'이 돼 축하를 받는 이색적인 풍경도 이어졌다.

당시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린 시간은 3시간에서 3시간 30분 남짓. 열차가 시원스레 내달리는 고속선 구간에서는 객차마다 설치된 TV에서 실시간 속도를 알렸고, 열차에 300km/h 표시가 나올 때면 탑승객들의 경탄이 쏟아지곤 했다. 고속열차는 그렇게 '신고식'을 마쳤다.

고속열차의 개통은 한국의 교통을 바꿔놨다. KTX의 2004년 당시 운행 횟수는 경부선이 하루 64회, 호남선이 하루 17회였다. 800개가 넘는 자리를 가진 KTX가 매일 새벽부터 자정까지 여느 교통수단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전국을 누비면서 승객들을 실어다 날랐으니, 한국 교통이 송두리째 뒤바뀔 만 했다.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이른바 당일치기, 1박 2일 관광이 활성화됐고, '장거리 출퇴근족'도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서울에서 아침을, 부산에서 점심을, 다시 서울에서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전국의 일일 생활권 시대가 KTX를 타고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대한민국의 '새천년', KTX가 함께했다
 
KTX-평창 열차의 모습.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 개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빠르고 편리한 고속철도에 있었다.
 KTX-평창 열차의 모습.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 개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빠르고 편리한 고속철도에 있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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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는 서울을 중심으로 열리곤 했던 국제 규모 행사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효과도 낳았다. 당장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담이 KTX의 세계무대 데뷔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각 국가를 대표해 모인 이들이 전세기 대신 KTX를 타고 부산역에 내리는 모습은 세계의 카메라에 담기곤 했다.

이후에도 KTX는 2012 여수 세계 박람회,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등 대한민국의 '새천년'을 책임졌던 굵직한 행사마다 존재감을 뽐내곤 했다. 특히 이들 행사를 위해 서울과 개최지역을 잇는 KTX가 개통하면서, 지역의 편의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지역 관광의 일등 공신이 되는 등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런 만큼 KTX의 노선도 대폭 확대됐다. 2개 노선에서 20개 역을 운영했던 2004년과 달리 2024년에는 8개 노선에서 69개 역이 운영되고 있다. 2004년 당시에는 KTX의 수혜를 입지 못했던 충북·강원·경북 내륙·전남 동부 지역 등이 KTX의 추가 개통으로 수혜를 입었다.

그런 만큼 KTX는 이제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서울과 부산을 이동하는 사람들의 약 70%가 고속철도를 이용할 정도(2019년 조사)로 KTX는 지역 이동의 '상수'가 되었다. 고속철도 이용에 따른 에너지 절감 효과는 1조8196억 원에 달하는 등 환경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KTX는 개통 20년을 맞은 오늘도 많은 승객을 실어나르고 있다. 그런 KTX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23만 명(2023년). 업무·가족방문·여행 등 여러 사람의 꿈과 일상이 오늘도 시속 300km로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태그:#KTX, #고속철도, #고속열차, #20주년, #한국고속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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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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