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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간장과 고추장(자료사진).
 맛간장과 고추장(자료사진).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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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만들 때 기본양념은 된장, 고추장, 간장, 소금이다. 처음 요리를 할 때는 음식마다 어떤 양념이 들어가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이것저것 막 넣고 맛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기본양념 네 가지를 알고 난 후로는 음식 만드는 게 점점 수월해졌다. 네 가지를 기본으로 이리저리 응용하면 되니까. 또 음식 색을 떠올리며 네 가지 양념 중에 무엇을 넣을지 정하면 얼추 그 맛이 났다.

예를 들어 잡채의 당면 색은 어두운 갈색이다. 네 가지 중 된장이나 간장색과 비슷한데 먹었을 때 된장 맛이 난 적은 없으니, 간장을 넣으면 되는 식이다. 감자채볶음처럼 간간한데 별다른 색이 없을 땐 소금이겠구나 하면 되었다. 이런 식으로 기본양념을 생각하며 음식을 만드니 실패할 일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살면서도 이렇게 기본을 잘 생각해 보면 저절로 해결될 일이 많은 것 같다.

음식의 기본, 된장찌개

엄마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아침에 국을 끓이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혼자 살 때처럼) 국 없이 밑반찬이나 전날 먹고 남은 반찬으로 밥을 먹기도 했다. 그러다 언제인가부터 엄마가 "국은 안 끓이나?"라고 물어보신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아니라고는 하시지만, 국이 있어야 음식이 잘 넘어가는 연세가 되신 것이다.

국을 거의 매일 끓이다 보니 만만한 게 된장찌개다. 제철 채소를 듬뿍 넣고, 두부는 그보다 훨씬 많이 넣어 끓이는 우리 집 된장찌개. 엄마도 나도 단백질 때문에 두부는 거의 매일 먹는데, 특히 두부를 된장찌개에 넣어 먹는 것을 엄마가 좋아하신다. 밥 먹으면서 단백질을 먹을 수 있으니 따로 챙기지 않아도 돼서 편하단다.

된장찌개를 끓이면 신기하게도 늘 맛있는데, 우선은 엄마가 직접 담는 된장이 한몫하는 것 같다. 메주를 띄워 만드는 전통 방식은 아니지만 재래시장에서 파는 된장 만드는 세트(메줏가루, 소금, 노란 콩 등)를 사 와서 식구들 입에 맞게 만들어서 그런 것 같다.

"정월달 손 없는 초아흐렛날에는 소금을 적게 넣고 담아도 되지만, 그보다 늦게 담으면 소금을 많이 넣어서 담더라, 옛날 할매들이."

엄마는 될 수 있으면 소금을 적게 넣을 수 있는 정월 초에 만든다고 했다. 손 없는 날은 길일(운이 좋거나 상서로운 날, 음력으로 끝수가 9와 0인 날)이라고 하니, 정월달 손 없는 초아흐렛날 담은 된장은 가족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다.

된장 담는 이야기를 늘 듣기는 했어도, 엄마가 만드는 것을 직접 본 것은 작년이 처음이었다. 잔심부름을 하는 와중에 신기해서 사진도 찍었다. 다 만들고 베란다에 45일 정도 뒀다가 간장을 따로 빼내고(조선간장) 남는 것이 된장이 된다고 한다.
 
항아리는 짚에 불을 붙여 넣고 태워서 소독했다. 메주콩은 절구로 으깨어 덩어리를 없앤다.
▲ 된장 담는 날 항아리는 짚에 불을 붙여 넣고 태워서 소독했다. 메주콩은 절구로 으깨어 덩어리를 없앤다.
ⓒ 박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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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만든 된장은 짜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골마지(하얀색 곰팡이 같은 물질)가 표면에 생기지 않도록 냉동실에 두고 먹는다. 짜지 않으면서도 잘 익은 엄마표 된장으로 찌개를 끓이니 늘 맛있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맛있다고 느끼는 이유를 또 하나 들자면 국물 맛을 좌우하는 육수때문인 것 같다. 육수는 미리 만들어 냉동실에 얼려놓고 쓰는데 엄마가 좋아하는 홍합 육수, 멸치와 자투리 채소를 함께 우려 낸 육수를 번갈아 쓴다. 된장과 육수가 좋으면 찌개는 웬만하면 맛있다. 기본이 충실해서 그런 것 같다.

여기에 요리 천재 백 선생이 알려준 대로 단맛을 내는 양파는 처음부터 넣어 깊은 맛을 더한다. 그리고 엄마의 지혜, 두부도 양파처럼 처음부터 넣고 끓인다. 찌개가 끓으며 된장과 각종 채소의 맛이 두부에 배어 더 맛있어지기 때문이다. 채소는 제철 채소면 무엇이든 좋은데, 요즘은 가지나 애호박을 듬뿍 넣거나, 연한 깻잎 순을 넣기도 한다.
  
기본을 잘 챙기며 어른다운 어른으로
 
평소엔 엄마도 나도 좋아하는 방아잎을 넣고 끓이지만, 이날은 깻잎 순이 많아서 대신 넣었다. 그때그때 있는 채소를 넣고 끓이는 편이다.
▲ 된장찌개 평소엔 엄마도 나도 좋아하는 방아잎을 넣고 끓이지만, 이날은 깻잎 순이 많아서 대신 넣었다. 그때그때 있는 채소를 넣고 끓이는 편이다.
ⓒ 박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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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된장에 감칠맛 나는 육수, 제철 식재료로 끓인 된장찌개는 수수한 맛에 속도 편안하다. 투박한 색깔에, 고기 한 점 들어있지 않아도 먹고 나면 든든하다.

첫 입엔 맛있지만 두 끼만 연달아 먹어도 질리는 음식과 달리, 늘 먹던 그 맛인데도 잘 물리지 않는다. 속에 탈이 났을 때도 된장국에 밥 조금 먹으며 조심하면 낫는다는 약사의 말을 이젠 체험으로 알게 된다. 한식 양념의 기본인 된장과 고추장이 갖는 힘을 알게 되는 경험은 나이가 들수록 하나씩 늘어난다.

된장찌개를 보며 다시금 '기본'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된장찌개처럼 기본만 잘 지켜도 사람 사이는 편안하고, 또 물리지 않을테니까.

요즘 뉴스에 나오는 가슴 아픈 일들을 보면서 삶에서 우리가 꼭 지켜야 할 기본이 무엇인지, 나는 앞으로 무엇을 잘 챙기며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기본적인 재료만으로도 든든한 음식이 되어 늘 먹게 되는 된장찌개처럼 삶에서도 기본을 잘 챙기며 어른다운 어른으로 나이 들고 싶다.  

우리 집 된장찌개 끓이는 방법

재료: 된장, 육수(조개나 멸치 등), 물, 양념장(없으면 고춧가루), 마늘, 양파 조금, 두부 많이, 제철 채소(가지, 애호박 등), 버섯, 파, 기호에 따라 방아잎 등

1. 육수(조개나 멸치 등을 이용해 미리 만들어 놓은 것)를 냄비에 담는다.
2. 두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넣고, 양파도 다져 넣는다.
3. 두부를 넣어서 부피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물을 적당히 추가한다.
4. 끓기 시작하면 마늘, 된장, 양념장(김치 담그는 양념장, 없으면 고춧가루)을 넣고 제철 채소(가지, 애호박 등)와 버섯도 넣는다.
5. 보글보글 끓으면 다진 파를 넣고 잠깐 끓인 다음 상에 낸다(방아잎이나 깻잎 등도 이때 넣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
태그:#된장찌개, #우리 입맛의 기본, #기본을 챙길 줄 아는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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