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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본상을 수상한 일본 작가인 메도루마 슌은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작가다. 오키나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군사 기지로서 역할을 수행했고 태평양 전쟁 당시 오키나와 전투 중에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이 있었다. 전쟁 이후 미군의 지배를 받은 오키나와는 1972년 오키나와 반환을 통해 일본 정부의 관할이 됐다.

메도루마 슌은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오키나와의 역사와 현재 오키나와가 해결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꾸준히 작품에 담아내는 작가다. 다음은 지난 12일 서울 진관사 한문화체험관에서 열린 작가와의 만남에서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다. 진행은 고명철 광운대 교수가 통역은 명지대 곽형덕 교수가 맡았다. 

"식민지배 이후 오키나와의 문화 열등하다는 인식 커져"
 
메도루마 슌 작가와의 대화. 왼쪽부터 진행을 맡은 고명철 광운대 교수, 메도루마 슌 작가, 통역을 맡은 명지대 곽형덕 교수 (사진 : 은평구청)
 메도루마 슌 작가와의 대화. 왼쪽부터 진행을 맡은 고명철 광운대 교수, 메도루마 슌 작가, 통역을 맡은 명지대 곽형덕 교수 (사진 : 은평구청)
ⓒ 은평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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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전 면적의 0.6%밖에 안 되는 오키나와에 미군기지 70%가 집중되어 있다.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가 들어선 것에 대해 강하게 저항하면서 현장에서 기지 이전 반대 투쟁을 해 왔다. 작가님은 오키나와의 식민지 경험에 대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로부터 계속 들어왔다고 하는데 오키나와의 심리상태는 어떤 것인지 설명해 달라. 

"오키나와는 1879년 일본 제국에 강제 병합됐다. 강제 병합 이후 일본은 일본 문화를 강제로 동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한다. 오키나와 언어, 역사와 문화가 다 일본식으로 바뀌어 갔다. 식민지 지배라는 건 단순히 정치 경제 만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 구조까지 지배하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주민의 정신구조는 열등감을 안게 되고 오키나와의 문화가 일본에 비해 열등하다는 의식이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근대 오키나와의 소설가, 시인은 일본어를 아주 잘 써서 소설이나 시를 쓰는 것을 자신의 가장 큰 목표로 삼아서 작품 활동을 하기도 했다. 조부모님이 오키나와 말을 쓰는 걸 보고 자랐고 소설에서도 오키나와 말을 살려서 쓰려고 한다. 

미군기지가 오키나와에 집중됐는데 이건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 사이에 근본적인 차별구조가 남아있다는 말이다. 곧 일본의 이익을 위해서 오키나와를 희생할 수도 있다는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 사이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다. 오랜 기간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했는데 만약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가 없었다면 그 많은 시간을 소설 쓰는 데 썼을 거다. 결국 미군기지 문제는 군대 차원의 피해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사람들의 자유와 시간을 빼앗고 인생 자체를 훼손하는 것이다." 

- 미국과 일본이 굳건한 안보 체제를 통해 오키나와 류큐열도를 철저하게 희생시키면서 오늘날의 미국과 일본의 안보 체제가 공고히 되고 있고 이런 상황은 한반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작가님은 최근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미일 안보체계가 강화되는 상황을 어떻게 보나.

"미래안보조약은 미군 기지를 일본에 두는 건데 일본 어디에 미군 기지를 둘 것인가와 관련한 규정은 없다.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를 집중시키는 건 일본 정부의 독자적인 판단이다. 1990년 소련 해체 이후에는 미군기지 규모를 축소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제는 북한과 중국을 위협적인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아베 전 총리가 암살당하게 되고 그 무렵 타이완에 대한 전쟁 위협이 높아졌다. 일본인에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큰 쇼크로 다가왔다. 중국이 타이완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국제 정세를 보면, 문제는 이성적인 공론장에서의 토론이 아니라 불안을 부추기고 군사 산업을 키우고 자위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키나와 안에서는 다시 오키나와가 전쟁터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상당히 많다."

"폭력의 구조 용인한 결과... 무엇이 남을까"
 
메도루마 슌 작가의 작품 (사진 : 은평구청)
 메도루마 슌 작가의 작품 (사진 : 은평구청)
ⓒ 은평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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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 새>라는 작품을 보면 아무런 죄도 없는 미군 병사의 어린 딸을 납치해서 죽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게 평화를 지향하는 작가의 목소리냐는 오해도 있는데 이 작품의 의도는 무엇인가.

"오키나와 미군 기지에서 출격한 전투기들이 전쟁에 가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싫든 좋든 여기에 가담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용인하는 것 자체가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한국전쟁 때도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날아간 전투기들이 전쟁에 가담했다. 그래서 오키나와 반전운동 참가자들은 피해자가 되고 싶지도 않지만 가해자가 되는 건 더 싫다는 의식을 품고 있다. 사회자 질문처럼 폭력을 폭력으로 대항하는 건 더 큰 폭력을 낳는다. 이럴 때 근본적인 폭력의 구조를 용인하는 것이 결국 무엇을 불러오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 <나비떼 나무>라는 작품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던 늙은 여성을 오키나와 주민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더 소외시키면서 또 다른 폭력의 연쇄 사슬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담았다. 할머니가 17살 때 전쟁이 일어나고 진료소가 요정으로 바뀌고 이 요정 앞에 일본군 병사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일본 병사들이 미군에 진 다음에는 이제 미군 병사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오키나와에서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은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고 여성들이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그런 여성들이 전쟁이 끝난 후에 어떻게 살아갔을까? <나비떼 나무>에 나오는 비극적인 이야기는 그렇게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잊혀지거나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고 지금도 쉽게 이야기하기 힘들다. 소설에라도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서 쓰게 됐다." 

- 최근에 나온 산문집에 실린 글 중 평양을 다녀와서 남긴 기록이 있다. 오키나와 작가가 평양을 방문하고 이번에는 또 서울을 방문하면서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2000년에 오키나와 평양 교류단의 일원으로 방문했다. 당시 북한 주민들이 휴전상태이긴 하지만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키나와에서 미군을 바라보는 느낌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쟁 불안이 강화될수록 군사비용은 늘고 농촌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동아시아에 평화체제가 확립되길 바라고 지금의 활동이 전쟁 위협을 약화시켜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면 좋겠다." 

- 한국의 독자들에게 앞으로 어떤 문학 활동을 할 것인지 계획을 들려 달라. 

"인생의 시간은 한정돼 있어서 시간 배분을 잘 해야 한다. 가족도 돌봐야 하고 활동도 해야 하고 작가로서 활동도 해야 한다. 쓰고 싶은 건 정말 많은데 뭘 쓰지 못하고 죽는다는 건 허무한 일이니 시간 배분을 잘 해서 계속 작품 활동을 해 나가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오키나와, #메도루마 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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