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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드는 생각이나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인가? 의자에 앉아 선생님이 있는 칠판을 바라보며 공부하는 이미지를 떠올렸으리라 생각한다.

학교가 바뀌고 있다. 한 반에 50~60명 넘는 학생이 빽빽하게 앉아 공부하고, 학교 종이 울리면 하교하던 시절은 옛말이다. 정규 수업이 끝난 뒤 갈 곳 없는 아이는 학교에 남아 담임 선생님이 아닌 또 다른 선생님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언제부턴가 학교에서 밥을 주기 시작했고, 상담, 진로 탐색, 치유 등 공부 외의 많은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학교의 기능이 커지면서 교육이나 학교 행정을 지원하는 수많은 직종이 생겨났다. 학교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지만, 교원도, 공무원도 아닌 사람을 우리는 '교육공무직'이라고 부른다. - 기자말 


우리는 작년 가을 아시안게임을 보며 환희를 느꼈고, 올해는 몇 달 뒤에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린다. 각 방송사는 대회 기간 내내 여러 경기를 생중계나 녹화중계로 내보내고, 이를 보는 사람들은 국가대표팀과 선수들을 응원하며 즐거워한다.

큰 무대에서 맘껏 기량을 뽐내고, 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선수들이 처음부터 지금의 멋진 모습으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무수히 흘린 땀과 눈물, 그리고 끊임없는 연습이 활약상으로 돌아온다. 수 없이 찧은 엉덩방아가 김연아를, 지겹게 한 슈팅과 드리블, 패스 연습이 손흥민을 만들었다.

선수가 성장하는 과정에는 이를 이끄는 지도자가 있다. 선수가 땀 흘리며 넘어질 때, 곁에서 방향을 제시하며 함께한 지도자가 있기에 우리는 이들을 보며 환호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직종인터뷰 열여섯 번째로 인천 가림고에서 펜싱을 지도하는 이호정 선생님을 만났다.
 
인천 가림고 운동부 지도자 이호정 선생님
 인천 가림고 운동부 지도자 이호정 선생님
ⓒ 신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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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교에서 펜싱을 지도하고 있는 이호정입니다. 인천에서 중, 고등학교 선수 생활을 하고, 대학도 펜싱 전공 특기생으로 진학했습니다. 대학교 3~4학년 때 공부를 해서 지도자 자격증을 땄고, 바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죠. 2014년 3월 1일 자로 가림고등학교에 와서, 현재까지 아이들을 10년째 가르치고 있습니다."

- 펜싱은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효자 종목 중 하나죠. 에페, 사브르, 플뢰레 세 가지 종목이 있는데,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 차이점을 간단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에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다 찌르는 경기입니다. 먼저 찌르는 사람이 이기죠. 공격하는 사람과 수비하는 사람이 따로 있진 않고요. 서로 같이 찌르면 점수도 같이 올라갑니다. 리우 올림픽에서 '할 수 있다'를 외쳐서 화제가 된 금메달리스트 박상영 선수가 하는 종목이 에페입니다.

사브르는 머리 포함, 상체 부분을 찌르고 베고 가르는 사람이 이기는 경기입니다. 공격, 방어의 우선권이 중요한 종목이죠. 공격하는 사람은 상대편의 칼을 피해 공격하는 것이 중요하고, 수비하는 사람은 상대 공격을 피해 먼저 때리거나 막고 찔러야죠. 공격과 수비가 정해져 있으므로, 룰과 규칙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나 혼자 산다'에도 나온 오상욱 선수가 하는 종목이 사브르입니다.

플뢰레는 상체 중 조끼(몸통) 부분을 찔러야 이기는 종목입니다. 사브르와 마찬가지로 공격과 방어가 정해져 있고, 마찬가지로 공격과 방어의 우선권이 중요합니다. 사브르는 칼날이 상대편 몸에 닿기만 해도 이기는데, 플뢰레는 칼날 앞부분에 작은 '포인트'라는 부분이 있어요. 500g의 눌리는 힘이 가해져야 점수가 올라갑니다. 따라서 찌르는 동작과 힘, 또한 두뇌 싸움이 매우 중요하죠. 개인적으로 세 종목 중 심리적인 부분이 가장 많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남현희 선수가 하는 종목이 플뢰레입니다.

(사브르나 플뢰레는) 공격과 수비가 정해져 있어서 공격권을 가진 사람이 점수를 딸 가능성이 더 커요. 수비에서도 점수를 딸 수는 있는데, 공격하는 사람의 칼을 잘 막거나 피하면서 찔러야죠."

인성을 갖추고,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선수로 키우고 싶어

- 학생 선수들을 지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과, 지도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인격과 인성이 가장 중요해요. 어릴 때부터 운동부 생활을 하는데, 제대로 지도하지 않으면 나중에 훌륭한 선수가 돼도 인정받지 못해요. 요즘 뉴스에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건사고가 많잖아요. 뒤늦게 깨달아도 고치기 쉽지 않아요. 때문에 청소년기부터 올바른 지도법으로, 훌륭한 인성을 가진 선수로 육성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실업팀까지 환경이 바뀌고 지도자도 바뀌거든요. (환경이 바뀌어도) 운동선수 스스로가 노력하고 생각하며 목표를 갖고, 무엇을 해야 할지 발전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 게임을 뛰었는데 동작이 잘 안 됐다면 스스로 왜 이 동작이 안 됐는지 생각하고, 훈련 일지를 쓰고, 핸드폰이나 비디오 촬영도 해보고, 다음날 훈련할 때 고쳐서 더 좋은 실력으로 나아가게끔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뭘 해야 할지 아는 선수가 돼야죠. 이런 선수들이 오래, 길게 간다고 생각해요.

저도 선수들에게 매일 일지를 쓰라고 이야기해요. 매일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저도 바쁠 때가 있고, 가끔은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리고 날짜를 잡아놓고 '일지 쓴 거 가져와 볼래?라고 하죠. 일지를 쓰는 친구가 있고, 안 쓰는 친구가 있거든요. 안 썼을 때는 안 쓴 것에 관해 상담하고, 쓴 친구는 칭찬해주고요. 일지를 쓰는 친구들이 마인드도 좋고, 훈련 집중도도 확실히 차이가 있습니다.

- 지도하면서 어려운 점이라고 한다면요.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예전 같으면 수업 안 하고 운동만 많이 했죠. 지금은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수업을 받으면서 운동해야 하죠. 여기서 오는 제한적인 부분들이 있습니다.

학교 수업을 6~7교시까지 모두 듣고 훈련하려면 보통 4~5시 정도 돼요. 저녁 먹고 뭐 하고 하면 하루에 2~3시간 정도밖에 훈련을 못 해요. 안전상의 이유로 너무 늦게까지 시킬 수도 없죠. 또, 학교 성적이 좋지 못하면 대회 출전을 하지 못해요. 평균 몇 점까지 받아야 시합에 나갈 수 있다는 식으로요. 그러다 보니 훈련보다 학업에 더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많아지죠. 물론 학업도 중요한데, 훈련의 효율성이 많이 떨어지고, 훈련량도 부족하죠.

그리고 1년간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일수가 정해져 있어요. 정해진 일수를 넘으면 출전을 못하는 경우도 있죠. 그나마 고등학교가 대학 입시와 결부돼서 그런지 출전 일수가 가장 많고, 중학교가 조금 더 적고, 초등학교가 가장 적죠.

사실 학교에서는 운동부 운영하는 걸 썩 좋아하진 않아요. 돈 많이 들어가고, 학생들이 안전상의 이유로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 교장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그리고 운동부 운영해서 메달 따고 잘하면 지도교사에게 가산점이 있다거나 하면 좋은데, 지금은 그런 게 모두 없어졌어요."(기자 주 : 인천에는 전국 대회에 참가한 운동부를 지도하는 지도교사가 대회 후 관련 연구계획서를 제출하면 평가를 거쳐 가산점을 부여하는 '학교체육지도연구대회'라는 제도가 있었으나, 2020년 폐지됐다.)

학습권과 훈련량 사이에서 오는 어려움… 바뀌지 않는 원칙부터 정했으면

- 시대적인 변화이지 않을까요? '운동하는 기계를 만든다'라는 비판도 있고, 어린 선수들에게 그만큼 부작용이 있기도 하고요.

"체육고등학교도 수업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에요. 4교시까지 기본적인 수업을 받긴 해요. 오후에는 특별활동 형식으로 운동부에서 훈련하죠. 일반고등학교도 수업을 아예 안 받아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어느 정도 조절해서 기본적인 수업 정도만 받았으면 좋겠고, 그 이외에도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해요.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뭔가 자주 바뀌어요. 올해는 고등학생들이 50일 정도 대회에 나갈 수 있는데, 작년에는 25일 정도밖에 안 됐거든요. 앞으로도 (정권에 따라) 또 쉽게 바뀔 수 있어요. 너무 왔다 갔다 한다는 거죠. 여기서 어려움이 많아요."

최근 10여 년 사이, 학생 선수의 학습권이나 인권을 위한 여러 규정이 생겨났다. 2013년 1월에 '학교체육진흥법'이 만들어졌다. 학생 선수가 최저학력에 미달하면 대회 출전이 제한될 수 있고(학교체육진흥법 제11조), 전에는 없었던 기초학력보장 프로그램이나 학생 선수를 위한 'e-스쿨', 인권교육과 도핑방지 교육 등이 도입됐다.

특히 오는 3월부터는 1학기 성적이 최저학력에 미치지 못하면 2학기 대회에, 2학기 성적이 최저학력에 미달하면 다음 해 1학기 대회에 나설 수 없게끔 규정이 개정되며, 최저학력에 미치지 못하면 대회 출전을 '제한할 수 있던' 것을 '허용해서는 아니 된다'라는 의무조항으로 더 강력하게 바뀔 예정이다. 학생 선수의 학습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취지로 도입되는 것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반발이나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펜싱 경기 모습
 펜싱 경기 모습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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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싱은 야구, 축구 등 프로리그가 있는 종목에 비해 주목을 덜 받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데서 오는 어려움이나 서운함이 있을까요?

"펜싱이 우리나라에서만 생소할 뿐이지, 세계적으로는 인기종목입니다. 세계 여러 대학에서는 대학에 진학할 때 펜싱을 했다면 그 가산점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이를 아는 학부모님들께서는 펜싱을 통한 좋은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따라서 서운한 점은 없습니다. 다만 지원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고, 우리나라에서도 대학진학 시 (펜싱을 통한) 가산점을 부여하거나 펜싱을 해서 갈 수 있는 대학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펜싱으로 갈 수 있는 대학교는 4~5개 정도로 정해져 있거든요.

중고등학교 때 운동부 주장을 했다면 리더십이 있는 건데, 이런 거는 전혀 반영이 안 돼요. 오히려 리더십은 없고, 인성이 잘못됐는데 성적만 잘 내고, 신체조건이 좋은 친구들만 (대학에서) 뽑아가죠. 이 친구가 고등학생 때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생활기록부처럼 뭔가 본다던가, 주장으로서 역할을 어느 정도 했는지. 이런 것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국 같은 곳에서는 명문 대학에 진학하려면 리더로서나, 인성 등의 부분도 보거든요.

그리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빈부격차가 있어요. 제 딸이 5살인데, 서울에서는 그 나이쯤부터 학원 보내서 펜싱을 가르쳐요. 그에 비해 인천은 클럽이나 학원이 활성화돼있지 않아서, 중학교 1학년 친구 중에 괜찮은 친구들을 뽑아서 펜싱을 가르치거든요. 벌써 경력에서부터 7~8년 차이가 나죠. 이렇게 학교에서 운동을 시작한 친구들은 학교 안에서만 훈련하다 보니, 그 틀 안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능력이 되는 부모님들이 시키는 아이들은 해외에 있는 시합도 자주 나가고, 전지훈련 식으로 돌아다니면서 훈련을 많이 해요. 경험에서도 밀리고요. 이게 많이 어렵죠. 지방은 더 심해요."

이날 인터뷰는 학교 인근의 펜싱 경기장에서 진행됐다. 학부모들이 이호정 선생님을 찾아와서 상담하느라 인터뷰가 예정 시간보다 조금 지연됐고, 그 와중에 학생 선수들이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부족한 시간에 학생들을 지도하고, 학부모들의 민원도 듣고, 전지훈련이나 대회가 있으면 전국을 다녀야 하는데, 처우는 어떻고, 고민은 없을까? '지도자'이자 '교육공무직원', 그리고 '선배'로서 이호정 선생님의 생각은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

덧붙이는 글 | <노동과 세계>에도 게재됩니다.


태그:#교육공무직, #운동부지도자, #학교운동부, #펜싱,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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