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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기준으로 이따위 재판을 하나요?"
"판사가 누구이기에(어떤 성향을 가졌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나요?"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관심이 많은 재판이 끝나면 설왕설래만 남는다. 재판결과가 잘 되었는지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나 사회적 역학관계에 따라 찬반이 나뉜다. 도박판에서 돈을 잃거나 재판에서 패소하고도 기분 좋은 경우는 없다. 승소한 쪽에서는 좋은 재판이고 훌륭한 판사라고 칭찬 일색이겠지만, 패소한 경우에는 나쁜 재판이고 재판부나 판사의 성향이나 편향을 문제 삼아 비판일색일 것이다.

재벌기업 관련 재판이나 환경이나 건축 등 다수 당사자들이 존재하는 재판의 경우에는 승패에 따라 상당한 파급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언론의 호들갑과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의 해몽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이판사판 난장판이 된다.

그 와중에 '사장 나와'라는 급한 성격이 있는 이들은 '판사 나와'라고 외치나, 어떤 판사도 나오지 않는다. 사실 나와서도 안 된다. 판사는 오직 판결(문) 혹은 결정(문)으로만 말해야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재판의 결과에 대해서는 3심 제도라는 법적 절차가 있고, 판사와 당사자가 타협할 수 있는 여지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실 속 당사자들은 재판결과에 자신만의 해석론을 덧붙인다. 사족으로 한마디를 더 붙인다. '사법부가 살았거나 혹은 이미 죽었거나.' 법원 또한 이러한 항의에 대처가 여의치는 못하다. 몇 차례의 사법파동과 일부 정치적(?) 판결로 인한 사법부의 불편한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재판은 진실과 정의를 탐색하지는 않는다'는 게 진실이다
 
하루 수천명의 민원인이 오가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종합민원실 입구다. 법정도 이쪽 통로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이날도 언론매체에서 주목하는 중요한 재판이 있는지 기자들과 민원인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하루 수천명의 민원인이 오가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종합민원실 입구다. 법정도 이쪽 통로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이날도 언론매체에서 주목하는 중요한 재판이 있는지 기자들과 민원인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 배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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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2학년인 아들이 묻는다. 옆에서 초등학교 6학년생인 막내가 귀를 쫑긋하고 있다.

"아빠, 민사재판은 진실을 탐색하고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를 판단하는 건가요?"
"아빠, 형사재판은 나쁜 범죄자를 벌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절차인가요?"


아빠는 소송과 재판의 이상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재판의 현실을 말할 것인가...를 잠시 고민한다. 그러다 스스로에게도 묻는다. "법원의 재판은 무엇을 실현하는 절차일까?"를. 사실 이 질문은 여러모로 곤혹스럽다. 제도가 가져야 할 이상과 구현되는 현실은 어쩔 수 없는 차이와 평가를 가져오기 때문이다(아빠의 마음속에서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세모가 그려진다).

한때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유독 정의감에 불타는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 인구에 회자되지만, 그 책을 끝까지 읽어봤다는 이는 드물다. 우리 대부분은 감동이나 재미가 가미되지 않은 벽돌모양 책자에 특별히 약한 측면이 있다. 소문이나 호기심에 구입해서 몇 페이지를 뒤적거리다가 책꽂이에 전시하거나 라면받침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오히려 몇 페이지로 요약해서 잘 팔리는 자기계발서의 한 꼭지로 넣어두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이클 샌덜의 이야기를 잘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많은 이들은 꼭 한마디씩 보탠다.

"정작, 우리나라에 정의는 존재하는 걸까?" (국어사전에 화석화된 용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민사재판은 원고와 피고 간에 주장과 입증책임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민사소송은 사실인정의 기초가 되는 소송자료의 제출은 당사자의 책임과 의사에 따르는 변론주의와 입증책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제아무리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있을지라도 주장하지 않거나 입증하지 못하면 재판에서 질 수밖에 없다.

형사재판은 경찰(또는 검사)의 수사와 검사의 공소제기에 의해 진행된다. 경찰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검사의 공소제기가 선별적이거나 차별적이면 그 재판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 상황에서 정의를 운운하기란 어불성설의 결정판일 수밖에 없다. 이때 법원과 판사의 심사권한은 무용지물이 된다. 물론 제대로 된 공소제기에도 재판과정에서의 다양한 변수에 따라 정의롭지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았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판사는 헌법과 법률, 직업적 양심과 입증책임에 따라 재판을 진행한다. 물론 이런 형식적인 외피 말고도 개인적인 세계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약간의 영향을 받아) 심증을 얻고 결정이 내려질 것이다. 그럼에도 AI가 대체해야할 직업 중 검사나 판사가 1순위로 지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검사들의 들쭉날쭉 기소와 일부 판결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소양과 양심의 문제를 이미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직업적 양심과 소양(素養)은 정형적인 법률과 업무처리절차 안에 존재한다. 특히나 직업적 양심은 흔히 말하는 고차원적이고 고매한 인격까지 요하지는 않고, 그 직업적 범주에 적합한 정도의 중립적(때로는 가치 판단적) 양심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말도 안 되는 오해나 착각 중 하나를 범한다. 특정 어려운 시험(각종 국가고시 등)을 통과하고 타인의 인생사를 심사하는 자리에 있는 이들은 일반인보다 더 특별한 인격과 양심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대입성적과 대학의 명칭이 그 사람의 인격이 되고, 특별한 직업이 그 사람의 양심으로 평가되는 우리시대의 착각이 우리를 더 큰 불행의 세계로 이끌지도 모르겠다.

민·형사 재판을 불문하고 대중으로부터 욕을 먹고 비난을 받는 것은 담당자들의 특별한 세계관과 가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전인수 격의 어설픈 비판은 논외로 하더라도 국민의 법 감정이나 상식에 맞지 않는 재판 결과는 분명 문제가 있다. 물론 법원조직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최소한의 도덕과 양심의 문제라는 얘기다.

업무처리의 기준이자 업무지식의 보고(寶庫), 법원실무제요
  
법원의 업무처리의 기준이자 업무지식의 보고인 법원실무제요다. 재판업무부터 비송업무까지 전분야에 걸쳐 실무제요를 제공하고 있다. 법원 업무의 실체법적 절차법적 지식이 망라되어 있다.
▲ 법원실무제요 법원의 업무처리의 기준이자 업무지식의 보고인 법원실무제요다. 재판업무부터 비송업무까지 전분야에 걸쳐 실무제요를 제공하고 있다. 법원 업무의 실체법적 절차법적 지식이 망라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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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서 재판이나 비송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업무를 처리할까? 법원에서는 "법원실무제요 00, 00실무"라는 이름으로 각 업무영역 담당자들에게 업무지침서를 제공한다. 민사, 형사, 민사집행, 등기(부동산, 법인), 가족관계등록, 공탁, 행정, 비송 등의 각 분야의 실체법과 절차법을 아우르고, 담당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법원에서 처리되는 소송과 비송업무는 정형적이지만 복잡하다. 정형적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업무지식을 알면 누구나 처리가능하나, 복잡하다는 측면에서는 상당한 지식습득과 숙달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쉽게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더욱이 짧은 실무교육 기간과 2~3년을 기준으로 하는 순환보직시스템 때문에 실질적인 전문가 양성이 어려운 환경이다. 이는 판사들이나 법원공무원 모두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업무가 심사·결정 단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정확한 서면심사와 심증을 얻기 위해서는 전문성은 필수적이다. 한 업무단위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해당 법령을 기본으로 업무처리지침과 주요 선례까지 알아야만 된다. 물론 전산화된 업무처리시스템과 업무편람 등이 마련되어 있어서 개별 신청에 맞는 약간의 업무지식만 있으면 족할 때가 많지만, 다양한 업무와 연결되는 상황까지 고려해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지식의 양은 훨씬 방대하다.

때문에 법원 외부에서 법원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나 법무사들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보다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길을 택한다. 법원 내외부의 누구나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업무영역간의 관계와 개별적 지식을 소화해서 신청사건에 적용한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시라! 소송과 비송, 집행과 등기, 소송과 등기, 집행과 소송, 소송과 가족관계, 가족관계와 등기... 그 어느 하나 만만치 않은 분야들을 서로 연결해서 이해하고 안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인지를. 각 영역은 계속 주고받으며 연결되다보니 어느 한 분야를 알더라도 다른 업무영역을 모르면 막힐 수밖에 없다.

통상 처음으로 접하는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6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그나마 업무에 열정을 가진 이들이 그렇고, 소극적인 이들은 일 년이 지나도 민원인의 질문에 정확하게 답변하기 힘들 수도 있다. 서로 관련되는 업무의 맥락을 파악하려면 더 많은 경험과 학습시간이 필요하다. 법원의 업무형태가 이러하니 실력 있는 전문가들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조직의 한계이자 숙명이다.

이런 까닭에 업무를 처음 시작하는 초심자나 베테랑이나 모두 실무제요나 법령과 예규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고민하며 일해야 한다. 결국 법원실무제요는 법원 구성원의 업무처리 기준이자 업무지식의 보고(寶庫)가 될 수밖에 없다.

회생파산 업무 담당자들은 어떻게 업무를 처리할까?
  
회생파산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업부지침서들이다. 회생파산업무는 법원업무의 여러 분야와 관련되어 있어 참고해야 할 책자가 더 많다. 서울회생법원에서는 실무준칙이라는 더 섬세한 업무기준까지 제공하고 있다.
▲ 회생파산 실무제요 등 회생파산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업부지침서들이다. 회생파산업무는 법원업무의 여러 분야와 관련되어 있어 참고해야 할 책자가 더 많다. 서울회생법원에서는 실무준칙이라는 더 섬세한 업무기준까지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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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법원은 법원구성원들이 전체 법원 중 1순위로 근무를 희망하는 곳이다. 그 이유는 제각기 다르겠지만, 적당한 업무량과 비송사건의 특성, 전문법원이라는 측면에서 특수한 업무경험과 지식의 습득, 일방적 수혜적 업무로 인한 최소한의 악성 민원 등의 장점이 있다.

그렇다고 회생법원의 업무처리가 단순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비송의 영역이긴 해도 소송과 민사집행, 상법과 각종 등기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무지식을 필요로 하다 보니 적응하기가 결코 녹록치 않다. 회생법원 가족들의 업무처리를 위한 지식은 일반 재판업무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회생파산에 관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기본적 토대는 역시나 실무제요와 업무처리지침이다. 회생파산절차를 기술하고 있는 실무서 안에는 법원 안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업무에 관한 지식이 혼재한다. 서울회생법의 경우에는 '실무준칙'이라는 이름으로 업무처리의 통일성과 편의를 위해 별도의 기준을 제공하고 있다.

법령도 사법(私法)의 일반법인 민법부터 민사소송법, 민사집행법, 부동산등기법, 상업등기법 등과 회생파산제도의 본법인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이르기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 외형적으로는 하나의 절차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절차 속에는 수많은 내용의 실체적 규정과 절차적 규정이 들어있다. 좁은 궤도 위로 열차가 달린다고 해서 그 철로가 기차여로의 전부가 아닌 것과 같다.

여기에 각종 사회경제적 영역의 하위 개념부터 세무회계 지식까지 더해야 회생파산 업무의 얼개를 볼 수 있다. 물론 모든 담당자들이 동일한 지식의 양과 질을 습득할 수는 없다. 세분화된 업무영역 속에서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분야의 업무는 반드시 알아야 하고, 주변의 업무지식은 찾아볼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회생법원에는 판사와 회생위원과 직원들 외에도 관리위원과 파산관재인 등 업무를 지원하는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금융권과 기업재무 분야에서 수십여 년 일한 경험으로 회생법원의 전문성을 보충해주고, 개별 사건에 법원을 대신하여 회생파산절차를 진행하기도 한다. 회생법원에서 일하는 누구나 어느 정도 업무에 능숙해지면 이 정도의 질문에는 편하게 기분 나쁘지 않게 답변할 수 있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채무자를 어떻게 파산시켜주나요?"
"아니 이런 나쁜 기업을 회생절차에서 살려주나요. 말이 되나요?"


법원의 일처리가 욕먹지 않고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는 부끄러운 흑역사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직업적 양심과 상식적인 법 감정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 다음은 법원조직과 개개인이 일부의 비상식적인 비난에 휘둘리지 않고, 건전한 시스템과 상식의 틀 아래서 성실한 소명을 다하면 된다. 그것이 전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회생법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직업적양심, #실무제요, #회생법원, #회생파산제도, #실무준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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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교육원 교수를 거쳐 현장에서 밥벌이 중입니다. 부모와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꿈꾸고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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