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후쿠시마의 아이'였던 한 소녀가 던진 이 질문을 기억합니다. 12년이 지나 성인이 되었을 그 소녀는 엄마가 되어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발전소가 있는 마을에 사는 ‘그들’은 안녕할까요? ‘그들’의 삶, 일상, 활동과 목소리를 따라 ‘우리’로 얽힌 사람들, 그 인연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연결될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답을 찾아 원불교환경연대 탈핵기록단이 한 달에 한 번, ‘그들’과 ‘이웃’을 만나러 갑니다. 누군가가 외치는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라는 말들을 곱씹다 보면 어느 지역의 문제, 그들만의 문제라고 덮어두지는 못할 겁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와 마음을 잠깐만 내주세요.[기자말] |
[이전 기사] "방류 직전 후쿠시마 바다의 모습, 정말 죄송합니다"
탈핵운동만 하고 싶어요
2013년 광주환경운동연합 환경교육팀에서 오하라씨가 진행한 사업은 교보재단에 공모해 800만 원을 지원받아 후쿠시마 청소년들을 광주로 초대하는 일이었다. 후쿠시마 청소년들이 직접 겪은 핵사고의 경험을 나누고 한·일 청소년들이 꿈꾸는 미래에너지를 그려보는 프로그램들로 채웠다.
"후쿠시마 한일 청소년 캠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기획하고 운영한 첫 번째 프로그램이었어요. 여러 어려움도 있었지만 큰 성취감을 느꼈고, 앞으로 더 탈핵에 집중해서 활동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광주환경운동연합을 퇴직한 후 특정한 단체에 속하지 않고 일종의 프리랜서로 활동을 시작했다. 오하라씨는 현재 탈핵신문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월 1회 지면으로 발간되는 탈핵신문에서 오하라씨는 일본의 탈핵동향을 전한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무엇보다 후쿠시마 관련 소식을 글로 정리하고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탈핵신문은 2012년 6월에 창간되었고 저는 윤종호 전 편집국장의 제안으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탈핵신문 활동에 참여했어요. 탈핵신문은 일본에서 발간하는 반원전신문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었다고 해요.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벌어지는 탈핵 소식을 공유하기 위해 탈핵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편집위원이나 통신원이라는 형태로 참여해 함께 만드는 신문입니다."
많을 때는 약 5000~6000부 인쇄해 환경단체나 개인 구독자들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늘 적자를 면치 못해 재정적 어려움이 따랐지만, 꾸준히 응원해주는 독자들의 후원금이나 때로는 각종 상금으로 현재까지 발간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 4월부터 12월까지 내부 정비를 위한 휴간 기간을 거쳐 2018년 12월 복간준비 1호를 발간, 2019년 3월 23일 탈핵신문 미디어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재창간했다.
"협동조합을 설립하면서 편집국장이 울산에서 활동하는 용석록 국장님으로 바뀌었고 저도 사무국 일을 부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넘겼어요. 지금은 운영위원과 편집위원을 맡으면서 주로 일본 소식과 영광 한빛핵발전소 소식에 관한 기사를 써요."
탈핵신문은 2022년 7월 100호 발간을 달성해 창간 10주년을 맞이했다. 홈페이지를 개편해 기사 접근성을 높이고 독자 확대를 통한 재정 안정화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2023년 9월 현재 114호까지 발간된 탈핵신문 독자모임이 대전, 울산, 부산, 경주, 대구, 청주, 광주 등에서 진행 중이다. 2022년 5월 탈핵신문은 '탈핵신문 읽기모임을 시작하세요'라는 공지를 올렸다. 독자모임 후기나 인증샷을 올리면 다과비 5만 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벼룩의 간'이라도 내어줄 테니 탈핵신문이 널리 유용하게 활용되길 바라는 간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갑을 열고 개인 구독을 신청했다.
지난 6월 탈핵신문에서 제작한 '후쿠시마 오염수의 진실 10문 10답' 소책자가 탈핵신문 발간 이래 처음으로 흑자를 안겨줬다. 반핵의사회·탈핵신문 운영위원인 박찬호 선생님과 용석록 탈핵신문 편집장, 오하라씨가 의기투합해 만든 소책자가 1쇄 1만 부를 넘어 최종 4쇄까지 찍었다.
"탈핵신문은 한국에서 탈핵이슈만을 다루는 유일무이의 신문이에요. 탈핵신문이 아니면 다뤄지지 않은 중요한 기사들이 있고, 앞으로도 탈핵신문만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 있을 거로 생각해요.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속해서 발행하고 활동을 이어가고 싶어요."
윤석열·기시다 정부의 핵발전 부흥정책
2023년 8월 현재 전 세계 32개국에서 총 410기의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인류가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핑계로 핵발전을 사용하게 된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났어요. 일본은 1965년 상업용 발전소로 도카이 핵발전소를 처음으로 가동한 이후 70~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했어요. 후쿠시마 사고 전까지 핵발전 부흥기였죠."
후쿠시마 사고 발생 당시 일본은 총 54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있었다. 미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 핵발전소 보유국이었다. 태평양전쟁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되어 많은 사람이 비극을 겪었던 일본에서, 활성단층으로 지진이 빈발하는 일본이 기저 에너지원으로 핵발전소를 선택한 것은 핵재처리에 대한 열망을 피해 설명하기 어렵다.
1993년 시작해 31년간 건설, 중단을 반복하던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 '사용후핵연료재처리' 시설이 2024년 준공식을 할 예정이란다. '사용후핵연료재처리시설'은 핵발전소에서 다 쓴 핵연료봉을 가져다가 재처리해서 다시 쓸 수 있는 핵연료를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가 국제 기준에 부합하고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국제원자력기구(아래 IAEA) 그로시 사무총장이 7월 4~6일까지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마지막 날 일본 본섬 북쪽 끝 롯카쇼무라 핵재처리시설을 방문한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IAEA 헌장 제2조는 IAEA가 핵에너지 사용을 '촉진하고 확산하는' 진흥기관임을 명시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후 일본에서는 핵발전 확대 정책에 일정 정도 제동이 걸린 것처럼 보였어요. 핵발전소 반대 여론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2013년 9월부터 약 2년에 걸쳐 실질적인 '핵발전소 가동 제로'를 경험하기도 했어요. 핵발전소가 멈추면서 핵발전 없이도 사는 삶을 경험한 거죠."
일본 정부는 핵발전소 재가동을 일정 정도 규제하는 기준을 만들었고 핵발전소의 수명을 40년으로 제한하는 법적 제도가 도입되어 노후핵발전소를 중심으로 경제성이 떨어지는 핵발전소 총 15기를 폐로했다. 그러나 오하라씨는 2023년 현재 일본 사회는 후쿠시마 핵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기시다 정부는 올해 4월, 핵발전 재가동과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추진하는 내용을 담은 'GX(그린트랜스포메이션)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어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탈탄소정책을 명분으로 내세워 또다시 핵발전 확대 정책으로 급선회하고 있는 거죠."
GX법안의 핵심은 핵발전소 운전 기간 연장이다. 현행 '핵발전소 운전 40년 원칙(1회 20년 연장 가능)'은 유지하지만, 재가동을 위한 안전 심사나 법원 가처분 명령 등으로 정지된 기간을 40년에서 제외해 실질적으로 60년을 넘어서 가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세계적으로도 60년 넘도록 가동하는 핵발전소는 없다. 일본의 기존 핵발전소 내에서는 가동 후 40년 이내에서도 설비 열화에 의한 트러블이 상당수 일어나 위험이 가중되고 있다는 경고가 심상치 않다.
"핵발전소를 60년 넘게 가동한다는 것은 인류에게 미지의 영역이며, 중대한 사고를 용인하는 정책"이라는 후지모토 야스나리 '원수폭(원자력수소폭탄)금지일본국민회의' 공동의장의 말이 머지않은 미래의 일 같아 걱정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각지에서 핵발전소 재가동을 저지하기 위한 시민들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결국 2023년 8월 현재까지 총 12기가 재가동했고, 허가받은 5기도 재가동을 준비 중이에요. 규제위원회 적합 기준 심사에 신청한 원자로가 10기나 되요."
일본 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ISEP)에 따르면 올해 일본의 전력회사가 핵발전소의 안전 대책에 투입한 금액이 5조8912억 엔에 달한다. 2021년 발표된 일본의 제6차 에너지기본계획은 2030년까지 핵발전 비중을 20~22%까지 높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에너지정책이 거꾸로 가기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1978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2023년 8월 현재 총 25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3기 신규핵발전소를 건설 중이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2021년 기준 8.29%로 OECD 국가 중 꼴찌다.
청정에너지와 탄소시장 분야에 관한 독립적 분석, 데이터, 뉴스를 제공하는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태양광발전 설치량은 연초 전망치에 20GW를 더해 340~360GW로 상향 조정됐다. 세계 태양광발전 수요가 빨라지면서 3~4년 후면 연간 500GW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93기의 핵발전소를 운영 하는 미국과 53기에 더해 신규핵발전소를 21기나 더 짓겠다는 중국이 전체 태양광발전 설치량의 50%를 차지하는 것도 아이러니다. 2022년 중국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30.7%로 핵발전 비중 4.7%보다 훨씬 많다.
핵산업 진흥을 목표로 윤석열 정부는 올해 1월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30.2%(185.2TWh)에서 21.6%(134.1TWh)로 대폭 낮췄다.
10차 전력기본계획을 발표한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11차 전력기본계획을 수립해 노후핵발전소 18기 수명연장과 신규핵발전소 추진 등으로 2030년까지 핵발전 비중을 32.4%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한·일 양국의 핵진흥정책은 재생에너지의 진척을 저해하는 요인임이 분명하다.
후쿠시마는 핵부흥을 위한 전시장
후쿠시마는 복섬(福島)이라는 뜻이다. 벚꽃이 흐르러지게 피고, 어장은 풍부했고, 땅은 기름졌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전까지의 이야기다. 전쟁이 아닌 사고로 16만 명이 피난하는 사례가 있을까?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긴급 사태 선언을 해제하지 못하고 있어요. 핵발전소 내부상황이 아직도 끔찍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에요."
녹아내린 핵연료(데브리)를 최종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격납용기를 지탱하는 페데스탈이 위태롭기 짝이 없는 1호기 격납건물 붕괴도 걱정이다. 3·4호기 건물 상부의 사용후핵연료 2101개는 수조에서 꺼내기가 완료되었지만 1호기 392개, 2호기 615개는 아직도 건물 상단 수조에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진도 6강의 지진이 다시 일어나면 격납건물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한다. 후쿠시마 앞바다는 여전히 크고 작은 지진이 이어지고 있다.
"후쿠시마 부흥을 기치로 내건 일본 정부는 광대한 삼림지대와 들판은 그대로 둔 채 생활공간만 오염된 흙을 긁어내고 새로운 흙을 덮는 방식의 제염작업을 마치고 피폭량이 연간 20mSv(밀리시버트)라며 주민의 귀환을 촉구하고 있어요."
방사선과 핵을 이용하는 조업자, 사업소 경계의 주민들의 허용치도 연간 1mSv(밀리시버트)가 넘지 않는데 귀환자들에게 20배의 피폭량은 어떤 근거로 괜찮다는 것일까? 연간 20mSv(밀리시버트)라는 허용량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의 긴급 시 피폭에서의 허용량이지, 사고 이후 피난과 해제에 관한 방사선량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피난민들의 귀환을 촉진하기 위해 주택지원이나 생활지원금을 끊으며 귀환을 재촉했지만 사고 당시, 11개 시정촌에서 피난한 8만8000명 중 1만6000여 명이 귀환 해 귀환율은 18%에 그쳤다. 아동과 학생의 수는 과거에 비하면 10% 미만이다.
후쿠시마 부흥은 핵발전 진흥의 바로미터이다. 그러니 핵사고는 재건 가능하고 나아가 부흥할 수 있음을 전시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근처로 이사하면 최대 한화 2천만 원이 넘는 돈을 지원한다고 9월 13일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주변의 12개 지방자치단체로 이사하는 이들에게 가구당 최대 200만 엔(약 1823만 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단 이주 후 5년 이상 거주하고 취업 등을 해야 한다. 이주 후 5년 이내 창업하면 400만 엔(약 3647만 원)내에서 75%의 경비를 지급한다. 피난민들보다 가난하고 돈이 급한 사람들이 후쿠시마 귀환자 대열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부흥이라는 명분으로 전혀 다른 도시를 꿈꾸고 있어요. 미국 워싱턴주에 위치한 도시 핸퍼드(Hanford)가 모델이에요."
후쿠시마 이노베이션 코스트
핸퍼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 제조를 위한 플루토늄을 생산하던 지역이다. 인류 최초의 핵무기가 제조된 맨해튼 프로젝트의 산실이기도 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8기의 원자로를 더 지어 핵실험을 위한 핵무기 제조를 계속했다. 핸퍼드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방사능 폐기물 저장고가 되었고 노후 저장탱크에서 흘러나온 액체와 기체 방사능물질로 직원과 주민들은 사고와 암, 백혈병 등에 시달리고 사망이 속출했다.
"핸퍼드는 이후 군사 관련 기업과 연구기관을 유치해 지역을 되살렸다고 홍보하고 있어요. 새로운 경제발전 모델로 인구도 증가했어요. 기반은 군수산업이에요. 핸퍼드 같은 군사도시를 모델로 가짜 후쿠시마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가장 위험한 지역을 가장 안전한 곳으로 보이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가장 큰 문제에요."
'후쿠시마 이노베이션 코스트구상'이란 핵발전 사고로 막대한 피해를 받은 지역의 재생 프로젝트다. 후쿠시마현 태평양 해안가 지역인 하마도리를 중심으로 15개 기초자치단체에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폐로 산업, 최첨단 기술, 연구단지 등을 모아 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후쿠시마 부흥의 이름으로 펼쳐지는 각종 기술개발 사업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본 군사 기술개발과 산업육성에 깊이 연결돼 있다는 것이 문제예요. 예를 들어 각종 재해와 관련된 대책이나 인프라 설비 구축을 위한 로봇 개발이 진행되는 '후쿠시마 로봇 테스트 필드'에서는 육·해·공 로봇 개발을 추진하고 있어요. 일본 경제산업성과 미국 국방부 공동으로 재해 대응 로봇 공동 연구를 하는 거고, 단순 산업단지가 아니라고 봅니다."
방사능의 위험으로부터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후쿠시마를 경제적 부흥으로 몰아붙이며 핵산업 부흥을 군사전략과 연계하려는 일본의 속내가 뻔히 보인다고 말하는 오하라씨는 '부흥'이라는 오염된 단어 앞에 걱정이 깊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 매거진 '탈핵 잇_다'에도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