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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의 한 끼 식사를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음식 한 접시는 현지인의 환경과 삶의 압축판이요, 정체성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기자말]
해외를 다니면서 음식 때문에 불편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3월과 4월에 베를린과 런던을 갔더니 하루에도 비가 뿌렸다 그쳤다를 반복했고 몸이 절로 따뜻한 국물 음식을 찾았다. 유럽에서 국물 음식이란 식전에 나오는 한 공기의 양파수프가 다여서 늘 성에 안 찼다.

왜 서양 사람들은 국물 음식을 먹지 않을까. 그 많은 파스타 종류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국물 면 요리는 없지 않은가.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국물 음식을 먹지 않는 게 아니라 우리만큼 많이 먹지 않는 것 같았다. 서양뿐 아니라 동남아나 중국도 우리보다 국물 요리가 훨씬 적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 옛 귀족들은 국물 음식을 천민의 음식으로 취급했다고 한다. 국물 음식은 재료 본연의 맛을 잃게 하는 조리법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오로지 음식의 양을 늘리기 위해 먹는 저급한 음식이라는 것이다.

난 전생에 프랑스 귀족은 아니었나 보다. 서늘한 공기가 몸을 감싸면 따뜻한 국물 음식이 당기는 걸 보면. '탕반문화'라 해서 국이나 찌개가 상에 필수로 오르는 나라, 탕이 찬의 하나로서가 아니라 메인 요리로 놓이는 '국밥'의 종류만도 수십 가지가 넘는 '국물의 나라' 출신이 유럽과 미국, 중남미를 반년 넘게 돌아다니다 보니 끼니때마다 '그리운 국물 음식'을 대체할 건 '뜨거운 커피 한 사발' 밖에 없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찾은 국물 음식 한 그릇

콜롬비아 카르타헤나를 거쳐 메데인(Medellin)으로 갔다. 고산 분지에 들어선 도시라 날씨가 선선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창 밖을 보니 맞은편 식당에 손님이 많았다. 현지인이 바글거리는 식당은 실패가 없는 법. 막상 메뉴판을 받아 드니 음식 이름이 생소하다. 순간, 옆 테이블로 서빙되는 '흰쌀밥에 국 한 그릇'을 보고 말았다.
 
산악 분지 도시 메데인의 자랑인 전철, 전철과 환승되는 케이블카
 산악 분지 도시 메데인의 자랑인 전철, 전철과 환승되는 케이블카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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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야 범위가 180도란 사실에 감사하며 받은 메데인에서의 첫 식사는 몬동고(Mondongo)였다. 그 정체는 놀랍게도 곱창탕! 곱창과 감자를 넣고 끓인 음식이다. 곱창이 부드럽게 씹혔고 라임즙을 짜 넣고 살사를 첨가하니 새콤 매콤한 풍미가 더해졌다. 밥과 곁들여 나온 '옥수수 반죽 구이 아레파(Arepa)'와 함께 먹었다.

이 무슨 '지구인의 음식 연대기'인가.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국밥한상'을 받은 것도 모자라 결코 범상치 않는 '내장국밥'이라니.
 
곱창탕 몬동고(Mondongo) 한상차림
 곱창탕 몬동고(Mondongo) 한상차림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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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인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살라미나(Salamina)와 살렌토(Salento)를 방문했다. 둘 다 안데스 산맥의 봉우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은 마을이다. 한낮은 따사롭지만 아침저녁은 쌀쌀했다. 그래서인지 칼도(Caldo)와 산코초(Sancocho) 등의 국물 음식을 쉽게 만났다.
 
안데스의 하늘과 안데스의 봉우리를 지붕에 얹은 마을, 살라미나(Salamina)
 안데스의 하늘과 안데스의 봉우리를 지붕에 얹은 마을, 살라미나(Salamina)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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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생선탕, 칼도 데 페스카도(Caldo de Pescado), 왼쪽은 옥수수로 만든 아레파(Arepa)
 맑은 생선탕, 칼도 데 페스카도(Caldo de Pescado), 왼쪽은 옥수수로 만든 아레파(Arepa)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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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갈비를 주 재료로 한 갈비탕, 칼도 데 코스티야(Caldo de Costilla)
 돼지갈비를 주 재료로 한 갈비탕, 칼도 데 코스티야(Caldo de Costilla)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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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보다 맛이 훌륭했던 산코초(Sancocho). 플라타노(platano), 유카(yucca), 각종 향신야채를 넣어 끓인다.
 보기보다 맛이 훌륭했던 산코초(Sancocho). 플라타노(platano), 유카(yucca), 각종 향신야채를 넣어 끓인다.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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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타에 가면 '보고타 대표 수프'라는 '아히아코(Ajiaco)'를 꼭 먹어보리라 작정했었다. 매스컴을 통해 유명해진, 라 페르세베란시아(La Perseverancia) 시장 안의 식당 '톨루(Tolu)'를 찾아갔다. 아히아코를 시키니 25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한참을 기다려 받은 항아리 수프는 닭고기 감자 수프였고 기대 이상으로 입에 맞았다. 옥수수와 다른 향신 야채도 들어있었고 연하게 삶아 결대로 찢은 닭고기살도 추가로 담아 나왔다. 주문과 동시에 조리되고 1인분씩 항아리에 따로 끓여 내는 것 같았다. 먹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보고타 대표 수프, 아히아코(Ajiaco)(닭고기 감자 수프)
 보고타 대표 수프, 아히아코(Ajiaco)(닭고기 감자 수프)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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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국물의 나라와 친구 맺으실래요?

보고타는 거대 도시였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시내 곳곳을 다닐 때 메트로버스를 이용했다. 보고타의 메트로버스(Trans Milenio)는 강력한 운송 수단으로 여느 대도시의 지하철 격이었다. 도로 중앙 차선을 배타적으로 확보해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게 했고 엄청난 사람들을 수송해내고 있었다.
 
보고타 시내를 빠르게 연결하는 트랜스 밀레니오 굴절버스
 보고타 시내를 빠르게 연결하는 트랜스 밀레니오 굴절버스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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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2004년 서울에 도입된 버스전용차로제의 모델 도시가 보고타였다고 한다. 메데인과 보고타 시내의 택시는 기아 아니면 현대차다. 현재 보고타에서 시행 중인 교통카드제는 2011년 서울교통카드시스템이 중남미로 수출된 첫 사례라고 한다. 또 콜롬비아는 한국전 참전 국가이기도 하니 이래저래 우리나라랑 사연이 적지 않다.

서늘한 고산 분지나 고원 지대에 사람이 모여 사는 콜롬비아는 다녀본 어떤 나라보다 따뜻한 국물 음식이 많았다. 기왕의 인연도 있는 데다 우리나라처럼 국물 음식을 이토록 즐기니 이것 또한 '맛있는 명분'이지 않은가. 이제 'K-국물 요리'도 콜롬비아로 건너가자. 콜롬비아에게 제안해 본다, "원조 국물의 나라와 친구 맺으실래요?"
 
보고타 근교 시파키라(Zipaquira) 식당에서 손님의 국적별로 국기를 꽂아 주었다.
 보고타 근교 시파키라(Zipaquira) 식당에서 손님의 국적별로 국기를 꽂아 주었다.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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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콜롬비아여행, #콜롬비아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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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여행자입니다. 여행이 일상이고 생활이 여행인 날들을 살고 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과 기억을 '쌓기 위해'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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