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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법원·검찰청 등) 출입기자인 모 일간신문 R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자들과 법원의 대외적 소통에 대해서는 주로 공보판사의 역할이었지만, 가끔씩 본인들의 개인적 의견이나 궁금함을 묻기 위해 전화할 때가 있다. 최근 여러 언론사에서 회생파산제도에 관심을 갖고 이와 관련된 기획기사를 내고 있다. R기자는 급한 성격에 질문도 단도직입적이었다.

"과장님, 혹시 재파산하는 비율이 늘어난다는데 무엇이 문제인가요?"
"음, 그것은 기자님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나요? 주위 경제부나 사회부 파트 기자 분들하고 얘기해보면 금방 답이 나올 것 같은데요..."


"아! 그렇긴 한데요.... 사회경제적 문제를 법원의 회생파산 신청의 증감과 바로 연결시키기가 마뜩치가 않아서요. 최근 회생법원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중략).... 그 진짜 이유가 궁금해서요."
"그니까요. 아마도 그만큼 먹고 살기 힘든 분들이 많아진 이유가 아닐까요? 특별히 다른 불순한 동기가 없는 한 그렇지 않을까요..."

"다른 동기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역시나 쉽게 취재하는 프로 기자다운 질문)
"글쎄요. 그분들 마음을 읽어낼 수는 없어서 그렇지만... 일종의 부정적 재테크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동기 아닐까요?"


한번 파산(회생)한 사람이 몇 년 후에 다시 경제적 파탄을 이유로 재파산(재회생) 신청을 한다는 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러 기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기사 한 꼭지를 내기 위해 모르는 분야는 공부도 하고, 전문가들에게 문의도 하며 다른 부서의 기자들과도 논의한다고 한다.

과연, 재파산 신청은 가능하며, 증가하고 있을까?
 
서울회생법원 종합민원실에 회생파산 신청인들이 대기 중이다. 종합민원실에서는 회생파산 관련 각종 신청과 민원상담, 제증명 발급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 서울회생법원 종합민원실 서울회생법원 종합민원실에 회생파산 신청인들이 대기 중이다. 종합민원실에서는 회생파산 관련 각종 신청과 민원상담, 제증명 발급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 배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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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564조(면책허가) 제1항 제4호에 따르면, 개인파산절차에서 면책을 받은 경우에는 면책허가결정의 확정일로부터 7년이 경과해야 하고, 개인회생절차에서 면책을 받은 경우에는 면책확정일로부터 5년이 경과해야 새로운 개인파산 면책을 허가할 수 있다.

이때 면책허가결정을 받은 이후 기간이 경과하기 전에 새로운 파산신청이 가능한가 여부가 문제된다. 개인회생의 경우에는 신청일 이전 5년 이내에 면책(파산 면책 포함)을 받은 경우 개인회생 개시신청 자체를 기각할 수 있도록 규정(제595조 제5호)하고 있다. 하지만 파산절차에서는 면책 확정일로부터 7년이나 5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경우 면책불허가 사유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재신청은 가능하나 면책불허가 사유가 될 뿐이다. 다만 실무에서는 이러한 경우 파산절차의 남용(제309조 제2항) 등의 사유로 기각될 여지가 많다.

이는 채무자가 반복적으로 면책을 받는 것은 채권자의 이익을 해하고 채무자가 면책제도를 악용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않으면 면책할 수 없도록 하는 취지이다. 개인회생 채무자에게 2년의 혜택을 주는 것은 전액 탕감 받은 파산면책 채무자에 비해 일정부분 변제하였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면책허가결정을 받은 적이 있는지 여부 및 그 결정의 확정일자는 파산신청서의 필수적 기재사항이다. 통상 재판사무시스템에서 개인별 회생파산 관련 신청이력이 저장되어 있어 이를 검색해서 면책불허가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

최근 서울회생법원의 재파산 신청비율을 보면, 과거 개인파산 면책 사건을 신청하였던 채무자가 다시 파산신청을 한 경우는 2019년 4.46%, 2020년 5.14%, 2021년 5.52%, 2022년 6.50%이다. 과거 개인회생을 신청하였던 채무자는 2019년 6.98%, 2020년 6.73%, 2021년 6.78%, 2022년 6.70%이다. 이러한 통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새로운 한계채무자의 비율뿐만 아니라 과거 도산절차 신청 경험이 있는 채무자의 비율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재파산 신청 증가로 엿보는 사회 정책적 함의

회생위원실은 서울회생법원 2층에 회생위원들만 모여 일하는 공간이다. 동일 직급에 같은 업무만 처리하는 이들이 모여 있어서 서로 소통도 잘되고 분위기도 좋다. 특히나 밥 먹듯 야근을 하다 보니 동지의식도 끈끈하고 강하다. 그 사무실 앞쪽에는 민원인들이 대기하거나 직원들이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기다란 의자가 놓여있다. 대법정에서 열리는 재판에 출석하거나 신용교육을 받기 위한 민원인들이 한숨을 쉬는 공간이기도 하다.

의자에 철퍼덕 주저앉은 회생위원 K가 한숨을 푹 쉬며 말한다. 50대 중반인 그의 눈빛은 흐렸고 다크서클은 깊었다. K위원은 3년째 개인회생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 2라운드도 고민하고 있었다. 회생위원은 개인회생사건을 전담한다. 

"한번 면책 받은 이들이 다시 회생사건을 신청해서 들어온 걸 보면 화가 납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채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계속 뒤통수 맞는 게 아닌가 싶어요..."

K위원 옆에서 핸드폰을 보며 휴식을 취하던 P위원이 한마디를 보탰다.

"그런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법적인 구제절차로 경제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죠. 어차피 먹고 사는 게 개인 책임이라고 하지만, 다시 법원에 올 정도로 밥벌이하는 게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재파산 증가나 그 원인을 마냥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나 채무자 개인차원에서 해결방법을 생각하려하면 답이 없다. 경제활동과 선택은 개인책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법원에서의 업무는 회생파산 절차 내에서 채무자들의 경제상황을 판단하고 그에 상응하는 법적 결과를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그 이후에 이들이 새로운 상황에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지 아니면 더 큰 고통을 겪을지 알 수는 없다.

최초 파산면책사건에서 누락된 채권을 파산면책 받을 수 있을까?
 
서울회생법원 홈페이지에는 회생파산 관련한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민원인들과 법률전문가들이 알아야 할 법령과 제도 전반에 관한 사항과 업무처리절차와 보도자료 등이 있어서 잘 이용하면 쏠쏠한 정보가 된다.
▲ 서울회생법원 홈페이지 서울회생법원 홈페이지에는 회생파산 관련한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민원인들과 법률전문가들이 알아야 할 법령과 제도 전반에 관한 사항과 업무처리절차와 보도자료 등이 있어서 잘 이용하면 쏠쏠한 정보가 된다.
ⓒ 배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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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자영업자 A는 2020년 9월 파산면책을 받았다. 다만 그 당시 제출했던 채권자 목록에는 채권 양도받은 채권자 B가 누락되었다. B는 자신의 채권이 비면책채권임을 이유로 A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2023년 9월, 자영업자 A는 재기하여 사업을 하던 중 영업이 어려워져 다시 파산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처음에 누락하였던 B의 채권에 대해서도 면책 받을 수 있을까?

파산・면책 절차에서 면책결정을 받은 개인 채무자가 그 절차의 채권자목록에서 일부 채권을 누락한 경우 누락된 채권에 대한 추가적인 파산・면책 신청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가 문제된다.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제7호에서 '채무자가 악의로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아니한 청구권'을 비면책채권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채권자목록에 누락된 채권자들이 채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거나 강제집행을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이때 채무자는 면책확인의 소나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하거나 면책의 항변을 하는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 취약한 채무자가 소송을 통해 채권자에게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경우에 기존의 실무는 절차남용이나 지급불능의 요건 미비 등을 이유로 신청을 기각하였다. 하지만 서울회생법원은 2023년 하반기부터 법률 서비스 접근을 높이고 채무자를 배려하고자 종전에 면책받은 채무자가 채권자목록에서 누락된 채권에 대하여 추가적인 파산면책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때에는 법 564조 제1항 제4호에서 면책불허가 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종전 면책 허가결정의 확정일로부터 7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때'를 적용하기 않기로 했다. 따라서 그 기간 내에 접수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신청을 각하하거나 기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안의 경우 채무자 A는 2020년 9월 면책을 받았으므로 2023년 9월에 신청한 새로운 파산면책신청은 파산절차의 남용으로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기존에 채권자목록에서 누락된 채권자 B의 채권에 대해서는 별도로 파산면책을 신청할 수 있으며, 일반적인 파산면책 절차에 따라 절차남용 여부가 없는 한 면책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며칠 뒤 R기자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과장님, 혹시 회생테크나 파산테크가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죠?"
"그렇죠. 네이버나 다음 포털 검색해보면 공식적이거나 법률적인 용어는 검색이 바로 될 겁니다."


"잠깐만요... 제가 그 생각을 못해봤네요. (뭔가 두들기며 검색하는 소리)....아, 네 회생테크나 파산테크는 아예 검색이 안 되는데요. 빚테크라는 용어는 가끔씩 사용되는데. 이거는 파산테크하고는 다른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거 같은데요."

"그렇죠. 빚테크는 저금리를 둘러싼 대출채무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라 할 수 있죠. 더 싼 이자로 돈을 빌리고, 대출을 갈아타고 뭐 그런 거죠. 회생·파산테크는 채무자가 회생파산제도를 변칙적 재테크의 일종으로 활용한다는 그런 사실적 개념이니까요."


회생테크란 개인회생(파산)제도를 이용해서 재테크를 한다는 말이다. 흔히 말하는 재테크의 긍정적 시각보다는 제도를 악용하여 재테크를 한다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신조어다.

회생파산제도의 장점을 활용한 반복적 면책은 분명 여러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때문에 업무를 담당하는 판사들과 회생위원들의 고민은 깊어져간다. 결국 업무의 당위성과 제도의 문제점, 개인적 연민과 심리적 불편함의 충돌 속에서 신청사건 하나하나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실, 회생파산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과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의 약자가 되는 이들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경제적 파탄과 저소득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기란 부자가 바늘구멍 빠져나오기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어쩌면 부자들은 자신들의 시간과 돈으로 바늘을 크게 하거나 자신의 몸을 작게 할 수 있는 상상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는 채무자들 개인들의 갱생노력과 경제신용 교육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경제적 한계상황에 대한 사회구조적 접근, 재취업과 직업교육에 대한 국가적 관심, 경제적 취약계층의 자발적 동기부여 정책 등의 제도적 개선책 마련이 필요한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회생법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재파산, #회생테크, #회생법원, #누락채권, #파산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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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교육원 교수를 거쳐 현장에서 밥벌이 중입니다. 부모와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꿈꾸고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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