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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딤채 김치냉장고 쓰고 있는데 앞으로 문제없을까? 우리 가족들은 여러 집이 딤채 사용하는데...."
"그러니까.... 우리 집도 그런데...어쩌나?"


동창들 모임에서 한 친구가 위니아의 회생신청 기사를 봤다며 물었다. 이 친구는 딤채 김치냉장고에 대한 충성도가 커서 그런지 동일한 브랜드만 벌써 세 번째 사용 중이라고 한다. 김치냉장고만 두 대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냉장고의 효용가치가 큰 집이긴 하다. 사실 우리 집도 위에서 뚜껑을 여는 딤채 초기 모델을 아직 사용하고 있다.

"당장 큰 문제는 없겠지. 영업중단이나 생산라인 중지 같은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판매나 서비스는 별 문제 없지 않을까?"

많은 경제신문이나 인터넷 매체에서 다양한 기업의 생사존망에 대한 소식을 알려준다. 누구나 다 아는 대기업부터 존재여부를 잘 모르는 중소기업까지 기자들의 관심은 폭이 넓다. 일반 시민들의 주목을 받는 기사거리는 주로 건설업체와 가전제품 등 생활과 밀접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업들이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브랜드와 냉장고 TV 생산업체가 법인회생 신청을 하였다는 소식을 접했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기업의 법인회생(파산) 신청은 누군가의 밥벌이와 맞닿아 있다
  
대유 위니아 협력기업 현장간담오히에서 광주광역시장과, 고용노동부장관, 협력업체 대표 등이 모여 위니아 그룹 혐력기업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하고 있다.
▲ 대유 위니아 협력기업 현장간담회 대유 위니아 협력기업 현장간담오히에서 광주광역시장과, 고용노동부장관, 협력업체 대표 등이 모여 위니아 그룹 혐력기업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청(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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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경영부실 등으로 인한 법인회생 파산 신청은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크다. 경제 관련 기사를 주로 기사화하는 매체들을 보면 최근 위니아 회생절차 신청 관련 기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중소규모 항공사나 건설사 부도사태도 다루고 있으나 우리의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냉장고를 이기지 못한다. 국내 김치냉장고 시장은 위니아 삼성전자 LG전자 3사가 경쟁중이고, 딤채를 앞세운 위니아가 최근 3년간 대략 40%대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위니아는 김치냉장고 전기밥솥 등의 주방·생활가전을 주력사업으로 하는 가전전문기업이다. 2023. 10. 주식회사 위니아는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채산성 악화 및 소비불황, 주가 하락으로 인한 유동성 악화 등을 이유로 서울회생법원에 법인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서울회생법원에서는 회생채권자, 회생담보권자, 주주목록 등을 제출이나 회생채권, 회생담보권, 주식을 신고해야하는 하는 후행 절차가 진행 중이다.

경제신문에서는 연일 위니아의 내부 경영 속사정과 대표자의 문제 등을 보도하고 있지만, 기업의 내부 사정이나 오너 리스크는 소비자들은 알 수도 없고 관심사항도 아니다. 소비자들은 새로이 어떤 가전제품을 사야할지와 현재 소유 제품의 서비스 제공 여부에 조바심을 낼 뿐이다.

기업은 소비자는 물론 고용된 노동자들의 생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으로 큰 숙제를 남겼던 쌍용차 회생사태까지 가지 않더라도, 크고 작은 기업들의 회생 파산은 어느 가장의 밥벌이와 가족들의 밥상에 온전히 파급력을 가진다.

도급순위가 상당한 건설회사의 부도나 파산은 그와 관련된 업체와 하청업체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져 수많은 가정에 시름을 안긴다. 항공사의 파산은 항공관련 종사자는 물론 여행업계에까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의 장기화로 기초체력이 약화된 여행서비스 업계의 불황은 이 분야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청년층의 취업상황과도 직접 관련을 맺는다.

위니아도 광주 전남 지역에 협력업체가 산재해 있다. 직접 고용된 근로자 500여명과 200여개 협력업체에 고용된 이들이 2만여 명이 넘는다. 위니아 회생 상황으로 생계를 위협받는 가족 구성원은 대략 7~8만 명에 이를 수도 있다. 대유위니아 그룹의 계열사까지 합하면 협력사는 450여 곳으로 늘어나 기업 줄도산의 위험성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이정도로 기업회생이나 기업파산은 사회적으로 큰 파괴력을 가진다. 광주광역시나 광주경영자총협회가 재빨리 손발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이유다.

회생법원의 법인회생 절차는 어떻게 진행될까?

기업이 경영악화나 유동성 위기로 부실기업이 된 경우 구조조정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른 법인회생절차이고 둘째는 '기업구조 촉진법'에 따른 공동관리절차이다. 공동관리절차는 법원의 관여 없이 이해당사자 사이의 자율적인 협의에 따라 구조조정이 이루어진다. 기업구조촉진법은 한시법으로 2023. 10. 15. 현재 일몰상태다.

기업의 부도 위기시 투입되는 금융권의 정책자금이나 지차체의 세금 감면 혜택은 단기적이며 미봉책에 불과하다.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은 정상적인 제품생산과 영업을 할 수 있는 기업으로의 생환이다. 회생법원의 법인회생 절차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회생법원에서의 법인회생절차는 회생개시신청, 심사, 개시결정, 제1회 관계인집회, 회생계획안 제출명령, 회생계획안 제출, 제2,3회 관계인 집회(회생계획안 심리 및 결의), 회생계획안 인가, 회생계획 수행, 회생절차 종결절차로 진행된다.

개시결정 단계에서 선행적으로 제1회 관계인 집회 기일 지정, 채권목록 제출기간 및 채권신고기간과 채권조사기간을 결정한다. 이때 채권목록을 제출받아 시부인표 등을 작성하고 신청 기업의 재산실태 및 기업가치를 조사한다. 개시결정시 관리인시 선임되면 채무자는 업무수행권과 관리처분권을 상실하고, 이러한 권한은 관리인에게 전속한다.

현재 법인회생 절차는 기업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신속하면서도 공정한 회생절차의 진행을 위해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패러다임적 변화로 패스트트랙(Fast Track) 기업회생절차, 간이회생절차, 프리패키지플랜제도(pre-packaged plan)의 활성화, 신규자금 지원시장의 조성절차 등이 실무에서 시도되고 있다.

패스트트랙(Fast Track) 기업회생절차의 목적은 절차진행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이해관계인의 참여절차를 확대하며, 시장에 요구에 맞춰 효율적인 법적 절차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제도는 신속한 절차진행과 조기종결을 특징으로 회생신청 기업의 조속한 시장복귀를 도모한다.

간이회생절차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맞춘 회생절차로서 저렴한 비용으로 쉽고 빠르게 기업이 재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청자격에 일정한 제한이 있고, 절차적 측면에서도 간이조사위원을 두고 회생계획안 가결 요건을 완화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프리패키지플랜(pre-packaged plan)제도는 사전 회생계획안 제출제도로서 채무조정과 신규자금 지원의 병행이 특징이다. 이 제도는 신규자금지원이라는 워크아웃의 장점과 채권자 평등을 전제로 하는 채무조정이라는 회생절차의 장점을 합한 것이다. 채권자 주도로 신규자금 지원방안을 포함한 기업의 회생계획안을 수립하고 회생법원이 이를 인가하면 기업 정상화 작업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다.

흔히 P플랜이라 불리는 이 방식은 회생절차 진행으로 인한 낙인효과를 없앨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이 방식의 하나로 스토킹호스(Stalking Horse Bid) 방안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공고 전 인수희망자와 조건부 인수계약을 체결한 후 매각공공절차를 통한 공개경쟁입찰 절차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법인회생절차에서는 '계속기업가치' 판단이 핵심이다
  
광주시가 대유위니아 그룹 관련 고용위기에 처한 노동자를 지키기 위해 '2023 제2차 노사민정협의회'를 개회하고 '광산구 고용위기지역 지정 신청'을 의결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2023 제2차 노사민정협의회" 광주시가 대유위니아 그룹 관련 고용위기에 처한 노동자를 지키기 위해 '2023 제2차 노사민정협의회'를 개회하고 '광산구 고용위기지역 지정 신청'을 의결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청(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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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회생의 목적은 재정상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 계속기업가치(going concern value)를 유지하면서 사업을 계속하도록 하는 것이다.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liquidating value)보다 클수록 회사는 물론 이해관계자에게도 이익이 된다. 전자가 후자보다 클수록 주주들은 투자금을 보존할 수 있고, 채권자들은 더 많은 변제를 받을 수 있고, 직원들은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계속기업가치는 기업을 계속 존속시키면서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해나갈 때 얻을 수 있는 경제적 가치를 말한다. 법인회생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회생절차의 진행여부나 회생계획안을 존속형이나 청산형으로 작성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청산가치는 기업이 청산으로 소멸되는 경우 기업의 개별자산을 분리하여 처분할 때의 가액을 합산한 것이다. 이는 이해관계인에게 보장되어야 할 최소한의 몫이다. 실무적으로도 청산가치에 대해서는 별다른 다툼이 없으나, 계속기업가치에 대해서는 기업의 현재와 회생 후 미래의 성장이 포함되는 만큼 다툼이 큰 영역이다.

법인회생절차의 핵심은 기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하여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법원의 회생절차는 개인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과 같다.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다른 감염으로 이어져 더 큰 병이 되지 못하게 항생제와 치료제가 투여되는 것처럼, 회생절차는 기업의 썩은 환부를 도려내고 치료제와 더불어 예방백신까지 투여해서 다시 건강한 회사로 거듭나게 한다.

문제는 이러한 회생절차가 지연되거나 회생절차에 끝나지 않고 파산절차로 변경된다면 그 파급효과가 막대하다는 것이다. 위니아의 계속기업가치는 과연 어떻게 평가될까?

김치냉장고는 김장철에 잘 팔리는 한철 장사의 대표적인 품목이다. 가을과 초겨울에 일 년 생산제품의 대부분을 소진시켜야 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위니아의 회생 신청 이후에 생산라인에서 만들어지는 김치냉장고가 전년 성수기 대비 1%에 그친다고 한다. 제대로 공장가동이 안 되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현장 근로자들이 제대로 일을 못하고 있고, 협력업체 상호간에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는 불편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겨울 낭만은 김치에서 저녁식탁으로 흐른다

이제는 눈 내린 장독대나 뒤뜰의 항아리에서 김치를 꺼내먹는 낭만은 없다. 집집마다 김치냉장고의 편리성이 겨울 낭만을 대체한다. 끼니마다 새콤하게 익어가는 배추김치와 동치미를 꺼내 밥상위에 올린다. 보랏빛으로 익어가는 갓김치는 별미다. 우리가 지나왔던 수많은 밥상은 고단한 밥벌이의 결과이자 숭고한 생존의 현장이다.

회생법원에 신청된 기업의 회생신청에는 수많은 가족들의 밥상이 달려있다. 어느 기업의 부실은 누군가의 밥벌이를 어렵게 하고 세상의 낭만을 빼앗아갈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법인회생절차를 담당하는 판사와 관리위원, 조사위원들의 어깨는 무겁고 엄중하다. 그들의 심사와 결정에 수많은 이들의 저녁식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치냉장고에 맥주나 막걸리 넣어두면 기가 막히지 않던가?"
"그렇지. 술도 그렇지만 수박이나 포도 같은 과일도 시원하기가 말할 필요가 없지!"
"그런데, 아무리 냉장고 성능이 좋아도 우리 어릴 적 땅속 항아리에서 퍼온 김치맛보다 못하지..."
"말하면 뭣해. 초등학생이던 우리키보다 더 큰 항아리에서 바로 꺼낸 배추동치미는 어떻고. 살얼음이 동동 떠있는 시큼한 동치미 국물...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네....허허허"


친구들 간에 김치냉장고의 다양한 용도와 예전의 김치 맛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온갖 추억과 미각이 불러들인 수십 년 전의 밥상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졌다. 할머니와 어머니들의 손맛과 정성어린 김치 얘기는 중년들의 대화 속에서 꽃처럼 피어났다. 다시 보고픈 얼굴들과 그리운 맛들을 소환할 수 있을까?

친구들 저녁모임 중에 시골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올해에는 12월 중순경에 김장을 할 예정이시라는 말씀이셨다. 시골집에는 4남매에게 보낼 김치를 보관할 냉장고 4대가 정상가동중이다. 무한정한 어머니의 사랑처럼 곰삭은 김장김치는 계속 발효될 예정이다. 저녁이 익어갈수록 "위니아는 어떻게 될까?, 취준생인 자식들의 취업은 언제나일까?, 노후준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등 식탁 위의 이야기들 또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발효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회생법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위니아, #법인회생절차, #김치냉장고, #계속기업가치, #회생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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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교육원 교수를 거쳐 현장에서 밥벌이 중입니다. 부모와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꿈꾸고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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