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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나 오늘이나 시간의 분량도 질량도 같다지만, 무심한 듯 무정한 듯 우리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것인지 시간은 제 할 일만을 시계처럼 하고 떠나간다.

경북 지역 그리고 봉화군 춘양을 매섭고도 사납게 할퀴고 간 폭우는 흔적을 감추었고, 시간에 농밀히 새겨진 기억을 덮어쓰기라도 하듯 빼꼼하게 그러나 찬란하고 의연하게 태양이 빛을 발한다.

가을 아침 같은 파란 하늘에 시원하면서도 청량한 바람이 힘있게 또박또박 기운을 불어넣는다. 19일, 현재 시각은 아침 5시 30분, 기온은 17도다.

돌아온 운곡천의 일상
 
봉화군 춘양면 운곡천 잔디구장 뒤로 태양이 찬란이 떠오른다
▲ 폭우 뒤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 봉화군 춘양면 운곡천 잔디구장 뒤로 태양이 찬란이 떠오른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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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천이 에메랄드빛을 발하며 유유히도 흐른다. 뭉게구름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마치 물개박수를 치며, '드디어 오늘'을 환영하는 듯하다. 더 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경관이다. 파도처럼 넘실대는 흙탕물로 금세 삼켜버릴 듯한 성난 모습은 흔적도 없다.

관련기사 : "회사고 나발이고 소용없다!" 경북 극한폭우 속 어르신의 외침 https://omn.kr/24t37
 
에메랄드 물빛을 드러내는 운곡천이다. 이렇게 고운 빛깔을 내는 것도 처음 본다. 폭우에 깨끗이 씻겨내려갔다. 천변 위로는 몽실몽실한 하얀구름과 물안개가 차분히도 펼쳐있다.
▲ 돌아온 운곡천의 일상 에메랄드 물빛을 드러내는 운곡천이다. 이렇게 고운 빛깔을 내는 것도 처음 본다. 폭우에 깨끗이 씻겨내려갔다. 천변 위로는 몽실몽실한 하얀구름과 물안개가 차분히도 펼쳐있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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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mm 호우 소식에 마음을 졸이던 중 18일 저녁 무렵 찬란한 무지개가 떠올랐다. 세상에 이럴 수가. 눈물이 날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감격스러웠다. 무지개라니… 세상에 이렇게나 크고 또렷한 무지개를 눈앞에서 선명하게 본 적도 처음이다. 넋을 잃고 바라보며 한없는 감사와 기쁨, 그리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다. 우리가 더 이상 눈물 흘릴 일은 없겠지.
 
극한 폭우 뒤 대형무지개가 떠올랐다. 비가 또오는구나 한숨을 내쉬던 중 찬란히도 소리없이 나타났다. 선명한 무지개 뒤편으로 흐릿하지만 또 다른 무지개가 겹으로 떠있다. 아름답다. 그리고 감사 외엔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 폭우 뒤 대형무지개 극한 폭우 뒤 대형무지개가 떠올랐다. 비가 또오는구나 한숨을 내쉬던 중 찬란히도 소리없이 나타났다. 선명한 무지개 뒤편으로 흐릿하지만 또 다른 무지개가 겹으로 떠있다. 아름답다. 그리고 감사 외엔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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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있어왔던 하늘이며 구름, 바람 그리고 태양인데 이들 없이 지냈던 며칠의 시간이 얼마나 고통이었는지 모른다. 토사로 덮인 길들도 정리가 되고, 산사태가 난 곳 일부는 보수가 진행 중이다.

일사불란하게 모든 행정과 주민들이 하나 되어 한마음으로 노력한 결과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었다. 사망자가 2명이나 발생한 윗마을 학산과 서동도 경북 예천, 영주도 한참 복구가 진행 중이다.

옆집 강할매집에도, 춘양정미소에도 옆 마을 청년회에서 지원을 나와 논에 쓰는 양수기를 가져다 물을 퍼냈다. 마을 사람들도 마당에 토사를 긁어내 주며 어려움을 서로 보듬었다.
 
강할매집 논이 된 마당에 양수기로 물을 품어낸다.
▲ 양수기로 물을 퍼내며, 서로서로 힘을 모아 강할매집 논이 된 마당에 양수기로 물을 품어낸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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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돌아왔다. 경북은 주말에 또 호우가 예상되어 있지만, 마음을 '단디(단단히)' 먹고 있어서 처음처럼 놀라지는 않을 것만 같다. 더 이상의 사상자만 없다면 몸이 고돼도 복구 작업에 투입되는 것은 감당할 수 있다. 나도 동료들도 지난 토요일부터 복구 작업에 동원되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토사로 뒤덮힌 거리가 깨끗해졌다. 감쪽같다.
▲ 일상으로 돌아온 춘양면 거리 토사로 뒤덮힌 거리가 깨끗해졌다. 감쪽같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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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방유수 선생님이 강할매집에 토사를 퍼내러 오셨다.
▲ 토사퍼내는 사진 시인 방유수 선생님이 강할매집에 토사를 퍼내러 오셨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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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산과 임도를 복구하는 것은 시일이 소요되겠지만 사람이 다니는 길들은 어느 정도 정비가 되어가고 있다. 토사며 나뭇가지를 삽으로 쓸어 담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지만, 볼멘소리하지 않고 모두 하나 되어 웃으며 일을 하는 모습도 내겐 감동이었다. 멀리 안동에서 주말만 근무하는 직원은 복구작업을 '산스'라고 했다.

"산스하러 가죠. 물광마사지 1회가 22만 원인데 산스하면 공짜에요!"
"산스가 뭐예요?"
"산에 있는 헬스클럽! 삽, 빗자루 들고 산에서 하는 운동요!"

 
오래된 춘양정미소 쌀가미니들도 수난이 말이 아니다. 함께 거들고 있다.
▲ 춘양정미소 피해 복구 중 오래된 춘양정미소 쌀가미니들도 수난이 말이 아니다. 함께 거들고 있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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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로를 덮은 토사와 잔가지들을 치우는 중이다.
▲ 동료들과 함께 배수로를 덮은 토사와 잔가지들을 치우는 중이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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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쟁이 그녀는 참으로 멋졌다. 여리여리한데도 삽질을 하는 자세와 토사를 담는 힘이 프로였다. 겉도 속도 모두 아름다운 그녀 덕분에 우리도 모두 22만 원짜리 물광마시지를 공짜로 받으면서 작은 도움이라도 보탤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긴장을 너무 한 탓에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어가지만 보람이다. 우리의 복구작업은 무르익어가고 춘양도 일상으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19일 아침 9시를 기점으로 봉화군은 산사태 위기경보가 해제되었다.

소중한 일상으로서의 복귀를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지금도 피땀을 흘리며 일선에서 복구작업에 투입된 모든 행정과 군 장병, 동료들에게 감사를,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인재로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들에는 깊은 위로를 전한다.
 
삽과 빗자루로 22만원짜리 마사지를 받는 중이라고 했다. 정신이 멋지다!
▲ 산스중인 그녀들 삽과 빗자루로 22만원짜리 마사지를 받는 중이라고 했다. 정신이 멋지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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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일상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드립니다.


태그:#봉화, #춘양면, #춘양, #폭우, #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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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있는 공간구성을 위해 어떠한 경험과 감성이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하는지 연구해왔습니다. 삶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것이 저의 과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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